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SPC 사건으로 본...위기관리 ABC
또 머리를 숙였다.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기업 대표들의 한결같은 행보가 최근에도 똑같이 연출되고 있다. ‘127시간 30분’간 먹통 사태를 일으킨 카카오를 비롯해 생산직 직원 사망 사건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SPC 등은 대국민 사과, 사후 대책 마련 등으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린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은 국회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 일반 증인으로 출석해 무료 서비스 피해보상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여론은 쉬 가라앉지 않고 있다. SPC는 좀 더 상황이 꼬였다. 사건 발생 후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대국민 사과와 안전 관리 강화에 3년간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사과 이틀 뒤 공교롭게 SPC 또 다른 계열사 공장에서 ‘손가락 절단’ 사고가 나면서 안전 관리 소홀이 또 한 번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최근 두 회사 사례를 보면 사전 예방으로 인재(人災)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사후 대응 과정에서도 난맥상을 보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단 두 회사만의 얘기가 아니다. 어떤 회사든 사고 혹은 위기 상황은 발생할 수 있다. 두 업체 스토리가 다른 경영자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이번 카카오, SPC 사건을 들여다본 배경이다.
반면교사 1 | 이상 징후 간과
▷재발 방지에도 눈귀 막았다
카카오는 과거에도 데이터센터(IDC) 전력 장애로 인한 서비스 중단 사례를 겪었다. 규모와 장소만 달랐을 뿐이다. 10년 전 2012년 4월 28일 카카오톡과 카카오스토리 서비스가 4시간 동안 중단됐다. 카카오는 당시 모든 서버를 LG CNS 데이터센터에 맡겨 운용했다. 이곳 전력 공급 장치에 문제가 생기자 카카오는 먹통이 됐다.
전문가들은 당시에도 카카오가 IDC를 분산 배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카카오는 IDC 분산 배치 등 향후 이용자 불편이 발생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0년 뒤인 지난 15일 비슷한 이유로 문제가 발생했다. 서버가 SK C&C 판교 IDC에 집중된 탓이다. 매출(별도 재무제표 기준)이 4280억원에서 2조1329억원으로 398.3% 증가할 동안 IDC 분산 배치는 뒷전이었다.
SPC그룹 노동자 사망 사고도 전조 현상이 있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제출받은 SPC그룹 계열사 4곳(파리크라상, 피비파트너즈, 비알코리아, SPL)의 산업재해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9월까지 발생한 산업재해는 총 581건이다. 이 중 SPL 근로자 사망을 불러온 ‘끼임’ 사고도 54건에 달했다.
연이은 끼임 사고 발생에도 SPC그룹은 안전장치를 구축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근로자 사망 사고가 혼합기 끼임 방호 장치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없어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 고용노동부는 SPC그룹 식품 계열사 전체를 대상으로 산업안전보건 기획·감독을 실시할 방침이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전례 있는 안전사고 케이스에 대한 구조적 분석과 재발 방지책이 필요했다”며 “그랬다면 불행한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교사 2 |사과 아닌 변명은 역효과
▷면피용 발언에 진정성 의심
위기가 발생했다면 대응해야 한다. 첫 절차는 사과다. 카카오와 SPC그룹 사과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카카오톡 먹통 사태 하루 뒤 카카오 측은 “이 정도 규모의 데이터센터가 마비된 건 업계 역사를 통틀어도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여론은 분노했다. 사과보다 변명에 가깝다는 이유였다. 정치권이 움직였고 김범수 센터장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자리에 섰다. 김 센터장은 “이유를 불문하고 사과드린다”고 강조했다. 사태 발생 9일 만이었다.
허영인 회장은 사망 사고 발생 6일 만에 대중 앞에 섰다. 허 회장은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그룹 전반의 안전 관리 시스템을 재점검하겠다”고 말했다. 3년간 1000억원의 안전 관리 시스템 투자 의지도 밝혔다.
