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 시대 안착할까…삼성생명법 변수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 시대가 열렸다.
당연히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엄중한 대내외 경제 환경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 회장 앞에 놓인 숙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지배구조 개편은 풀리지 않는 숙제 중 하나다. 삼성 지배구조는 이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삼성물산을, 삼성물산이 다시 삼성생명을,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대주주로 있어 전체 그룹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데 최근 야당을 중심으로 삼성생명 보유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는 이른바 ‘삼성생명법’이 고개를 들면서 상황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배구조 어떻길래
▷삼성물산이 사실상 지주
이 회장은 최근 자녀 세대에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명 ‘4세 경영 포기’를 선언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가 상당히 복잡하고 상속, 증여를 하려 해도 현실적으로 워낙 규모가 커서 세금 문제 등을 감안하면 그룹 경영권을 누군들 쉽게 받기 어려운 구조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삼성그룹은 이미 2020년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의뢰,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생명 3개사가 의뢰 기업이다. 최종 보고서가 공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이재용 회장은 지배구조 개편을 사실상 추진하고 있다.
이는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했을 때부터 대내외에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최근에도 준법위 정기회의 개최 전 위원 전원과 면담하면서 “더 이상 삼성에서 준법 위반으로 인한 경영 리스크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주기를 바란다. 준법위가 지향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준법 경영 그리고 ESG 경영의 실현을 위해 적극 동참해 준법위가 독립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 회장은 2020년 5월 준법감시위원회가 지배구조 개편 권고를 했을 때도 “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고,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참고로 ESG 경영의 핵심 사안 중 하나가 투명한 지배구조다.
▶삼성생명법 왜 변수?
▷삼성전자 지배권 흔들릴 수도
이런 와중에 최근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 법안이 있다. 아직 통과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재용 회장은 물론 삼성그룹 전체에 폭풍을 몰고 올 수 있어 주목받는 법, 이른바 삼성생명법이다.
현재 이 회장은 삼성물산 최대주주(17.97%)다. 이외 오너 일가가 삼성물산 지분 31.31%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삼성생명, 삼성전자를 간접 지배하는 그림인데 이때 중요한 곳이 삼성생명이다. 참고로 올해 6월 말 기준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50만8157주(8.51%)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 1.6%보다 많다.
문제는 삼성생명이 금융 회사라는 사실이다.
삼성생명은 보험사 ‘3% 룰’을 적용받는다. 현행법상 보험사는 손실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대주주나 계열사 주식을 총자산의 3% 이하 금액으로만 소유할 수 있다. 삼성생명의 총자산은 약 310조원이다. 3%면 약 9조원 이하 정도만 특정 주식을 보유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때 눈여겨볼 점은 이 지분은 어떤 시점에서의 가치로 보느냐다.
현행법은 삼성생명이 들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가치가 총 3%가 안 되는 것으로 계산해놓고 있다. 1980년에 삼성생명이 사둔 주식 가격, 즉 당시 취득원가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당시 1주당 1072원이었다. 전체 금액은 약 5444억원 정도가 된다. 이정도면 9조원과 비교했을 때 한참 못 미친다.
그런데 이를 삼성전자 ‘시가’를 기준으로 하면 어떻게 될까?
한때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400조원을 훌쩍 넘기기도 했다. 10월 말 현재도 350조원대를 왔다 갔다 한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율 가치는 ‘시가’ 기준으로 하면 약 30조원(8.51%)에 달한다. 이럴 경우 총자산의 3%, 즉 약 9조원을 초과하는 금액만큼은 매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삼성화재 역시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1.5%)하고 있다. 따라서 삼성화재도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약 3조원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그룹 문제 생기면 부각될 듯
이번 국정감사에서 삼성생명법은 재차 주목받았다. 금융위원장이 출석한 자리에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보험업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장 가격으로 평가하는 회계원칙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시장 가격으로 평가하는 회계원칙에 동의하며, 해결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겠다”고 말해 파장이 일었다. 현직 금융위원장이 ‘삼성생명법’의 일부 문제 제기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그만큼 삼성생명법 공론화가 진전될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당장 법이 통과되면 시장은 더욱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3%를 초과하는 삼성전자 주식 물량이 시장에 풀리면 가뜩이나 폭락장 증시가 더욱 요동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승호 삼성생명 부사장이 국감장에 출석해 “관련법은 자산 운용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더불어 삼성생명은 이번 국감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승호 삼성생명 부사장에게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위한 이행계획서 초안을 제출하라는 요구에 “보험업법과 관련 규정에서 정하는 계열사 주식 보유 범위 내에서 삼성전자 주식을 적법하게 취득해 보유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삼성전자 주식에 대한 구체적인 매각 계획이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물론 반박 논리도 있다. 박용진 의원은 “개정안에서는 삼성전자 주식 초과분을 5년에 걸쳐 팔게 돼 있고, 금융위원장의 허락을 받아 2년을 연장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시장에 파장이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지금은 시점이 아니다’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생명법이 당장 처리해야 할 민생 현안이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라며 “다만 이재용 회장, 삼성그룹 지배구조 등이 계속 문제가 되거나 사건·사고가 빈발해지면 언제든 개정안 국회 상정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총평했다.
[박수호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1호 (2022.10.26~2022.11.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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