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다정함이 없었다면

정혜영 2022. 10. 31. 15: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평] 브라이언 헤어 & 바네사 우즈 지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정혜영 기자]

한때 우리 인간 종(호모 사피엔스)의 진화를 대담하게 다룬 책, <사피엔스>에 흠뻑 빠졌었다. 그러나 책에 반한 것과는 별개로, 호모 사피엔스가 지나간 모든 대륙의 다른 인간 종들이 멸종했다는 사실로 우리 종의 잔인성과 마주하는 일은 결코 편치 않은 일이기도 했다.

살아보지 못한 시대, 내 눈으로 보지 않은 시대라며 외면하고 싶지만,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와 이민족 학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각종 폭력과 파괴 행위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데 아득해진다.

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이토록 잔인한 것인가? 결국 뿌리를 찾아들어 가다 보면 같은 호모 사피엔스 종으로 수렴될 내 정체성에 그토록 잔인한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부인하고 싶었다.

<휴먼카인드>(뤼트허르 브레흐만)에서 왜곡되어 전파된 사실을 바로 잡음으로써 인간의 본성은 선한 것임을 확인하지 않았냐고, <공감하는 유전자>(요아힘 바우어)에서 인간 유전자의 활동이 의미 지향적인 삶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냐고 소리 높여 외치고 싶었다. 그럼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인간 잔혹사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내 주위를 둘러보면 어디에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고 싶어 안달하는 다정다감한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가족, 친구, 지인들과의 단톡방에는 항상 안부를 묻고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며 용기를 북돋우는 말들로 넘쳐나는데. 도대체 호모 사피엔스의 잔인함은 어디에서 기인한단 말인가?

계속 반복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이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이언 헤어 & 바네사 우즈)에서 찾은 듯하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 바네사 우즈
ⓒ 디플롯
 
저자는 다른 사람 종들이 멸망하는 와중에 호모 사피엔스를 번영하게 한 이유로 초강력 인지능력을 들고 있는데, 이는 협력적 의사소통능력인 '친화력'을 뜻한다. 인간과 98%의 유전자 유사성을 보이는 침팬지는 결코 할 수 없는 일, 즉 하나의 공동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의도로 의사소통을 하는 능력이 우리 종이 끝까지 남아 번영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다른 똑똑한 인류가 번성하지 못할 때 호모 사피엔스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더 똑똑해서가 아니라 특정한 형태의 '협력'에 더 출중했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저자는 '다정함'을 '일련의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인 협력, 또는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행동'으로 정의한다. 인간 사회에서 다정함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누군가와 가까이 지내는 단순한 행동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떤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협력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등의 복합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p.20).

이러한 호모 사피엔스의 다정함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이웃들의 모습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특성이다. 내 가족을 돌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기아와 폭력에 내몰린 먼 지구촌 이웃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기부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봉사활동을 자처하는 다정함이 우리 종의 특성인 것이다.     

야생의 늑대나 고양이가 가축화를 통해 두려움과 공격성이 감소되면서 협력적 의사소통과 같은 사회적 기술을 더 유연하게 습득할 수 있었다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더 관심 가는 대목은 사람에게도 가축화된 동물들에게서 나타나는 징후들이 발견된다는 점이었다. 

리처드 랭엄은 이를 자신의 저서, <악마 같은 남성>에서 '자기 가축화'라 칭했으며, 인간에게도 사회화 과정에서 공격성 같은 동물적 본성이 억제되고 친화력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과정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가설(사람 가축화 가설)에 따르면, 우리가 자신과 같은 집단 구성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는 친화력을 느끼는 반면, 그 범위 밖의 외부인에 대해서는 비인간화 하는 능력을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한없이 다정한 우리가 비인간화한 외부 집단에 대해서는 그토록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도 있는 것이다.

특정 집단을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해한다는 이유로 '폭도', '괴물 집단'이라 명명하고 그들에 가해지는 국가적인 폭력에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가 속하지 않은 외부 집단에 대한 비인간화를 통해 또 다른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을 우리는 방관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저자는 집단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길은 결국 접촉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행동의 변화이며, 이는 태도의 변화를 가져다준다고 강조한다. 결국, 집단 간에 연대하고 공감하는 길만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리라.

저자의 마지막 문장대로,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다른 똑똑한 인간 종이 아니라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며 앞으로도 우리 종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테니.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 함께 게시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