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화장품이요?" BTS·블랙핑크…K팝으로 무장한 아모레의 도전
중국 시장 의존, 리스크 크고 전망 밝지 않아
뉴뷰티 선언한 서경배 회장 "비즈니스를 재정의, 재조정" 일환
모델부터 타깃, 방향까지 싹 바꾸기 시작
아모레퍼시픽이 BTS와 블랙핑크를 전진 배치하고 글로벌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과거 아모레퍼시픽(이하 아모레)이 보여줬던 다소 보수적이고, 고유의 색깔을 유지하려던 모습에서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북미 지역에서 가장 힙한 K팝 스타를 얼굴로 내세우고, 현지 기반 브랜드와 유통 채널 공략에 나서면서 달라진 아모레의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평가다.
BTS·블랙핑크 손잡은 아모레
아모레는 지난주 대표 K팝 그룹 BTS와 협업해 만든 '방탄소년단 아모레퍼시픽 립 슬리핑 마스크, 립앤팝 에디션(립앤팝 에디션)'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라네즈가 내세우는 글로벌 베스트셀러인 '립 슬리핑 마스크'는 자는 동안 입술 각질을 관리하고 보습 성분을 채워 온종일 매끈하고 탱탱한 입술로 가꿔주는 제품으로, 이번 협업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누가 봐도 BTS와 협업한 티가 난다. 한정판으로 선보이는 이번 제품은 BTS의 대표 히트곡인 '버터' '퍼미션 투 댄스' 다이너마이트' 뮤직 테마를 담았다. 뮤직 테마에 맞게 턴테이블 디자인을 활용했고, BTS 앨범 아트웍을 활용해 소장 가치를 높였다는 설명이다. 유통가에서 BTS는 협업하기 까다로운 파트너로 꼽힌다. 품질은 물론 콘셉트, 문구 하나까지 섬세하게 확인하기 때문이다. 아모레는 BTS만의 독보적인 스타일과 대표곡의 분위기를 립앤팝 에디션에 갈아 넣었다는 후문이다. 성과가 있다. 아모레 관계자는 "이번 협업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무엇보다 글로벌 고객 반응이 좋은 편이고,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고객층을 유입한 계기도 됐다. 아모레 공식 몰에서는 립앤팝 에디션을 구매한 고객들이 남긴 후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필요했던 제품인데 BTS콜라보로 예쁘게 나와 샀어요. 아미로서 볼 때마다 행복해요" "딸 사줬는데 정말 좋아한다" "BTS 팬이어서 샀는데 써보니 인생템이다. 제품이 너무 좋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아모레가 BTS와 협업하면서 노렸던 Z세대는 물론 글로벌의 새로운 소비자층까지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모레는 지난해 BTS와 한 차례 협업을 진행한 바 있고, 미국에서 열린 BTS 콘서트도 스폰서로 참여했다"며 "글로벌, 특히 북미에서 BTS의 힘을 느끼고 컬래버레이션도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BTS만이 아니다. 아모레는 글로벌 정상급 K팝 스타와 가장 많은 협업을 하는 뷰티 대기업으로 꼽힌다. 아모레는 지난 9월 글로벌 톱 수준의 걸그룹인 블랙핑크의 로제에게 아모레 럭셔리 브랜드인 '설화수'의 얼굴을 맡겼다. 설화수는 20년간 무모델 원칙을 고수하다가 2017년에서야 비로소 배우 송혜교를 첫 뮤즈로 받았다. 또 다른 브랜드인 '헤라'의 모델이 블랙핑크의 제니인 상황 속에서 아모레가 같은 그룹의 멤버인 로제를 설화수의 모델로 발탁하면서 깊은 고민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목표는 북미와 Z세대
뷰티 업계는 이런 변화를 '뉴뷰티'를 선언한 아모레발 개혁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지난 9월 온라인 창립기념식에서 전통적 뷰티의 영역을 넘어선 뉴뷰티를 거듭 강조하며 "비즈니스를 재정의하고 재조정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아모레는 한국을 대표하는 뷰티 대들보라는 헤리티지(유산)가 있는 뷰티 기업이다. 수십 년 세월을 화장품에 집중하면서 K뷰티를 세계에 알렸다. 아모레의 설화수는 그 정점에 있는 브랜드다.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가장 비싼 국산 화장품의 대명사였고, '윤조에센스' '윤조크림' 등 숱한 히트작이 있다. 그러나 주요 소비자층이 40~70대에 포진해 있고, 10~30대 초반 소비자층 유입은 더디다는 문제가 있었다.
업계는 아모레가 BTS와 블랙핑크 등 북미 일대 및 글로벌에서 영향력이 큰 K팝 스타 기용을 통해 타깃 연령대를 낮추는 동시에 북미를 필두에 둔 해외 시장 공략에 힘을 싣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만큼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
3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아모레의 3분기 매출액은 1조318억원, 영업이익은 39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2.3%, 56.4%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아모레만의 일은 아니다. 경쟁사인 LG생활건강(LG생건)은 3분기 영업이익 전년 동기 대비 45% 급감하면서 주가까지 급락했다. 특히 LG생건의 대표 럭셔리 브랜드 '후'의 올해 3분기 매출은 41% 급감하면서 영업이익이 70% 가까이 줄어 충격을 안겼다.
중국에 방점을 찍은 사업 구조 때문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중국인들의 소비가 위축되면서 화장품 주요 판매 채널인 면세점 매출이 줄었다. 내수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상황 속에서 아모레와 LG생건이 또 다른 도전을 맞았다"고 진단했다. 변수가 많은 중국 시장을 탈피하고, 새 시장을 개척해야만 지속 가능한 성장과 동시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북미의 젊은 소비자는 이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이다.
아모레는 모델과 함께 북미 유통 채널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미국 클린뷰티 브랜드 '타타하퍼'를 1681억원에 인수하면서, 입지 넓히기에 나섰다. 타타하퍼는 유전자 조작 원료(GMO), 첨가제, 인공 색소 및 향료, 합성 화학물질 등이 포함되지 않은 자연 유래 성분만을 사용하는 브랜드다. 북미 시장에서 800개 이상의 오프라인 매장에 입점해 있다. 아모레 측은 타타하퍼가 가진 판매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판매 품목을 늘려나갈 것으로 예상한다. 북미 일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입점도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온라인 쇼핑 행사 '아마존 프라임 데이'에 참가해 역대 최대 성과를 거뒀다. 특히 라네즈는 아마존 뷰티&퍼스널 케어 부문 전체 1위(판매 수량 기준) 브랜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서 회장이 그룹 계열사 에뛰드·이니스프리·아모스프로페셔널 사내이사직을 내려놓고 그룹 경영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며 "뉴뷰티 기조를 이어가고, 그룹 차원의 글로벌 사업에 집중하려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지영 기자 seoj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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