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준 MBC EP “한드 장르의 쏠림 아닌 전략적 선택” [일문일답]
드라마의 ‘EP’를 주목하라! 세계 문화계를 이끄는 K드라마에서 EP(Executive Producer)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다.
드라마 전문가로 꼽는 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산업팀의 김일중 부장은 EP를 향해 EP가 한국 드라마 산업계 판을 바꾼 ‘막후의 주인공’으로 칭했다. 21세기 한국 드라마 산업을 이끌고, 새로운 판을 짜고, 미래를 기획하는 ‘게임 체인저’라는 것.
이처럼 드라마에서 EP의 역할이 중요시되면서 방송사들도 책임프로듀서(CP)에서 EP로 역할을 변경해 새로운 한드의 판을 짜고 있다. MBC는 지난해부터 드라마 스튜디오에 EP제를 도입해 콘텐츠를 맡기고 있다. 얼마 전 작품성과 화제성 두 토끼를 잡은 ‘빅마우스’와 방송 중인 수목드라마 ‘일당백집사’를 총괄하는 김호준 MBC 3EP에게 역할의 중요성과 OTT와의 경쟁, 한드의 흐름, 내년 드라마 시장의 변화 등을 들어봤다.
-다소 생소한 EP는 어떤 업무를 보고 역할을 하는가. “사전적으로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라고 하는데 드라마 제작의 기획부터 모든 것을 총괄한다. EP제를 도입하기 전 MBC는 CP, 책임 프로듀서로 운영됐는데 집단적 의사결정에 따라 작품을 배정받아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시스템이었다. 시쳇말로 책임경영이 쉽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다. 반면 EP 제도는 2가지가 차별화되는데 기획 선택권, 스태프 선임권이 있다. 현장 총괄은 연출의 의견에 따르지만 프로젝트에서 벌어지는 업무는 EP가 책임진다. EP는 어떤 문제에 있어 의사 결정권자인 대표와 곧바로 정리한다. 신속하게 간결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장점이다.”
-그동안 참여작과 현재 참여작은 무엇이 있고 방송까지 이어진 작품은 무엇인가. “그동안 해 온 작품은 24~25개 정도 된다. 2011년 김진민 감독의 ‘무신’ 프로듀서 입봉 후 ‘구가의 서’, ‘오로라공주’, ‘여왕의 교실’, ‘쇼핑왕 루이’, ‘미치겠다 너땜에’ 등의 작품을 진행했다. EP가 되고 나서는 현재 수목드라마 ‘일당백집사’를 비롯해 ‘빅마우스’, ‘트레이서’, ‘미치지 않고서야’, ‘러브신넘버#’ 등을 세팅했다. ‘금수저’의 후속작 ‘금혼령’, ‘꼭두의 계절’, ‘조선변호사’도 기획하고 있다.”
-드라마가 방송되기까지 어떤 기획을 하는지. “출발은 대본이다. 1~4부의 대본을 가지고 연출과 캐스팅, 편성 타진을 동시다발로 진행한다. EP로서 두 가지 질문을 자문한다. (이 드라마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야기인가’와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하는가’. 해야겠다는 판단이 서면 이해 당사자에게 확신을 심어주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판돌이, 판을 짜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드라마는 초반 세팅이 무척 중요한데 레일만 잘 깔면 기차가 탈선하지 않듯 프로듀서는 그 레일을 까는 사람으로 비유할 수 있다.”
-최근작 ‘빅마우스’는 어땠나. “당초 지상파 방송만을 염두에 둔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관여하기 쉽지 않아 전략적으로 베팅한 프로젝트였다. 가장 중요시했던 부분은 심의였다. 지상파는 케이블, OTT와 심의의 수준이 다르다. 작품의 결을 살리려면 연출이나 작가의 의도대로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빅마우스’는) OTT 계약이 끝난 상태에서 대본을 보는데 심의가 걸릴만한 장면이 꽤 있었다. 이게 관건이 되겠구나 싶었다. 심의를 고려하자니 작품의 결이 살지 않았다. 어지간하면 연출자, 작가의 의도대로 표현해주는 게 중요했고, 지상파 채널도 표현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표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리스크를 줄이고 작품의 취지를 살려 보여주려 했다.”
