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연속 우승의 의미, 김상식호에 대한 재신임

이준목 2022. 10. 3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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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원큐 FA컵] 전북 현대, 2년 만에 챔피언 복귀

[이준목 기자]

 3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2 하나원큐 FA컵 결승 2차전 전북 현대와 FC서울의 경기에서 전북 조규성(오른쪽)이 2대0으로 앞서가는 헤더 골을 넣고서 세리머니하고 있다. 2022.10.30
ⓒ 연합뉴스
 
프로축구 전북 현대가 대한축구협회컵(FA컵) 우승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3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의 2022 하나원큐 FA컵 결승 2차전서 전북은 바로우의 선제골과 조규성의 멀티골을 앞세워 FC 서울에 3-1로 완승했다. 앞선 1차전 원정에서 2-2 무승부를 거뒀던 전북은 두 경기 합계 5-3으로 앞서 서울을 제치고 2년만에 챔피언으로 복귀했다.

전북은 2000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2003, 2005, 2020년에 이어 올해 다시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통산 5회 정상에 올라 수원 삼성과 함께 FA컵 공동 최다 우승구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올해 FA컵 타이틀로 전북은 한국 프로축구사에 전대미문의 '9년 연속 공식 대회 우승'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를 경신했다. 전북은 2014년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K리그,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FA컵에서 매년 하나 이상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14-2015년에는 K리그를 2연패했고, 2016년에는 승부조작으로 인한 승점삭감 여파로 리그에서 서울에 역전우승을 허용했으나 대신 10년 만에 ACL 우승으로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는 전대미문의 K리그 5연패를 이뤄냈다. 특히 2020년에는 리그와 FA컵을 동시에 차지하는 더블을 달성했다.

2022시즌 전북은 21승 10무 7패 승점 73점으로 라이벌 울산 현대(22승 10무 6패 승점 76)에 3점 차로 뒤지며 6년 만에 리그 우승에 실패했다. ACL에서 K리그 구단중 유일하게 4강까지 올랐으나 우라와 레즈(일본)와의 연장 혈투 끝에 승부차기에서 패하며 분루를 흘려야했다.

FA컵 우승마저 내준다면 '무관'으로 2022년을 마감할 수 있었던 상황. 2010년대 이후 리그를 지배해온 전북이라는 왕조의 이름값을 감안하면 용납할 수 없는 결과였다. 심지어 서울과의 결승 1차전에서는 초반에 0-2까지 끌려가는 최대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전북은 역시 전북이었다. 준결승에서 2관왕을 노리던 울산을 격침시키며 자존심을 세웠고, 결승에서는 또다른 라이벌 서울의 거센 저항을 뚫고 우승을 향한 마지막 기회를 살려냈다.

올시즌 전북을 이끈 에이스는 모두 바로우였다. 전반적으로 기복이 심했던 전북 공격진에서 유일하게 꾸준한 활약을 펼쳐준 바로우는 28경기에서 13골 6도움을 기록했다. 시즌 중반까지 김천 상무에서 뛰었던 조규성(17골 5도움)을 제외하고 전북 소속으로만 기록한 최다 공격포인트였다. 부상과 태업설 등으로 잡음이 많았던 지난 시즌과 달리 올해는 꾸준한 몸 상태와 프로의식으로 진가를 발휘하며 전북 팬들의 마음까지 돌렸다.

FA컵에서도 바로우의 활약은 결정적이었다. 1차전에서도 서울에 끌려가는 상황에 환상적인 동점골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고, 2차전에서는 1골 1도움으로 팀의 우승을 확정하는 2골을 모두 자신의 발끝에서 만들었다. FA컵 전체 5경기 3골 1도움으로 우승의 1등 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1차전에서 허벅지 부상을 당하고도 2차전에서 출전을 강행하여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투혼을 보여준 것은 군계일학이었다.

