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샌드박스로 184건 사업화 물꼬"

최서윤 2022. 10. 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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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의, 샌드박스 승인과제 전수분석
규제 샌드박스 의의·정책 제언 담아

[아시아경제 최서윤 기자] 정부의 규제혁신 실험장이 된 샌드박스와 관련해 파급력이 큰 사업이나 규제법령 정비의 근거가 확보된 사업 등은 관련 법령을 신속하게 정비하고 사업 시행 조건을 완화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 샌드박스 지원센터는 31일 ‘규제 샌드박스 승인과제와 규제현황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2020년 5월부터 이달까지 지원센터를 통해 규제 샌드박스 승인을 받은 과제(184건)를 전수 분석하고 규제 샌드박스 의의와 제언을 담았다.

규제 샌드박스는 낡은 법과 제도에 막힌 혁신 사업자에게 특례를 부여하는 제도다. 대한상의는 지난 2020년 5월부터 약 900일간 규제 샌드박스 민간 접수기구로 활동하며, 기업들의 규제 샌드박스 통과를 지원하고 있다.

韓에만 있는 규제 장벽…불가능했던 사업모델, 샌드박스로 물꼬

보고서는 규제 샌드박스가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를 푸는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상의 규제 샌드박스 승인과제(184건) 중 88%(162건)는 해외에선 가능하지만 국내에선 불가능했던 사업모델로 분석됐다.

대표 사례가 ‘비대면 의료’다. 미국, 영국, 유럽 등 선진국 중심으로 시작된 비대면 진료 사업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전 세계에서 주목받았지만, 한국에선 규제로 인해 사업이 불가능했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재외국민 국민을 대상으로 한 한국 의료진의 비대면 진료 서비스, 홈 키트를 활용해 집에서 성병 원인균 검사를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 집에서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스마트 기기 등이 사업 첫발을 뗐다.

모빌리티 분야에서도 ‘갈라파고스 규제’를 해결한 사례가 많았다. 자동차 강국인 미국, 독일 등에선 차량 소프트웨어를 무선 업데이트할 수 있는 ‘OTA 서비스(Over-the-Air)’, 자율주행차량의 성능을 높일 수 있는‘3차원 정밀지도 서비스’ 등이 가능했지만, 한국에선 사업이 어려웠다. 자기 차량을 타인과 공유하는 차량 P2P 서비스,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자가용을 활용해 병원까지 데려다주는 NEMT 서비스는 이미 해외에선 가능한 사업으로 분류됐지만 이 사업들 모두 규제 샌드박스로 한국에서의 첫 삽을 떴다.

모빌리티·의료·공유경제 샌드박스 노크…‘규제 샌드박스=규제혁신 타깃’

보고서는 규제 샌드박스가 신사업에 ‘기회의 문’을 열어 주고 있다고 언급했다. 대한상의 샌드박스 승인과제를 분석한 결과, 분야별로는 모빌리티(37건), 공유경제(26건), 의료(23건), 에너지(20건), 스마트기기(17건) 순으로 많았다. 모빌리티, 공유경제, 의료 분야에서 승인받은 과제가 전체 승인과제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다.

특히 신사업을 펼치려는 스타트업·중소기업이 규제 샌드박스를 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대한상의 승인과제 184개 중 138개(75%)가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신청한 과제였다. 최근엔 대기업의 규제 샌드박스 활용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대기업 비율은 2020~2021년 18%대에서 2022년 10월 기준 32%대로 1.7배 증가했다.

규제 샌드박스가 ‘규제혁신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평가했다. 규제 샌드박스가 법이나 제도를 바꿔 규제를 풀어야 할 지점을 알려주고 있다는 의미다. 대한상의 샌드박스 승인과제 184건 중 41개(22%)에 대한 규제개선이 이뤄졌다. 정비가 완료된 과제는 28개, 일부 법령이 정비된 과제는 13개다. 실증사업이 종료되기 전 선제적으로 규제를 혁신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규제혁신 과제에도 규제 샌드박스 관련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대한상의는 규제 샌드박스 과제 22건에 대한 신속한 법령 정비를 요청했고 정부는 18건에 대한 개선 방향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한상의, '신속한 법령 정비·사업 시행 조건 완화·컨트롤타워 역할 강화' 요청

대한상의 보고서에는 샌드박스 제언도 담겼다. 보고서는 규제 샌드박스 발전 방향으로 ▲신속한 법령 정비 ▲사업 시행 조건 완화 ▲컨트롤타워 역할 강화를 꼽았다.

대한상의는 “규제 샌드박스로 사업화 물꼬는 텄지만 해외에선 이미 법 제도가 완비되어 규제 없이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규제 샌드박스 신청이 다수인 사업, 파급력이 큰 사업, 규제법령 정비의 근거가 확보된 사업 등은 신속하게 법령 정비를 진행해 글로벌 경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한상의는 규제 샌드박스 사업들의 시행조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규제 샌드박스로 규제특례를 받을 경우, 실증지역·실증규모·사업 시행 전후 부가 조건이 붙는다. 국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조치다. 다만 안전성이 검증된 과제나 규모를 넓혀 실증을 진행해야 하는 과제 등의 경우에는 조건을 완화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한상의가 지난 5월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80% 이상의 기업이 규제샌드박스 활성화를 위해 사업 진행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보고서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규제 샌드박스 승인기업들은 하나의 사업모델과 관련해 여러 부처의 규제를 받는 경우가 있고, 규제부처뿐만 아니라 지자체와 협의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한상의 설문조사 결과, 규제 샌드박스 이용 시 어려웠던 점으로 규제부처 및 지자체 조율 등을 꼽았다. 규제부처와의 협의를 지원해줄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아직 국내기업들은 해외보다는 강한 규제 환경 속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며 “정부는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제도를 신속하게 정비해 혁신기업이 글로벌 경쟁에 뒤처지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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