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확실한 소부장, 연말 IPO 몰아칠까…막판 상장 노린 기업 어디
최근 기업공개(IPO) 시장은 한마디로 싸늘하다. 경기 침체가 심각한 수준인 데다 증시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해서다. ‘대어(大魚)’가 사실상 실종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니콘급 마켓컬리(운영사 컬리)도 연내 상장이 불투명하다. 역시 조 단위 대어였던 진단시약 개발 업체 바이오노트마저 상장 계획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 진단키트 실적이 정점을 찍었다고 보고 기업가치를 낮춘 게 상장을 미룬 이유다. 이 밖에 골프존카운티, 케이뱅크 등은 상장 요건을 충족하고도 증권신고서 제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하지만 해를 넘기지 않고 11~12월 상장하려는 기업이 적지 않다. 보통 11월은 수요예측·일반청약에 나서는 회사가 가장 많이 몰리는 IPO 업계 ‘성수기’로 꼽힌다. 최근 5년(2017~2021년)간 월간 신규 상장 기업을 분석해보니, 11월 평균 12.4곳 기업이 수요예측을 진행해 7월(10.6곳), 10월(8.8곳)을 제치고 가장 많았다(흥국증권 분석).
지난 9월 30일 기준 34개 기업이 IPO 수요예측 일정을 진행 중이며 심사를 청구한 기업은 41개다. 전문가들은 올해 4분기에는 분기 중 가장 많은 기업이 상장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수요예측을 진행 중인 34개 기업이 모두 상장하고 심사를 청구한 기업 중 절반 이상이 수요예측에 돌입한다고 가정했을 때, 과거(1999~2021년) 평균(39개) 대비 더 많은 기업이 상장을 추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통적으로 11월 성수기
▷‘밸류’ 부담 없는 중소기업 다수
연말 IPO 도전 기업은 성장성보다 숫자(실적)를 강조한다. 아울러 기업가치에 대한 평가가 냉정해지는 만큼 ‘조’ 단위 대어보다 중소형 기업 IPO에 무게가 쏠린다.
이른바 코스닥 문을 두드리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이 대표적이다. 소부장은 올 상반기 IPO 시장에서도 흥행 키워드였다. 하반기 들어 ‘대박 공식’은 깨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그래도 다른 비즈니스 모델보다는 호의적인 시선을 받는다.
반도체 시장이 빙하기라지만 반도체 관련 소부장 기업 상장이 줄을 이을 듯 보인다. 3분기부터 꺾인 반도체 업황이 어차피 내년 상반기까지 회복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다수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외 금융 시장 불안으로 기업 돈줄이 빠르게 말라가는 만큼, 원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것보다 IPO를 통한 자금 조달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오염제어 솔루션 기업 저스템은 수요예측에서 희망 공모 가격 9500~1만1500원의 중간인 1만500원으로 확정했다. 415개 기관이 참여해 경쟁률 283.4 대 1을 기록했다. 저스템은 전통적인 IPO 성수기인 10월을 넘기지 않고 28일 상장에 성공했다.
큐알티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반도체 신뢰성 시험과 분석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 사업부로 시작해 2014년 분사했다. 35년 이상 신뢰성 평가 기술 노하우를 쌓아왔고 고객사는 전 세계 1500곳에 달한다. 지난해 매출 705억원, 영업이익 186억원을 기록한 알짜다. 그러나 수요예측에 389개 기관이 참여해 경쟁률은 86.9 대 1에 그쳤다. 이에 최종 공모가는 4만4000원으로 결정했다. 공모 희망 범위(5만1400~6만2900원) 하단보다 14%가량 낮다. 큐알티는 11월 2일 코스닥에 이름을 올린다.
2014년 설립된 전자소재 전문기업 제이아이테크도 코스닥을 ‘노크’한다. 특수 조건 합성, 초고순도 정제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해 다양한 소재를 생산한다. 역시 빼어난 실적이 강점이다. 지난해 매출 205억원에 27%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315억원 매출을 기록하며 지난해 전체 실적(205억원)을 54% 초과 달성했다.