-OTT 등 다른 플랫폼들과 차별화는 어떻게 했나. “표현의 수위 등 한계를 가져가지 않으려 반드시 10시 이후 방송을 주장했다. 앞서 ‘검은 태양’이 19세 등급으로 이 시간대에 방송했다. 만드는 입장에서, 시청자의 입장에서 ‘MBC도 OTT와 다르지 않네’, ‘이런 걸 하네’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논란이 되는 장면의 시청자 의견, 여론을 관리에 많은 신경을 썼다.”
-화제성이 높았던 ‘빅마우스’는 어떤 점을 주목했나. “반대로 묻고 싶다. 스타 감독, 대본, 배우까지 어느 회사가 (제작을) 하기 싫었을까. ‘빅마우스’ 제목부터 흥미를 가졌다. 영문 타이틀은 떠벌이라는 의미인데 마우스 발음이 쥐로도 들리지 않나. 큰 쥐, 범죄자라는 중의적 표현에 주제의식이 들어있었다. 대본 단계에서 진짜 빅마우스가 누굴까 궁금함이 커졌다. 대본을 읽다 보니 10회를 한 번에 읽었다. 다크 히어로 서사의 기본적 재미를 끌고 가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빅마우스’의 엔딩에 의견이 분분했는데. “허무했다, 고구마로 끝났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엔딩은 작가와 연출자가 처음부터 정하고 진행했다. 3막 구성의 ‘빅마우스’는 변호사인 소시민 박창호(이종석 분)가 살기 위해 빅마우스가 되고 악을 처단하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악을 처단하는 이야기가 카타르시스였으면 좋았는데 현실에 발을 디딘 개연성 있는 이야기로 절제된 상태로 나왔다. 창호가 죽은 아내 고미호의 묘를 찾아 터널을 지나는 장면은 다크 히어로의 서사에서 각성하는 장면 같은 것이다.”
-그럼 시즌2에 대해 희망을 가져도 되나. “시즌2가 어려운 이유는 시즌1만한 작품이 없어서다. 시즌2로 다른 이야기를 가려가는 것이 쉽지 않다. 시청자들의 니즈가 있다만 다시 추진할 수도 있겠다. MBC나 제작사 에이스토리는 시즌2에 대해 관심은 있다. 하지만 당장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OTT 덕에 K드라마가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는데. “이제 드라마를 문화가 아닌 산업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시기다. OTT는 K드라마를 알리는 중요한 플랫폼이자 중요한 제작자원을 조달하는 주요 원천이다. OTT는 매력적인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OTT 덕에 K드라마 등 한류가 최근에 더욱 떴으나 더 나아가지는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근래 드라마 트렌드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기존 장르는 퇴조하고 소재의 제약이 없고, 밝고 단순한 스토리를 많이 선호한다. 기획 측면에서는 드라마에서 못 하는 게 없을 정도로 소재의 제약이 사라졌다. 또 기본적, 전통적인 장르극의 느낌도 약해졌고 가을에 멜로나 여름 공포물과 같은 시즌도 없다. ‘닥터 로이어’의 법정 메디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같은 휴먼과 법정의 복합장르가 많이 제작된다. 요즘 시청자들의 니즈가 밝고 가벼운 이야기를 원한다.”
-최근에 장르의 쏠림이나 엇비슷한 드라마들이 보이는 현상인데.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의 기획은 이미 2~3년 전에 나온 것이다. 드라마 제작자들이 미래를 예상했을까. 아니다. 글로벌 OTT가 진출하면서 로맨스, 가족극, 유교 문화권의 로컬 정서에만 기댈 수 없기에 각 장르의 드라마들이 만들어졌다. 쏠림이 아니라 트렌드를 따라 움직이는 플레이어들의 전략적 선택인 것이다.”
-콘텐츠가 많다 보니 최근 요약본, 배속시청 등의 시청 경향도 생겼는데. “유튜브 요약본은 홍보 차원에서 필요한 점도 있지만 크게 소구되면 독이 될 수 있다. 많은 작품 중에 왜 이걸 봐야 하는지 가이드를 준다. 그러나 기획자의 입장에서 의도를 벗어나는 경우도 있어 고민도 있다. 배속 시청은 문화충격을 받았다. 배속 시청은 차곡차곡 쌓는 서사의 맛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문전성시를 이룬 패스트푸드점 맞은편의 한정식집 사장 심정이다.”
-새해 K드라마의 방향은 어떻게 흐를까. “트렌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나 요소 비용이 화두가 될 것이다. 자칫 제작의 빙하기도 찾아올 것 같은 우려도 있다.”
이현아 기자 lalalas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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