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어떤 사외이사가 될 것인가

세종=김혜원 2022. 10. 3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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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이사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1998년 사외이사 제도 첫 도입 이후 24년이 지나도록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거수기'가 첫 번째다.

독립성 보장을 위해 사외이사 중에서 이사회 의장을 맡는 기능이 제역할을 했고 전문성을 앞세운 소수의 목소리가 한데 뭉쳐 힘을 받았다.

사외이사를 거수기쯤으로 가볍게 여긴 경영진의 오판도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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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이사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1998년 사외이사 제도 첫 도입 이후 24년이 지나도록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거수기’가 첫 번째다.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이사회의 원안 가결 비율이 99%대에 달한다. 이들에게 사외이사 본연의 감시·감독 사명감은 실종된 지 오래다. 희대의 기업 사기 사건을 일으킨 미국 엔론은 저명한 인사 10여명으로 최강의 사외이사단을 꾸렸지만 회계부정을 막기는커녕 내부 고발자가 나타나기까지 인지조차 못해 사외이사 무용론을 야기했다.

둘째는 ‘생계형’이다. 사외이사가 은퇴 후 돈벌이 수단이 된 경우다. 현행 상법상 최장 6년간 직장을 더 다닐 수 있다. 직장 두 곳도 가능하다. 사외이사 모시기가 힘들어지면서 보수는 섭섭지 않은 수준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애초 ‘예스맨’을 자처한 일관된 거수기와 달리 큰 뜻을 품은 생계형은 의욕을 내비치다 직장을 잃기 일쑤다. 회사의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분자로 낙인찍고 연임 명단에서 슬그머니 빼버리는 식이다. 튀어서는 안 되는 생계형도 결국 거수기가 된다.

남은 하나는 경영진 눈으로 볼 때 ‘눈엣가시형’이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균형 잡힌 견제자로서 사외이사가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 사례다. 독립성 보장을 위해 사외이사 중에서 이사회 의장을 맡는 기능이 제역할을 했고 전문성을 앞세운 소수의 목소리가 한데 뭉쳐 힘을 받았다. 경영진의 회유와 압박에도 흔들림이 없자 회사는 두 차례 안건 상정을 미뤄야 했다. 사외이사를 거수기쯤으로 가볍게 여긴 경영진의 오판도 한몫했다. 정권 운운하는 일각의 목소리는 사외이사 제도를 스스로 부정하는, 자가당착일 뿐이다.

한수원 사외이사의 반란은 한계가 있고 답도 이미 정해져 있다. 이례적으로 속전속결로 진행 중인 사외이사 교체 작업이 한두 달 후 끝나면 고리 원자력발전소 내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을 짓는 안건은 통과될 것이 자명하다. 다만 작금의 논란은 시설을 짓지 말자는 데서 비롯된 게 아니다. 40년 넘게 제자리인 고준위 영구 방폐물 처분시설 로드맵을 먼저 명확히 하자는 것과 보다 정교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자는, 일의 선후 관계에 관한 문제제기다. 향후 지역주민 보상금을 포함해 수조원의 투자비가 들어갈 의사결정을 계획서 하나로 때우기에는 한수원이 짊어질 위험부담도 적지 않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GGA)가 매 2년마다 발간하는 아시아 주요국의 기업지배구조 제도와 관행을 평가하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종합 평점 52.9%로, 12개국 중 하위권(9위)에 세 차례 연속 머물러 있다. 특히 AGGA는 한국의 개선 과제로 입법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공공 협의 절차, 입법예고 의견수렴 절차의 획기적인 강화를 손꼽았다.

세계적 화두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서 마지막 퍼즐은 G(거버넌스)에 달려 있다. 이 가운데서도 중요한 것이 이사회 본연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느냐다. 경영진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으로 책임경영을 하고 이사회는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독립성과 전문성을 최대한 살려 경영진을 감독해야 한다. 한쪽으로 균형추가 치우쳐서도 안 된다. 균형 감각 뛰어난 눈엣가시가 이사회에서 진중한 목소리를 더 내길 기대해본다. /경제부 김혜원 차장

세종=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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