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12신고 폭주 전조증상에도 경찰 통제 없었다
10만명 몰리는데 경찰 인력 '130여명'
통제 안된 상황서 피해 커져
[아시아경제 장세희 기자, 공병선 기자, 오규민 기자]이태원참사가 발생하기 하루 전인 28일부터 112 신고가 폭주했다. 특히 29일 오전 1시부터 ‘사람들이 길을 막고 있다’ ‘길거리에 사람이 많아 차량 통행이 되지 않는다’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멱살을 잡혔다’ 등의 내용 신고가 잇달았다.
3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28일 하루 동안 서울 용산경찰서에 접수된 112신고는 137건으로, 한 주 전 금요일(10월21일)보다 77건이나 증가했다. 인근 상인들 역시 사고 당시 많은 인파가 모여 혼란스러웠다고 말한다.
이태원에서 가죽제품을 파는 윤모씨(55)는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4일 동안 쉬게 되면 보통 토요일에 사람이 가장 많다"며 "소방, 경찰 등이 사전 회의를 한 것으로 아는데 예상보다 더 많은 인원이 나와버린 것 같다"고 했다.
30년 넘게 이태원에서 양복점을 운영한 박해일씨(50)는 "이미 금요일에 사람이 심각하게 많이 몰려서 인근 가게 입구들이 막혔는데 다음 날 인파는 어느 정도 예상을 했어야 맞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주 전 이태원 지구촌 축제 때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며 "토요일엔 큰 길가에서 할 게 없으니 클럽이 있는 뒷 골목 쪽에 사람이 몰린다"고 했다.
교통 불편, 통행 곤란, 행패 소란, 소음 신고 등이 이어지면서 충분한 전조증상이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통상 신고와 다를 게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참사가 벌어질 당시 현장에 배치된 경찰관은 137명이 전부였다. 이 중에서도 58명은 사복을 입고 있었다. 서울경찰청은 전날 설명자료를 통해 "당시 경찰 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며 연도별 인력 현황을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 경찰관은 39~90명 동원했지만 올해 137명 배치했다. 하지만 3년 만에 코로나19 관련 제한이 없는 첫 핼러윈 행사였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인력 배치였다. 경찰들이 당일 불법 촬영, 강제 추행, 마약, 절도 범죄 등 단속에 급급해 안전사고·질서 등엔 공백이 생겼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30일 브리핑에서 "그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며 "통상과 달리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 지역 밀도 줄였어야"…통제 안 된 상황 피해 키웠다
전문가들은 현장 통제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피해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경사진 곳에서 밀리면서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렸다"며 "밀지 말라고 아우성을 쳐도 음악 소리가 커서 위험 분위기가 뒤까지 전파 안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금요일부터 신고 접수가 증가하는 등 전조증상이 있었음에도 통행 관리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열광의 도가니 속 현장 통제가 실제로 가능한지 등까지 미리 따져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대형 참사 발생 전에는 분명한 사전 신호가 감지되게 돼 있다"며 "신고가 계속 들어오는 순간 질서를 통제해 지역 밀도를 줄이는 작업을 해야 했다. 군중 관리를 아무도 안 한 데다 좁은 골목이 사고 키웠다"고 분석했다.
서울경찰청은 수사본부를 설치해 사고 경위와 책임 소재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경찰 내부에서도 이번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규명하기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이번 핼러윈 축제는 주최자가 없는 데다 자발적으로 시민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주최가 분명하고 10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축제의 경우에는 ‘안전 관리 계획’을 수립하도록 돼 있다. 주최자가 없는 경우에는 책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안전 문제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만약 건물 내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면 건물 소유주나 관리자 등의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이번 사건은 좁은 골목에서 발생했다.
장세희 기자 jangsay@asiae.co.kr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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