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가 돌아왔다"…재집권한 '좌파 대부' 中 손잡을까, 美 긴장

박형수 2022. 10. 3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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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좌파 대부’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시우바(룰라·77) 브라질 전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치러진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초접전 끝에 자이르 보우소나루(67) 현 대통령을 꺾고 당선됐다. 룰라는 승리 연설을 통해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통합을 강조했다.

룰라 전 대통령이 대선 결선투표에서 당선이 확정된 뒤 상파울루 거리에 나와 아내의 손을 잡고 지지자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브라질 최고선거법원(TSE)은 이날 오후 7시59분 “노동자당(PT)의 룰라가 당선인으로 확정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룰라 당선인은 이날 선거에서 50.9%(6034만5999표)를 득표해, 연임에 도전한 자이르 보우소나루(49.1%, 5820만6354표)를 가까스로 꺾었다. 200만 표(1.8%포인트) 차 신승(辛勝)으로, 영국 일간 가디언은 “브라질에 직선제가 도입된 1989년 이래 대선 중 가장 작은 표차”라고 전했다.

이로써 룰라는 브라질 사상 첫 3선 대통령에 올랐다. 공식 취임은 내년 1월1일이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군사 독재 종식(1989년) 후 재선에 실패한 첫 현직 대통령이 됐다.

오후 5시(한국시간 31일 오전 5시) 전자투표가 마감된 뒤 시작한 개표는 피 말리는 초접전 양상으로 진행됐다. 초반에는 보우소나루가 우위를 지켰지만, 룰라가 차츰 격차를 줄여 개표율 68% 시점에 역전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후보간 격차가 1%P 대의 박빙으로 나타나자 여론조사기관 다탸폴랴는 개표율 90%가 넘어선 시점에서야 룰라의 ‘당선 유력’을 발표했다. TSE가 ‘당선 확정’을 선언한 시점은 개표가 98.91% 완료된 때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날 수많은 유권자들은 상파울루 최대 번화가인 파울리스타 대로에서 개표 방송을 지켜봤다. 룰라의 당선 확정 소식이 전해지자 지지자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승리를 만끽했다. 반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망연자실하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룰라는 상파울루 자택에서 TV로 개표 방송을 지켜보다, 당선 확정 뒤 집 밖으로 나와 지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이후 티볼리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오늘의 유일한 승리자는 브라질 국민”이라면서 “나와 노동자당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외쳤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자 그의 지지자들이 실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올해 브라질 대선은 이념 성향이 정반대인 전·현직 대통령 간 일대일 대결 구도로 치달으면서, 전 국민이 좌·우로 나뉘는 극단 분열을 보였다. 이에 룰라 당선인은 “나는 2억1500만 브라질인 모두를 위해 통치할 것”이라면서 “두 개의 브라질은 없으며, 브라질은 위대한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이라며 통합과 협치를 강조했다. 이어 “증오로 물든 시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두 동강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화합의 메시지를 거듭 전했다.

브라질과 국제사회의 시선은 일제히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선거 승복 여부에 쏠렸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그간 전자투표 시스템의 신뢰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며 불복할 수 있다는 속내를 내비쳐왔다. 뉴욕타임스(NYT)는 “보우소나루의 지지자 중 많은 사람들이 그의 명령에 따라 거리에 나서겠다는 맹세를 했다”면서, “지난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한 뒤 나타난 혼란상이 브라질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이날 선거 결과를 인정한다는 어떠한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

룰라의 승리는 중남미에 ‘2차 핑크 타이드(좌파 물결)’의 완성이라는 의미가 크다. 앞서 대선을 치른 멕시코·아르헨티나·페루·칠레·콜롬비아에 이어 브라질까지 좌파 후보가 승리하면서, 역대 최초로 중남미 주요 6개국에 모두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됐다.

브라질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의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재집권에 성공한 룰라가 브라질 외교의 우선순위를 미국이 아닌 ‘역내’와 ‘중국’으로 이동시킬 것”이라 예상했다. 특히 브라질이 룰라의 지휘 아래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브라질 직선제 도입 후 연임에 실패한 첫 현직 대통령이 됐다. EPA=연합뉴스


실제로 과거 룰라의 집권 시기(2003~10)에 중국과 브라질은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 등을 계기로 급속히 가까워졌다. 특히 중국은 브라질에 가장 많은 해외 투자액(13.6%)을 쏟아부으며 공을 들였다. 타티아나 프라제레스 브라질 전 무역부 장관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중국과 교역량을 줄이지는 않았지만 강력한 반중(反中) 정서로 양국 관계를 확장·심화시키지도 않았다”면서 “룰라 정권은 중국과 경제뿐 아니라 정치·산업 등 다방면의 협력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뉴욕에 기반을 둔 중국 분석 전문단체 ‘차이나 프로젝트’는 “향후 룰라가 브릭스와 중국 일대일로에 접근하는 방식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자유롭고 공정하고 신뢰할만한 선거를 거쳐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축하한다”며 “앞으로 여러 달, 여러 해 동안 양국의 협력을 지속하고 함께 일하게 될 것을 고대한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트위터에 “룰라의 승리로 브라질 역사에 새 장이 열렸다”면서 “두 나라는 공통된 도전에 대응하고 우정의 연대를 새롭게 하기 위해 힘을 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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