또한 조규성은 FA컵 결승 1, 2차전서 팀이 터뜨린 5골 중 3골을 책임지며 바로우를 제치고 FA컵 MVP를 차지했다. 앞서 종료된 K리그1에서는 31경기 17골로 주민규(제주 유나이티드 37경기 17골)를 제치고 생애 첫 리그 득점왕에 오른 데 이어 또 한 번의 경사다. 이동국-김신욱 등 전북이 배출한 K리그 정통 토종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어가는 조규성은 눈부신 성장세를 바탕으로 축구대표팀 '벤투호'에서도 핵심 자원으로 거듭나며 2022 카타르월드컵 출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북의 수장 김상식 감독에게도 이번 FA컵 우승은 '재신임을 위한 기사회생'의 의미가 강하다. 사실 김 감독은 이번 시즌 내내 마음고생이 심했다. 울산에 밀려 리그 6연패에 실패한 데다 김상식 감독의 경기력-전술-리더십-인터뷰 설화 등을 둘러싸고 비판 여론이 급등했다.

전북 특유의 '닥공'이 사라지고 무색무취한 팀 컬러가 되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높아졌다. 특히 모든 책임의 화살이 김 감독에게 집중된 측면이 있었다. 결국 홈과 원정을 불문하고 전북이 경기를 치르는 곳에선 김상식 감독을 비난하는 걸개가 잇달아 등장하거나, 온라인에서 팬들에 의한 성토의 메시지가 꾸준히 나오기도 했다. 만일 전북이 올시즌 끝내 무관에 그쳤다면, 구단으로서도 김 감독을 계속 비호하기는 어려운 분위기가 되었을 것이다.

김 감독은 천신만고 끝에 FA컵 우승을 따내고 기쁨보다는 차라리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김 감독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울고 싶었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욕도 많이 먹었다. 다음 시즌에는 더 최선을 다해서 더 발전하는 전북을 보여드리겠다"며 리그 우승 탈환과 명예회복을 다짐했다.

리그 2위-ACL 4강-FA컵 우승 정도라면 대부분의 구단들에게는 엄청나게 성공한 시즌이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올시즌 김상식 감독은 사실상 웬만한 하위권팀 감독들보다도 더 많은 비판에 시달렸다. 그만큼 전북이라는 구단을 향한 기대치가 타 구단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북 입장에서는 김상식 감독을 쉽게 포기하기도 어려웠다. 김 감독은 선수-코치감독으로서 전북의 역대 우승을 모두 함께한 유일무이한 인물로서 최강희 전 감독-은퇴한 이동국과 함께 지금의 전북 왕조를 구축한 '일등공신' 중 하나였다. 김 감독이 지난 2년간 많은 시행착오로 아쉬움도 남겼지만 그동안 구단에 오랫동안 헌신해온 기여도를 감안할 때 한 해 부진하다고 내치는 것은 부담이 컸고 레전드를 예우하는 전북의 전통과도 맞지 않았다. 대신 김 감독 역시 내년 이후에도 전북과 동행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서는 좀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

전북은 김 감독의 리더십 문제 외에도 올시즌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일본인 선수 쿠니모토는 음주사고를 일으켜 퇴단했다. 주전경쟁에서 밀린 이용은 수원FC로 자리를 옮겼다. 외국인 공격수들은 공존에 실패하며 바로우만이 제 몫을 했을 뿐 일류첸코는 서울로 떠난 뒤에야 부활했고, 구스타보는 부진했다. 이적시장에서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과 전력 공백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도 평소의 전북답지 않았다.

독주시대가 끝난 전북은 이제 '준우승 징크스'를 탈피한 울산이라는 강력한 대항마가 생겼다. 내년에도 전북이 10년 연속 공식 대회 우승이라는 기록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과거의 영광은 지나간 시간일 뿐이고 스포츠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 대대적인 전력보강과 함께 체질개선을 위한 노력이 없다면 전북은 2023시즌에도 더 험난한 도전과 마주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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