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말고 걸으세요!" DJ폴리스 호통…日핼러윈은 달랐다
"거기, 사진 찍지 마세요. 통행에 방해됩니다. 앞 사람을 따라 움직이세요!"
30일 오후 9시 일본 도쿄(東京) 시부야(渋谷)역 앞 스크램블교차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기자가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멈춰 몸을 돌리자 바로 경찰의 호통이 되돌아왔다. 평일에도 붐비는 이 교차로는 이날 핼러윈 직전 주말을 맞아 모여든 사람들로 꽉 들어차 움직일 공간을 찾기 힘들었다.
경찰은 차도와 인도 사이에 노란색 천으로 폴리스라인을 만들어 행인들이 차도로 밀려나오지 않도록 유도했다. 교차로의 각 모퉁이에는 높은 경찰차 위에 올라탄 이른바 'DJ폴리스'들이 속사포처럼 안내 멘트를 쏟아냈다. 음악DJ처럼 흐름을 유도한다고 해서 붙은 별칭이다. "신호가 바뀌었습니다. 멈추지 말고 건너가세요." "모여서 서 있으면 위험합니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세요."
전날 한국 이태원에서 일어난 압사 사고의 영향으로 경계는 더욱 삼엄했다. 현장에 있던 경찰은 "한국에서 일어난 사고는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좁은 골목에 사람이 몰리지 않도록 중점적으로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이날 시부야에는 약 350명의 경찰이 투입됐고, 시부야구 직원 및 자체 경비인력도 100명 정도 배치됐다.
핼러윈데이 당일인 31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자 일본 경찰청은 전국 경찰에 '핼러윈 교통정리'를 지시했다.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일본 관방방관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핼러윈 사고 방지를 위한 대응과 관련한 질문에 "이번 사고(한국 이태원 참사)를 접하고 핼러윈에 즈음해 다수의 인파가 예상되는 경우 현지 지자체 등과 연계해 교통정리 등을 실시하고 사고 방지를 위해 노력할 것을 전국 경찰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21년 전 압사사고 계기, '혼잡 경비' 강화
일본에서는 핼러윈 등 사람들이 몰려드는 각종 축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강도 높은 경비와 지자체의 계도 활동을 병행한다. 2001년 7월 21일 효고(兵庫)현 아카시(明石)시에서 일어난 압사 사고가 주요 계기가 됐다. 당시 바닷가 불꽃놀이 행사에 온 군중들이 좁은 다리를 지나다 겹쳐 쓰러지면서 11명이 사망하고 24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후 2005년 경비업법을 개정해 경비 항목에 '혼잡 경비'를 신설했다. 인파가 몰리는 상황이 예상될 경우 경찰과 경비회사는 주최 측이나 지자체, 철도회사 등과 연계해 보행로 확보와 과밀 상태 완화 방안, 긴급 시 대응책 등을 마련한다. 각 역의 수용 인원수 등을 바탕으로 역내 혼잡이 예상되면 경찰이 철도회사와 논의해 열차 무정차 통과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2013년 브라질 월드컵 응원전 때부터 시작된 'DJ폴리스'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당시 한 경찰관이 경찰차 위에 올라가 "우리는 12번째 선수입니다. 질서를 지켜주세요" 등 유머러스한 멘트로 혼란을 정리한 게 계기가 됐다. 'DJ폴리스'들은 높은 곳에서 거리 상황을 내려다보며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리지 않도록 유도한다.
"거리에서 술 마시면 벌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몰리는 시부야에서는 매해 핼러윈 때마다 크고 작은 폭력 사건이나 기물 파손 등이 이어졌다. 2018년에는 술에 취한 20대 남성 4명이 옷을 벗고 자동차를 뒤집는 등 행패를 부려 폭력행위처벌법 위반으로 경찰에 체포되는 '시부야 크레이지 핼러윈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시부야구는 조례를 제정해 핼러윈 기간 동안 오후 6시부터 오전 5시까지 길거리나 공원 등 야외에서 술을 마시는 행위를 금지했다. 인근에 있는 편의점이나 마트 등에서도 핼러윈 기간 중에는 자발적으로 술을 팔지 않는다.
핼러윈 행사는 특정 주최 단체가 없기 때문에 시부야구가 나서 사전 계도 활동을 펼친다. 시부야 스크램블교차로 전광판에서 일본어와 영어로 노상 음주를 금지하는 영상을 상영하고, 지하철 역과 버스 차내 등에 '매너를 지키자'는 내용의 광고 포스터를 붙여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시부야 센터가 입구나 이노카시라 거리 등 3개 주요 장소에 인공지능(AI) 기술로 오가는 인원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범 카메라를 설치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태원 토끼머리띠' 지목된 남성 "나 아니다"…꺼낸 증거 보니 | 중앙일보
- '완벽남' 뒤 불륜남 자책…'할리우드 전설' 속내 14년만에 공개 | 중앙일보
- The JoongAng Plus 런칭기념 무료 체험 이벤트
- 이근 "쓰레기 ΧΧ"…이태원 사망자 비난 악플에 분노 | 중앙일보
-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피멍" 이태원 생존자 다리 사진 공개 | 중앙일보
- 이태원 참사 유명인이 유아인?…루머에 소속사가 입을 열었다 | 중앙일보
- "속상해"…장제원 아들 장용준, 석방 3주만에 올린 사진 한장 | 중앙일보
- "딸 업고 1㎞ 뛰었다"…'살려줘' 딸 문자에 이태원 달려간 아빠 | 중앙일보
- 이찬원 "노래 못해요"…이태원 참사 애도했다가 봉변, 무슨일 | 중앙일보
- "사람 죽고있다, 제발 돌아가라" 그날 목 쉬도록 외친 경찰관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