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슬로바키아 순방 정의선, EU판 IRA 대비하나
EU, 美 IRA와 유사한 제도 도입시 신속 대응 위한 사전 포석 관측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현대차‧기아의 유럽시장 공략 전초기지인 체코와 슬로바키아를 잇달아 방문해 총리 등 고위급 인사들을 만나며 바쁜 해외일정을 보내고 있다.
일차적인 목적은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 지지 요청이라지만, EU가 장기적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유사한 역내 산업 보호 법안을 도입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에 대비해 유럽 내 전동화 전환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사전작업이 아니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31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정의선 회장은 지난 27일(이하 현지시간) 체코를 방문해 페트로 피알라 체코 총리를 예방한 데 이어, 28일에는 에두아르드 헤게르 슬로바키아 총리를 만났다.
정 회장은 체코와 슬로바키아 총리에게 공통적으로 현대차‧기아 공장의 ‘전동화 체제 전환’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는 양국 총리에게 반가운 화두이기도 하다.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급격히 전환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완성차 기업 해외 공장의 전기차 전환은 해당 국가에서 사업의 지속성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점이 된다. 우리나라가 제너럴모터스(GM)와 르노그룹의 국내 공장 전기차 생산 여부에 촉각을 기울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체코 오스트라바시 인근 노소비체에 위치한 현대차 체코공장은 2008년 가동 이후 지난달까지 누적 390만대 이상을 생산하며 현대차의 유럽 시장 공략 전초기지 역할을 톡톡히 했을 뿐 아니라 체코에도 막대한 경제적 효과와 고용을 창출해줬다.
슬로바키아 질리나 지역에 위치한 기아 오토랜드 슬로바키아 역시 2006년 가동 이후 지난해 누적 생산 400만대를 달성한, 기아에게나 슬로바키아에나 중요한 공장이다.
이들 공장이 전기차 시대에도 순조롭게 경제적 효과와 고용을 유지해주려면 전동화 체제 또한 순조롭게 이뤄져야 한다.
현대차‧기아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를 결정한 EU의 규제에 맞춰 이때부터 유럽에서 100% 전동화 전환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으며, 체코와 슬로바키아 공장도 그 스케줄에 따라 전동화 체제를 구축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변수가 생겼다.
미국 정부가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면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업체들이 피해를 입게 됨에 따라 EU도 비슷한 제도를 도입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지난 6일 ‘긴급 주요시장별 무역대책 회의’에서 “EU는 미국의 IRA상 전기동력차 보조금 제도와 유사한 제도 도입 가능성도 있다”며 “현지 진출 기업이나 정부기관 등과 협력해 모니터링 강화 등 선제 대응해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전기차 전용 공장이 가동되기 전에 IRA를 시행하며 당장 현대차‧기아의 발등의 불이 떨어진 것처럼 EU 역시 현대차‧기아 체코, 슬로바키아, 튀르키예 공장의 전동화 전환 스케줄보다 앞서 IRA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정의선 회장은 양국 총리와의 이번 만남에서 현대차‧기아의 현지 공장들이 유럽에서 주요 전기차 생산기지로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체코와 슬로바키아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 전동화 전환 스케줄을 기존보다 앞당기거나 전기차 공장을 추가로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향후 시장 상황이나 EU의 정책 변화가 있을 경우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각국 정부의 협조를 이끌어낼 여건을 마련해놓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에 이어 EU까지 IRA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할 경우 전기차 판매에서 양대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큰 현대차그룹으로서는 타격이 심각할 수밖에 없다”면서 “상황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는 게 현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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