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톡]"美에서만 신입 5만명 필요"…반도체 엔지니어가 없다

정현진 2022. 10. 3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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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미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피엣 시에 자리 잡은 연구 중심 명문 대학 퍼듀대. 최근 수십 명의 낯선 방문객들이 이곳을 찾았다. 연구실에서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창문 너머로 유심히 지켜본 이들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주요 반도체 기업에 속한 임원들이었다. 각자 기업에서 기증한 반도체 장비를 학생들이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이들 중에는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기업인 인텔에서 온 이도 있었다. 인솔자인 하이테크 랩의 지홍 첸 교수는 "반도체 교육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보다 앞서 지난 9월엔 미 행정부에서 반도체 정책을 이끄는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이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러몬도 장관은 반도체 교육이 이뤄지는 연구실을 돌아보며 "세계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상무부에서 내가 가진 사명"이라면서 "미국의 경쟁력을 높이는 건 바로 이런 건물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한층 심화한 반도체 패권 전쟁은 글로벌 기술 인력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CSA) 등을 바탕으로 미국에는 기업의 반도체 제조시설 투자 결정이 잇따르고 있지만 이를 가동할 엔지니어가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美 반도체 공장에 일할 사람이 없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의 반도체 인력 부족 문제를 다루는 기사에서 향후 5년간 5만명의 신입 반도체 엔지니어가 필요할 것이라는 업계의 추산을 전했다. 올해 들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 제조시설을 짓겠다고 발표하면서 인력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오하이오에 신공장을 짓고 있는 미국 인텔은 3000명을 고용할 예정이다. 미 마이크론도 이달 초 뉴욕 투자를 발표하면서 2024년 양산 돌입 시 3000명의 직원을 직접 고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TSMC도 애리조나에만 직원이 2000명을 넘길 것으로 보이고, 삼성전자는 테일러 공장에 1800명의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미국 내에는 반도체 엔지니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반도체 산업이 최근 수십년간 한국, 대만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미국 내에서 반도체 공학의 인기가 시들해졌고, 그 사이 빅테크 기업의 부상으로 인력이 소프트웨어 학과 등에 몰려 반도체 업계가 인력 양산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장 인텔과 TSMC가 동시에 공장을 두고 있는 애리조나의 경우 서로 부족한 인재를 먼저 데려가려고 애쓰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산토시 쿠리넥 로체스터공과대학(RIT) 교수는 지난 6월 미 IT전문지 프로토콜에 "TV나 디스플레이와 같은 물리적인 전자기기는 미국 밖에서 만들어진다는 인식이 있다"면서 RIT의 반도체 엔지니어링 관련 학부의 학생 수가 지난 30년간 크게 줄었다고 전했다. 1980년대부터 애리조나주립대(ASU)에서 전기공학을 가르쳐온 마이클 코지키 교수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첨단 반도체 관련 수업이 꽉 찼다면서 지난해에만 해도 6명에 불과했던 소규모 여름 학기 수업이 20명의 수강생을 모두 채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도체 기업-美대학 협약 잇따라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미국에서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은 대학 등과의 연계성을 높이고 있다. 미 정부는 반도체지원법 안에 근로자 교육을 위한 예산 2억달러를 별도로 편성해뒀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대학은 반도체 연구센터를 설립하거나 관련 강의를 확대하면서 엔지니어 인력 양성에 집중하고 있다. 이달 초 퍼듀대가 글로벌 반도체 업체 고위 임원들을 초청해 캠퍼스를 돌며 엔지니어 양산 과정을 소개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심지어 애리조나의 ASU는 TSMC를 고려해 대만의 국경일인 쌍십절(10월10일)을 앞둔 지난 8일 대만 커뮤니티를 환영하는 별도의 행사를 열고 관계를 다지기도 했다.

인텔과 미 국립과학재단(NSF)은 미국 내 반도체 제조인력 교육을 위해 지난달 1000만달러 규모의 파트너십을 맺었다. 미국 반도체 아카데미 이니셔티브(ASA)와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도 미국 내 200개 이상의 대학 및 커뮤니티칼리지(2년제)와 1500여개의 미국 내 반도체 업체가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로 했다.

뉴욕주립대 계열의 커뮤니티칼리지인 허드슨밸리CC(HVCC)는 지난 6월부터 미 글로벌파운드리와 꾸준히 접촉하고 있다고 프로토콜은 보도하기도 했다. 미 팹리스(반도체 설계)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자신의 모교인 오리건대에 대학 동문인 아내와 함께 5000만달러를 기부, 오리건대는 이를 포함해 2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및 기술 산업을 지원하는 연구·교육 센터를 만든다고 발표했다. 뉴욕 시라큐스대는 지난 27일 마이크론과 인턴십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인력 개발을 위한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韓日도 반도체 인력난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반도체 인력 양성에 공을 들이는 현상은 미국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유럽, 중국 등 반도체 패권을 위한 경쟁을 벌이는 국가에서는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이다. TSMC는 신공장을 짓고 있는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인력 확보를 위해 구마모토대와 손잡고 2024년까지 교내 반도체 학과를 신설하기로 했다. 학년당 60명 수준 학생들이 반도체 교육을 받으면 이 인력들을 TSMC가 고용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 반도체 업체 키옥시아도 이와테현 기타카미에 제2 생산공장을 짓고 내년에 신규 채용을 진행할 예정인데, 인재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인근 학교를 방문하고 회사 설명회를 적극적으로 여는 등 조치를 취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에서도 기업들이 대학과 손잡고 반도체 계약학과를 설립하는 등 인력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항공대 등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유력 반도체 업체들과 함께 졸업 후 곧바로 기업에 취직할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교육부와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 분야 전체 인력 수는 지난해 기준 17만6509명이다. 향후 10년간 반도체 산업 규모가 확대되면서 필요 인력은 약 30만4000명까지 늘어나게 된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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