그룹 회장이 직접 사과하고 구체적 투자 계획을 제시했지만 여론은 더 분노했다. 태도가 문제였다. 허 회장은 준비해온 사과문을 작은 목소리로 읽었다. 질의응답도 없었다. 면피용 사과라는 비판이 나왔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진정성 있는 사과는 자신들이 놓친 것에 대한 각성을 전제로 전달된 사과”라며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 방식의 사과는 더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교사 3매뉴얼의 함정
▷“오작동 시 더 큰 낭패”
매뉴얼(Manual)은 업무 지침서, 안내서를 의미한다. 여러 경험을 토대로 길잡이가 될 수 있도록 표준화한 절차다. 매뉴얼은 조직 관리, 위기 대응 시 시간을 절약하고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다. 다만 경우의 수를 모두 담은 완벽한 매뉴얼은 없다. 매뉴얼에만 의존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매뉴얼 적용은 위기를 키우기도 한다. 매뉴얼의 함정이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대표적인 매뉴얼의 함정 사례다. 원전 추가 폭발 위험을 인지한 현장 책임자는 바닷물을 끌어다 원자로를 냉각시키자고 제안했다. 정부는 매뉴얼에 없다는 이유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추가 폭발로 피해가 더 커졌다.
매뉴얼의 함정은 기업에도 적용된다. SPC그룹은 SPL 제빵 공장에서 빵을 만들다 목숨을 잃은 근로자 빈소에 파리바게뜨 빵 두 상자를 보냈다. ‘SPC 직원 경조사 지원품’ 매뉴얼에 따른 절차였다. SPC그룹 측은 일괄적으로 제공되는 경조사 지원품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유족들은 “어떻게 거기서 만든 빵을 장례식장에 갖다 놓느냐”고 분노했다.
전문가들은 매뉴얼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오승목 룩센트 대표는 “매뉴얼은 자사의 판단 기준이고 현실 직시를 못하면 매뉴얼로 인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도 “위기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고 유형도 다양한데, 매뉴얼만 따르면 세밀한 부분을 놓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안은 없나
▷사전 예방 ‘하인리히 법칙’ 주목
전문가들은 위기는 언제든 올 수 있지만 무엇보다 사전 징후를 찾아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미 1930년대에 보험사 직원이었던 하인리히가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이라는 책에서 주장한 ‘1:29:300’ 법칙도 이런 맥락이다. 그는 신문 1면에 나올 만한 산업재해는 그전에 29건의 경미한 사고, 300가지의 지나치기 쉬운 징후(전조)가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런 시스템을 구축해놨느냐다.
이럴 때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인(人)의 장막’이다. 조직이 커지다 보면 CEO나 경영진이 신뢰하는 임직원의 보고를 토대로 의사 결정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경영진의 현장 감각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사업과 직결되는 ‘안전’ 관련 이슈가 성장, 재무 등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 당장의 수익성과 관계없다는 논리가 득세할 때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잘나가던 기업이 왜 망했을까?’ 저자 아라키 히로유키는 이를 ‘기능 저하형 실패’로 규정한다. 기능 저하형 실패란 경영진이 현장 감각을 잃고 괴리될 때 회사가 망가지는 실패 유형 중 하나다. 한때 세계 에어백 시장을 석권했던 일본 다카타는 생산 관리나 인재 육성이 따라오지 못해 현장에서는 계속 불량률도 높아지고 결함 사례도 나왔다. 하지만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경영진이 이를 외면하다 2014년 6월 대규모 리콜 사태, 일명 ‘다카타 쇼크’로 한순간에 매출 급감 사태를 겪었다.
결국 중요한 건 경영진의 위기에 대한 발상 전환이다.
윤정구 교수는 “카카오도 이전에 비슷한 사고의 시그널이 전달됐지만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전이 중요한 이슈가 아니고 경영진이 신경을 쓰는 비즈니스 전략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었음을 방증한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사업 목적에 국민이 느끼는 고통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안전 문제를 간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들이 한국에서 왜 사업을 해야 하는지 목적에 대한 이해가 빠진 발등의 불 끄기 방식의 사과는 더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 경영도 대안 중 하나로 떠오른다.
글로벌 빅테크의 카오스 엔지니어링(Chaos Engineering)이 대표적인 예다. 카오스 엔지니어링이란 극단적인 재난 상황을 가정하고 서버 시스템을 운용하는 경영 방식이다. 2011년 넷플릭스가 자사 테크 블로그에 소개한 개념이다. 데이터센터 화재 발생을 예상 못했다는 카카오의 해명과 대비된다.
▶사고가 났다면?