티에프이와 엔젯은 각각 11월 3~4일 수요예측에 나선다. 티에프이는 테스트 소켓·테스트 보드·번인 보드 등 반도체 패키지 테스트 자원을 공급하는 종합 솔루션 기업이다. 유도전기수력학(EHD) 잉크젯 솔루션 기업인 엔젯은 최근 기술 활용성을 인정받아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시장을 중심으로 고객사를 늘려가는 중이다. 펨트론은 11월 8~9일 수요예측에 들어간다. 3D 정밀 측정·검사 기술을 바탕으로 전자제품 조립공정 검사 장비를 개발, 공급한다.
2차전지도 IPO 시장에서 여전히 환영받는다. 2차전지 도전재용 카본나노튜브(CNT) 개발 업체 제이오가 4999억~5999억원의 희망 몸값을 제시해 11월 최대어로 꼽힌다. 2차전지 장비 업체 윤성에프앤씨도 희망 시총을 4229억~4947억원으로 제시하며 다른 업체 대비 높은 몸값을 내놨다.
‘소부장’이라도 다 환영받는 건 아니다. 통신 반도체 전문업체 자람테크놀로지가 IPO를 일시 중단한 것이 한 사례다. 자람테크놀로지는 공모가 기준 시총이 최대 1609억원인 중소형사다. 자람테크놀로지는 “현재 회사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국내외 시장 상황과 대내외 현안 등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모를 추후로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해 공모를 철회한 회사가 SK쉴더스·원스토어·현대오일뱅크 같은 ‘대형주’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자람테크놀로지 같은 중소형주가 IPO 일정을 뒤로 미룬 것은 이례적이다.
▶밀리의서재, SAMG 눈길
▷바이오 한파 속 ‘인벤티지랩’
소부장을 제외한 기업 중에서는 KT 계열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서재가 눈에 띈다. 2017년 국내 최초로 구독형 전자책 서비스 모델을 선보였다. 최근 도서 IP를 활용해 오디오북, 오디오 드라마까지 서비스하는 종합 ‘독서 플랫폼’으로 변화를 노리는 중이다.
밀리의서재는 테슬라 요건을 통해 코스닥 시장 입성을 추진한다. 테슬라 요건은 적자 기업이라도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으면 코스닥 입성을 허용하는 특례상장 제도다. 한 차례 일정을 연기한 이후 재도전에 나섰고 11월 중 상장을 공식화했다. 희망 공모가는 2만1500~2만5000원으로 총 공모 예정 금액은 430억~500억원이다. 청약 일정은 11월 10~11일이다.
다만 흥행 여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실적 향상과 구독자 수 증가는 긍정적인 포인트다. 누적 회원 수는 올해 8월 기준 547만명으로 지난해 말(418만명) 대비 크게 늘었다. 구독자 수 역시 지난해 말 39만명에서 올해 8월 기준 91만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플랫폼’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극복하는 게 과제다. 비교 대상 기업가치가 고평가됐다는 지적과 함께 밀리의서재 공모가 역시 비싸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파가 세게 몰아친 바이오 업계에서도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이 있다. 2015년 설립된 약물전달 기술(DDS) 기업 인벤티지랩이다. 이 기업은 장기지속형 주사제와 세포·유전자 치료제 제조 플랫폼을 개발한다. 미세유체공학(마이크로플루이딕)을 바탕으로 만든 약물전달 기술 플랫폼이 인벤티지랩의 강점이다. 남성형 탈모 치료제와 치매 치료제, 약물중독 치료제, 전립선비대증, 전립선암 치료제 등을 연구 중이다. 최근 유한건강생활과 의료용 대마 후보물질을 활용한 장기지속형 주사제 공동 개발·상용화 계약을 맺는 등 파트너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애니메이션 ‘미니특공대’로 이름을 알린 에스에이엠지엔터테인먼트(SAMG)도 상장 후보군이다. SAMG는 국내 최다 3차원(3D) 애니메이션 제작 경험과 최대 규모의 자체 IP를 보유했다. 유럽과 중남미 시장에서 인기를 끈 ‘레이디버그’를 공동 제작했고 ‘캐치! 티니핑’ 시리즈와 ‘슈퍼다이노’ 등 자체 IP를 연달아 히트시켰다.
다만 상장 일정을 다소 연기했다. IPO 수요예측이 몰리며 금융감독원이 기간 정정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명순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1호 (2022.10.26~2022.11.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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