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도 아닌데... 시집을 내자고 했습니다 [책이 나왔습니다]
[박향숙 기자]
첫 번째 글집을 지어주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무명시인이라고 이름 붙여준 김남영(62)씨다. 삶의 뒷모습을 듣고 보니 더더욱 호기심이 당겼다. 어릴 때 이유 모를 난청이 찾아왔단다.
▲ 김남영작가시집<어머니 그리고 편지> 출간회장애 걸린 김남영시집의 플래카드 |
ⓒ 박향숙 |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어느 날 책방에서 보내는 아침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한 지인이 글 하나를 보냈다. 제목은 <빈 길>이었다. 당신과 종종 바둑을 두는 후배인데, 짤막한 글을 써서 가끔 보낸다 했다.
그래
길 이란게
비어 있어야지
꽉 찬 길도 길이더냐
걸음걸음 걸어서 닿고
걸음걸음 걸어서 함께가자
(중략)
얼릉
빈 길 위에서
가는 동안
손을 맞잡아 주소
서로 마음 달래며
그 빈 길을 가자
화려한 단어하나 없이 편안한 시어가 좋다고 나름 평을 써서 보냈다. 인연의 시작이었다. 며칠 뒤 이 글을 쓴 사람과 차 한잔 할 수 있냐고 전화를 받았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니 답답할 수 있을 거라고, 그냥 인사라도 하고 톡으로 대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막상 만나보니, 내 목소리는 잘 들린다고 했다. 지인의 말은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데, 어찌 내 말을 알아듣는지 물으니, 여성의 목소리는 그래도 어느 정도 들린다 했다. 소위 '여자 목소리 선택형 난청'이라며 웃었다.
기계음은 거의 알아듣지 못하고, 소리톤이 낮은 남자 목소리 식별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찌됐든 내 목소리는 들린다 해서 평소보다 소리를 높이고, 발음을 똑똑 떨어지게 내면서 얘기했다.
며칠 뒤 개인적으로 부탁할 일이 있다고 했다. 당신의 어머니가 고령인데 노인유치원에 다닌다고, 혹시나 무슨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 어머니에게 쓴 편지글을 묶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 출간회에서 김남영 작가의 한 말씀 출판사대표로서 출간회 사회를 보는 영광을 가졌다 |
ⓒ 박향숙 |
처음에 김남영씨는 거절했다. 자기는 시인도 아니고, 자기 글은 유명 시인들처럼 그런 시도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몇 번의 권유로 허락을 받고 시집에 실을 시를 분류했다. 여러 번의 편집과 출판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한 출판사 사장의 도움을 받았다.
책방에서 보내는 아침편지에 무명시인 김남영의 이름으로 시 두 편을 소개했다. 답장을 준 사람들의 평이 후했다. 출간 책임자로서 다행이다 싶었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공감을 해준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이곳저곳 글을 쓰면서 더욱 실감하기 때문이다.
▲ 출간을 축하는 시낭송 시낭송가 윤혜련님이 작가의 시 <부추꽃>을 낭송했다 |
ⓒ 박향숙 |
출간회에 찾아온 사람들 중 어떤이는 시낭송으로 축하하고, 어떤이는 꽃다발, 웃음과 박수로 축하했다. 작가와의 대화에서 작가에게 물었다. 작가의 난청으로 우리말을 우리말로 통역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50여 년 동안 맘속의 말을 자기 글로만 담아 놓았다가 세상에 내보이는 소감이 어떠세요?"
"책 읽기를 좋아해서 다른 시인의 시를 종종 읽지요. 내 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를 읽는 기분이었어요. 이렇게 부족한 글을 책으로 만들어 함께 읽자고 전하게 되어 기쁩니다."
"작가님이 어머님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어떤 마음으로 썼나요?"
"작가의 말로 대신 할게요. 손수레의 추억으로 어머니와 내 그리움을 인사말로 대
신 하렵니다. 손수레를 난 앞에서 끌고 어머니는 뒤에서 밀었다. 오르막에서 더 빨라짐은 앞에선 어머니 생각, 뒤에선 아들 생각이지요."
함께 동석한 어머님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내 마음에도 눈물이 맺혔다. 신희상 시인은 인연을 표현하길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줄 안다'라고 했다. 출간회는 또 다른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 필연을 넘고 겹겹이 쌓여지는 인연 그물을 만들었다. 부디 서로의 옷깃이 살포시 내려앉아 기쁨도 슬픔도 같이 나누며 살리는 인연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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