▷슬기로운 사후 관리…신속 사과·기대 이상 보상
예방에는 실패했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는 없을까.
전문가들은 신속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사과, 시장 기대 이상의 대응과 사후 소통을 그 대안으로 꼽는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사후 대처 사례로는 코오롱과 무신사 사례가 자주 거론된다.
2014년 2월 코오롱그룹이 운영하는 경주 마우나 리조트 강당 2층이 붕괴되면서 대학생 10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신입생이 다쳤다. 이때 이웅열 당시 코오롱그룹 회장은 사건 발생 다음 날 새벽 6시 경주 현장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유가족분들께 엎드려 사죄드린다”며 우선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 대해 사과했다. 이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게 된 점도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신속한 사고 수습과 피해자의 쾌유를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도 했다. 더불어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 관리에 더욱 철저하고 투명하게 임하겠다고 강조했고 그렇게 지켰다.
이를 경영학계에서는 ‘CAP 법칙’의 모범 사례로 칭한다. C는 ‘진정성 있는 사과(Care & Concern)’를, A는 ‘앞으로 취할 행동(Action)’을, P는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Prevention)’는 약속을 뜻한다. 특히 당시 사례는 누가, 누구에게, 왜 죄송한지를 분명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무신사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무신사는 2019년 7월 공식 인스타그램에 “속건성 책상을 ‘탁’ 쳤더니 ‘억’ 하고 말라서”라는 문구의 양말 광고를 게재했다. 1987년 전두환 정권 당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비판이 일자 무신사는 게재 당일 콘텐츠를 삭제했다. 다음 날 사과문도 게시했다. 9일 뒤에는 박종철기념사업회에 방문해 사과했다. 당시 기념사업회 측은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문제 해결 방식이 건강하다”고 말했다.
오승목 대표는 “사회적 공분을 살 수 있는 중대한 실수였고 고인에 대한 무례함이 드러난 큰 사건이었지만 신속한 대응, 진정성 있는 사과, 구체적 후속 조치가 눈에 띄었다”고 설명했다.
직접 사건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시장 기대 이상의 대응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기업 사례도 있다.
제약사 존슨앤존슨의 ‘캡슐형 타이레놀’ 사고 대응 사례가 대표적이다.
1982년 9월 미국 시카고에서 존슨앤존슨 대표 상품 ‘캡슐형 타이레놀’ 제품을 복용한 소비자 7명이 사망했다. 독극물 사고였다. 제품이 소매점에 배치된 뒤 누군가 청산가리를 넣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존슨앤존슨 과실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시카고 지역에 유통된 타이레놀만 회수 요청했다.
그러나 존슨앤존슨 대처는 권고를 넘어섰다. 전국에 유통된 캡슐형 타이레놀 제품 3100만병을 전량 회수했다. 제품을 회수하고 폐기하는 데 쓴 비용만 1억달러가 넘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이다. 시장 기대 이상의 대응을 한 것이다. 더불어 존슨앤존슨은 이런 사후 처리까지 꼼꼼하게 대외적으로 알렸다(사후 소통).
손실은 컸지만 회사를 바라보는 소비자 신뢰는 높아졌다. 떨어졌던 점유율은 빠르게 회복됐다. 이후 타이레놀은 진통제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사과의 필수 요소 5가지
사건 발생 첫 24시간이 기업 명운 가른다
‘위기 관리자(The Crisis Manager)’.
오토 러빈저 미국 보스턴대 교수가 쓴 위기관리, 대응 전문서적이다. 이 책에는 사과의 필수 요소 5가지가 나온다.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➊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물질적 또는 정신적 피해를 입혔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라.
➋ 사건 발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밝혀라.
➌ 죄송함과 미안함의 표현을 무조건 담아라.
➍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재발 방지 약속을 언급해라.
➎ 이 모든 것을 최대한 신속하게 실행하라.
러빈저 교수는 위기가 발생한 지 24시간 안에 어떤 대응을 하느냐에 따라 기업 명운이 갈린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러빈저 교수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비록 한 회사 내에서 직급이나 분야가 다른 여러 관계자가 있다 해도 기업에서 내보내는 모든 메시지는 일관성이 있어야 오해나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수호 기자, 최창원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1호 (2022.10.26~2022.11.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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