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쟁력] "한국, 日 잃어버린 30년 밟을 위험…신수출 전략 세워야"

문제원 2022. 10. 3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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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극심한 엔저, 일본 경제에 부정적
아베노믹스 실패는 성장전략 미진한 탓
한국도 저출산·고령화로 생산성 저하 우려
수출전략 세우고 내수확장, 기술혁신 필요
한일 협력하면 첨단산업에서 시너지 기능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가 지난 26일 서울 동작구 카페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아베노믹스가 실패한 이유는 근본적인 성장전략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을 밟을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위험은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선 신(新)수출 전략을 세우고 기업의 국내 투자를 늘려 생산성을 높이는 한편, 기술혁신도 이뤄내야 합니다."

국내 대표적인 일본 전문가로 꼽히는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는 지난 26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신음하는 한국 경제에 대해 이같이 조언했다. 그는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한국의 자산시장이 침체하고 있지만 1990년대 일본의 버블붕괴를 옆에서 지켜본 만큼 금융시스템 위기로까지 치닫게 방치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대응책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일본은 좀비기업을 살리기 위해 괜찮은 기업에서 돈을 뺐는데, 새로운 산업이나 스타트업을 부흥시키려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을 적절하게 정리할 필요도 있다"며 "한국은 일본의 버블붕괴를 경험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일본에 비해 수출의존도가 높은데 이는 강점이자 약점"이라며 앞으로 서비스·소프트웨어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인프라 패키지 수출을 모색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래는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

-엔화가치가 3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극심한 엔저가 일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엔저가 일본 기업의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은 전반적으로 부정적이다. 수출 대기업에는 일부 긍정적일 수 있지만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을 늘리기 힘드니 효과가 한정적이다. 반면 일본 기업의 90% 이상인 중소기업은 수입 조달비용이 높아져 부담이 커진다. 엔화가 10% 떨어지면 9000억엔 정도의 국내총생산(GDP) 마이너스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행(BOJ)은 여전히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 중인데.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고집이다. 기조적으로 디플레이션은 맞지만 물가가 오르고 경기도 회복기이기 때문에 마이너스 금리나 제로금리는 부작용이 크다. 일본은행 OB(전직 임직원) 사이에서도 미세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구로다 총재가 퇴임하는 내년 4월 이후에는 인상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IMF 발표에 따르면 올해 한국과 일본의 1인당 GDP 격차가 770달러 차이로 좁혀질 것으로 예상됐다. 추후 역전 가능성은.

▲1인당 GDP는 몇년 내에 우리가 더 높아질 수 있다. 다만 전체 GDP는 2050년에도 일본의 66% 정도에 불과하다. 인구가 일본의 3분의 1에 불과하니까 일본을 넘어서려면 생산성이 2~3배는 높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한국도 저출산, 고령화가 심해지고 있으니 성장 활력을 유지하지 못하면 일본과의 격차를 축소하기 어렵다.

-일본 기업의 생산성 저하와 낮은 임금상승률의 원인은 무엇인가.

▲버블붕괴 당시 구조조정을 심하게 하다보니까 근로자의 사기와 창의성을 떨어뜨리고 새로운 사업에 대한 투자가 줄었다. 또 부실기업이 망하면 은행이 힘들어지니 괜찮은 중소기업에서 돈을 빼서 지원하는 행동을 했다. 이게 좀비기업이 늘렸고 장기불황으로 이어졌다. 장기간 디플레이션으로 공급과잉이 오래 지속됐으며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디플레 마인드'가 생겼다.

-아베노믹스가 실패한 이유는.

▲초기 1~2년 정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베노믹스 3가지 화살 중 마지막 화살인 성장 전략이 미진했다. 저금리 덕분에 이미 망해야 하는 기업이 계속 살아남아 생산성이 떨어졌다. 저출산·고령화로 일본 기업은 국내투자 대신 해외투자에 나섰고, 기업 유보금이 경제성장으로 연결되지 않아 생산성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가 지난 26일 서울 동작구 카페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한국도 최근 수출 등 경제상황이 좋지 않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 구조 차이점과 향후 전망은.

▲일본 경상수지는 아직 흑자인데 올해 적자가 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일본은 해외자산이 세계 최대 규모로, 해외에서 버는 소득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 물론 경상수지가 적자가 되면 해외자산이 감소하는데, 올해 경상수지 적자가 나더라도 이를 구조적이라고 하긴 힘들다.

반면 한국은 해외자산을 축적하고 있는 미성숙 채권국이다. 경상수지 흑자, 본원소득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자산을 확대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대비하면서 성장세를 유지해야 하는데, 미·중 마찰과 원자잿값 상승 등으로 불확실성이 있다.

-일본에 비해 한국 경제가 가지는 강점은 무엇인가.

▲일본은 소재나 부품에 강하지만 우리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해서 글로벌화하는데 장점이 있다. 새로운 산업을 개발하려면 부품이나 기술이 많아야 하는데 우린 그런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일본은 모든 분야에서 리소스가 있고 연구개발도 많이 하기 때문에 일본의 소부장 기업과 협력하면 로봇, 자율주행 등 첨단산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한국도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에 빠질 수 있을까.

▲과거 일본의 부동산 버블은 전국적으로 규모가 컸고 정부가 의도적으로 방치했다. 한국도 서울 등 아파트에 거품이 있고 금리인상을 계기로 10~20% 가격이 빠질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일본의 경험도 있고, 버블 붕괴가 금융시장 위기로까지 이어지진 않을 거다. 다만 위험은 있다. 가장 우려되는건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저하다.

-한국 경제가 장기침체를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수출경쟁력 유지가 중요하다. 우리가 약한 서비스·소프트웨어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전력공사나 수자원공사 등 인프라, 패키지 수출을 확대하는 신수출 전략이 필요하다. 보호주의 확대에 대응해 내수도 확장해야 하는데 일본처럼 지방경제를 살리면서 국내 여행수요를 늘리고 지방 대기업을 육성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디지털·그린혁명을 축으로 한 제조업 혁신도 중요하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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