"수요 예측·가격 책정부터 실패"…MLB 월드투어 무산, 왜?
10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던 프로야구 KBO리그 올스타팀과 메이저리그(MLB) 연합팀의 맞대결이 무산됐다. 야구계는 "수요 예측과 가격 책정부터 이미 실패가 예견됐던 행사"라는 반응이다.
MLB 사무국은 지난 29일(한국시간) "이벤트 프로모터(주최사)와의 계약 이행 이슈 등 현실적인 문제가 생겨 11월 한국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MLB 월드투어 코리아 시리즈 2022'에 참가하지 못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짐 스몰 MLB 인터내셔널 부사장은 "안타깝게도 한국 팬들을 만족시킬만한 선수단 수준을 갖출 수 없어서 이번 월드투어 코리아 시리즈를 취소하기로 했다"며 "한국 팬들에게 죄송하다. 향후에는 한국에서 MLB 관련 이벤트가 열리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도 허구연 KBO 총재에게 유감을 표하는 서신을 보냈다.
KBO는 "MLB의 참가 요청에 따라 팀 코리아와 팀 KBO를 구성하는 등 MLB 연합팀과의 경기를 준비해 온 입장에서 매우 당혹스럽다"며 "국내 팬들에게 신뢰를 지키지 못한 점, 경기를 준비한 선수들이 피해를 본 점 등에 관한 유감을 MLB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했다.
MLB 월드투어 코리아 시리즈는 다음달 11~12일 부산 사직구장과 14~15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총 4경기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맨프레드 커미셔너가 지난 4월 KBO에 공식 제안을 했고, 허구연 KBO 총재가 이를 수락했다. MLB 연합팀이 1922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앞세워 더 기대를 모았다. 지난 9월 19일에는 부산시청에서 허 총재와 스몰 부사장, 박형준 부산시장 등이 참가한 가운데 공식 기자회견도 열었다.
KBO는 선수단 구성에 적극 협력했다. 11일 경기에는 영남지역 연합팀(롯데 자이언츠·NC 다이노스·삼성 라이온즈)인 '팀 KBO'가 출전하고, 12일과 14~15일 경기에는 KBO 올스타팀인 '팀 코리아'가 나서기로 했다. 특히 '팀 코리아'는 내년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을 이끌 이강철 KT 위즈 감독이 지휘하고, 실제 엔트리에 포함될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대거 포함된 팀이다. '미리 보는 WBC 대표팀'으로 통했다. 올해 정규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이대호마저 고심 끝에 '팀 KBO'에 합류하기로 하면서 MLB 월드투어 시리즈는 날개를 다는 듯했다.
정작 예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티켓 가격이 너무 비쌌다. 가장 고가인 고척돔 다이아몬드석과 사직구장 중앙탁자석이 39만원으로 책정됐고, 가장 저렴한 고척돔 외야 3·4층석도 6만원이었다. 야구팬들 사이에선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나 에런 저지(뉴욕 양키스)가 와도 부담스러울 가격"이라는 볼멘 소리가 나왔다.
한국을 찾는 MLB 선수들도 '올스타'는 아니었다. KBO리그 출신인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외에는 살바도르 페레스(캔자스시티 로열스), 스티븐 콴(클리블랜드 가디언스), 랜디 아로사레나(탬파베이 레이스) 정도가 가장 이름값 높은 선수였다. 주최 측이 전면에 내세운 '수퍼 스타' 앨버트 푸홀스는 가족의 반대로 고민을 거듭했다. 최지만(탬파베이 레이스), 박효준, 배지환(이상 피츠버그 파이리츠) 등 한국인 빅리거의 참여만으로는 관심을 끌기에 역부족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야구계 관계자는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고가의 테이블석이 매진됐다. 아무래도 흥행을 예상하고 암표상들이 표를 대량 매입한 것 같다. 그런데 이후에도 빈자리가 가득하자 하루만에 취소표가 쏟아져 나왔다"고 귀띔했다.
MLB 사무국과 프로모터의 중간 정산 과정에서 책임 공방도 오갔다. 프로모터는 "MLB 올스타팀으로 홍보했는데, 선수 명단이 (야구팬의) 기대에 못 미친다. 좌석별 가격도 한국 실정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MLB 측은 "일본과도 비슷한 행사를 꽤 많이 했는데, 그때도 선수 명단이나 엔트리 수준이 거의 비슷했다. 현지의 홍보나 판매 방식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맞섰다. 이 관계자는 "결국 양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행사 취소'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고 전했다.
월드투어 시리즈 출전을 준비하던 선수들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시즌이 다 끝난 뒤에도 MLB 연합팀과의 대결을 위해 경기용 몸을 만들어왔는데, 귀한 휴식시간만 빼앗긴 꼴이 됐다. '팀 KBO'에 합류할 예정이던 영남 지역 구단의 한 선수는 "일단 참가할 거라는 얘기만 들었지, 상세한 내용은 아직 모른다"고 했다가 행사 취소 소식에 오히려 놀라워했다. 선수를 파견할 예정이던 구단들도 "행사가 임박했는데도 협조 요청을 공식적으로 전달 받지 못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KBO 역시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KBO 관계자는 "MLB 사무국이 이전에도 수차례 월드투어 개최를 요청했고, 올해 초에도 프로모터를 확정했다며 적극 제안을 해온 것"이라며 "리그 일정에 따른 선수단 구성의 어려움 등이 있었지만, 야구의 세계화를 위해 협조하기로 했고 주최사와 선수 파견 계약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팬 여러분께 혼란을 끼치게 돼 유감스럽다"고 했다.
물론 KBO도 MLB 사무국과 프로모터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KBO의 '얼굴'인 허구연 총재가 직접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이 시리즈의 의미를 강조한 상황에서, 행사의 실효성과 한국의 현실 등을 고려하지 않고 성급하게 뛰어들었다가 헛심만 썼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주최 측'이 아닌 KBO의 금전적 손해는 크지 않지만, 한국 야구의 위상에는 흠집이 난 모양새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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