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잘린 선반공 출신…12년 만에 돌아온 ‘빈자의 대통령’[후후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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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의 대부’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시우바(77) 브라질 전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치러진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초접전 끝에 당선을 확정지었다.
브라질 최고선거법원은 이날 오후 7시 59분 “룰라 후보가 당선인으로 확정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룰라 대통령 당선인은 50.83%의 득표율(개표율 98.91% 기준)로, 49.17%를 득표한 자이르 보우소나루(67) 대통령을 따돌리며 신승을 거뒀다.
2003∼2010년 연임하며 인구 2억1000만 명의 남미 대국을 이끌었던 룰라 당선인은 이날 승리로 브라질 역사상 첫 3선 대통령이 됐다.
“그는 우리가 악몽에서 벗어날 길”
룰라를 가장 기다린 건 브라질의 빈곤층이다. 브라질 민간 연구 기관 FGV에 따르면 지난해 브라질 인구의 29.6%에 해당하는 6290만 명이 월 소득 487헤알(약 13만1200원) 이하로 살았다. 2019~2021년 960만 명이 새로 추가된 수치다. 이들의 기억에는 “왜 부자에게 돈을 쓰면 투자라고 하면서 빈자에게 쓰는 건 비용이냐”며 일갈하던 룰라가 남아있다.
그의 집권(2003~2010년) 당시 빈곤층 생계비 지원 프로그램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등으로 2900만 명 이상이 중산층에 새로 입성했고, 원자재 가격 급등 등 행운도 따르며 2002년 세계 13위로 하락세였던 브라질의 경제는 2010년 7위까지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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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장 받아본 적 없는 대통령…프레스에 손가락 잃어
이들에게 룰라는 자신들의 가난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드는 지도자다.
지난 1945년 전기와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7번째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글을 모르는 농부의 자식이었고, 가난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며 살았다. 초등학교 5학년 중퇴가 그가 가진 학력의 전부다. 땅콩 장수와 구두닦이 등을 전전하던 그는 14살에 선반공이 됐지만, 3년 뒤 공장에서 밤샘 작업 도중 동료의 실수로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앞서 룰라는 한 인터뷰에서 “지금이었다면 달랐겠지만, 의사는 손가락 전부를 잘라냈다. 나는 손가락이 없는 것이 부끄러웠고, 자주 주먹을 쥐고 걸었다. 그 당시엔 그런 사람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것도 가난 때문이다. 그는 1969년 가장 친한 친구의 여동생과 결혼했지만, 임신 중 간염에 걸린 아내는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후 금속노조 활동을 시작으로 정치 활동에 본격 참여하기 시작한 그는 1975년 10만 명을 이끄는 브라질 철강노조 위원장이 됐다. 5년 뒤 브라질노동자당(PT)을 결성한 그는 브라질 군정의 종식과 함께 1986년 큰 인기를 끌며 하원의원이 됐다. 룰라와 PT당이 걸은 행보는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진보정당 운동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혔다.
그는 이후 1989년과 1994년, 1998년 대선에 3차례나 도전하지만, 연거푸 2위에 머무른다. 강성 투쟁가로 보였던 그가 지금의 배 불룩 나온 옆집 아저씨의 친근한 모습을 갖춘 것도 이때부터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는 이후 연설에서 자신이 변했다고 외쳤고, 이는 사실이었다. 분노하고 단정하지 못한 노동자티를 벗은 그는 사회를 보는 자신의 견해도 누그러뜨렸다”고 했다.
룰라는 2002년 대선에서 국민 61.3%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됐다. 유명 투자자 조지 소로스 등은 “(급진좌파인) 룰라가 대통령이 되면 브라질은 국가 부도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그는 지난 실패를 통해 ‘영원한 야당’이 아닌 ‘대통령 룰라’의 길을 택했다. 국제 금융계에 널리 알려진 야당 의원 헨리크 메이렐레스를 중앙은행장에 앉히는 등 통합 행보를 통해 ‘좌파 독재’로 치달은 다른 남미 국가들의 전철을 밟지 않았다.
룰라는 이번 선거에서 이전 집권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려 노력했다. 군인 출신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기독교 가치 수호와 아마존 개발을 외치는 사이 그는 간결한 공약을 내세웠다. 룰라는 지난 7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문맹인 어머니에게 배운 것은 내가 버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쓸 수는 없다는 사실”이라면서도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지는 것을 막으면 경제는 성장한다”고 말했다. 무리한 재정지출 없이 빈곤을 퇴치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달라진 국민 시선, 부패 의혹 탈피해야
2018년 대선에 출마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대법원에서 형이 취소됐지만, 사유는 무죄가 아닌 재판 절차상 문제였다. 룰라는 그간 자신을 향한 여러 논란에 “좌파를 범죄자로 몰고 가는 부패 정권의 공격”이라고 반박했지만, 그의 집권 2기 당시에도 측근과 PT당의 각종 비리가 문제가 됐다는 점에서 국민의 의심은 여전하다.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에 실패하며 악재가 이어지는 경제에도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룰라가 과거 실용주의자였고 지금도 그렇다고 말하지만, 모두가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가 공공지출의 효율화 등은 별로 언급하지 않으며 사업가들은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룰라의 승리로 사상 최초로 중남미 주요 6개국(브라질·멕시코·아르헨티나·콜롬비아·칠레·페루)에 모두 좌파 정권이 들어서는 제2 ‘핑크 타이드(PINK TIDE)’가 완성됐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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