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이태원 장면 떠올라”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주의보
사고 관련 영상 퍼뜨리지 말고 반복해서 시청하지도 말아야
[아시아경제 문화영 인턴기자] 핼러윈을 앞둔 토요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가 순식간에 대참사 현장으로 변한 가운데 현장에 있던 사람들, 경찰과 소방대원은 물론 참사 현장의 모습을 지속해서 접한 일반 시민들까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인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PTSD는 사람이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된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는 경우를 말한다. 이후 집중력 저하, 충동조절 장애, 우울증, 공황발작, 환청, 약물 남용 등으로 이어져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참사 발생 당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의식을 잃은 채 심폐소생술(CPR)을 받는 모습과 모포로 덮인 사람들이 줄지어 누워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겹겹이 쌓인 사람들이 구급대원의 손길을 애타게 찾는 모습부터 후송되는 사람들의 모습도 담겼다. 이처럼 참사 당시 사진과 영상이 무분별하게 퍼지면서 이를 본 상당수가 우울감이나 무력감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온라인을 통해 사진과 영상을 본 시민들은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 "현장 사진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등 고통과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처럼 사진과 영상이 빠르게 확산한 배경에는 사람들 접근이 어려운 곳이 아니었고 서울 한복판 거리에서 벌어진 대참극이었기 때문에 대중들이 현장에서 사진과 영상을 찍어 올리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30일 긴급성명을 통해 "인명 피해가 큰 사고로 국민들이 또 하나의 커다란 심리적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됐다"며 "사고 당시의 참혹한 영상과 사진이 SNS를 통해 일부 여과 없이 공유되고 있는데 고인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2차, 3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으며 다수 국민에게 심리적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심리적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사고 당시 현장 영상과 사진 공유 행위를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또 네티즌들에게는 "사건 사진을 많이 보지 말라"며 "자극적인 SNS보다 뉴스를 통해 사건을 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 정신과 종사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진으로 접하는 건 PTSD 진단 기준이 아니지만 반복해서 계속 사망자의 모습을 보면 PTSD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31일 오전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해 "저절로 회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평생 진행되거나 악화해 우울증이나 자살 위험성이 올라가기 때문에 조기에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며 "직접 장면을 목격하지 않았더라도 지인의 소식을 받거나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면 이것 역시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우 크게 영향을 받고 사건과 관련된 것이 자꾸 자극하기 때문에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이번 사건과 관련된 유가족 당사자들, 현장 목격자들, 구조에 참여하셨던 정신 건강에 필요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세월호 사건 이후 국가 트라우마센터가 만들어졌고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회복 지원 인력이 준비돼 있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누군가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 심리적 죄책감을 유발하게 만든다"며 소방관과 경찰관들의 정신 건강을 걱정했다. 실제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이태원 현장 출동했던 경찰관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아비규환이었던 현장 상황, 사망자들 시신이 아직도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며 "더 살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자책했다. 당시 CPR을 도왔다는 한 시민 역시 "지금도 손발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나온다"고 슬픔을 호소했다.
현재 정부는 유가족과 부상자 등을 위한 정신 건강 대책을 내놨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30일 부상자 가족 등에 대한 심리치료를 위해 국가 트라우마 센터 내에 이태원 사고 심리지원팀을 구성·운영하기로 밝혔다.
문화영 인턴기자 ud366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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