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쟁력]"외노자들도 떠난다"…엔저에 골머리 앓는 日

이지은 2022. 10. 3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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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노동자 이탈 가속화
엔저에 호주로 발길 돌려
재계, 엔저로 수입 비용 부담
노동계 5% 임금 인상 요구 반기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일본 군마현 오타시의 시금치 농가에서 2년간 일해온 베트남 출신 외국인 근로자 산씨는 최근 들어 귀국을 고려하고 있다. 엔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베트남에 있는 딸과 노모에게 보낼 수 있는 돈의 액수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산씨가 시금치 농장에서 받는 월급은 15만엔으로 이 중 8만엔이 베트남으로 송금된다. 1년 전만 해도 8만엔을 환전할 시 1550만 베트남 동 송금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1311만 베트남 동으로 그 액수가 줄었다. 산씨는 결국 인스턴트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식비를 절약하기로 했다. 지난 25일 니혼TV가 엔화 약세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해외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전한 사례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일본 내에서 각종 사회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엔화 약세로 외국인 노동자가 이탈하고 가격이 급등한 해외 원자재를 수입하기 위한 기업의 비용 부담이 증가하면서 일본 경제 전반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율 상승에 외국인 노동자 이탈…호주로 발길 돌려

엔저 현상으로 가장 타격을 입은 곳은 일본의 농가다. 니혼TV는 환율 상승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해외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호주가 이들을 자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일본과 노동 인력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호주와 베트남은 지난 3월 호주농업 비자 프로그램과 관련해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베트남 근로자들이 호주의 축산과 임업, 농업 분야에서 근로할 수 있게 비자를 발급하는 것이다. 니혼TV는 "엔화 약세로 어려움을 겪게 된 노동자들에게는 일본보다 2배 이상의 임금을 받을 수 있는 호주가 매력적인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취업을 위해 실습 기관을 찾는 베트남인들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일본은 일정 수준의 기술을 연수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외국인 기능실습제도를 운영 중이다.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최근 베트남의 하노이와 호찌민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실습 기관들은 지원자를 모으지 못해 고전하고 있다.

마이니치 신문은 "일본의 가혹한 노동환경까지 현지에 알려지면서 베트남 청년층에게 일본의 이미지는 더욱 악화했다"고 전했다.

후생노동성의 통계에 따르면 일본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25.7%는 베트남인으로, 총 44만명에 달한다. 이들이 일본을 이탈할 경우 산업 현장에서의 노동력 부족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협력기구(JICA)는 일본 정부가 내세우는 경제 성장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2040년까지 현재보다 약 500만명의 노동인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외국인 노동자 구인·구직 단체인 어시스트 원 파트너스 협동조합의 토다 아키오 이사는 "엔화 약세가 지속될 경우 외국인 노동자가 일본을 빠져나가 국가 경제가 악화할 것"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농가들이 엔화 가치 하락에 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 고물가에 임금 인상 요구…재계, 비용 부담에 반기

일본 재계 역시 엔저 현상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직격타를 맞으면서 노동계의 임금 인상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본의 최대 노조 단체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는 내년 봄 임금 인상 투쟁을 앞두고 연 5%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기로 했다. 이들이 5~6%대의 임금 인상을 내건 것은 1995년 이후 28년 만이다.

렌고는 지난 20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호봉 2%를 전제로 기본급 3% 등 총 5% 정도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요시노 도모코 회장은 이날 "물가 급등이 우리 생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며 "이에 대처하고자 물가상승분의 임금을 인상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재계 측은 물가 상승을 고려해 임금 인상을 논의하는 것은 동의한다면서도 다만 5%의 인상은 지나치다며 반기를 들고 나섰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및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기업이 겪는 가격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일본 상공회의소의 미무라 아키오 회장은 이날 정례 브리핑을 통해 "엔화 약세로 호조인 기업도 있어 임금 인상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다만 어려운 경영상태에 처한 중소기업도 많은 데다가 임금을 인상하지 못하는 기업은 인재 확보에서 불리함을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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