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부하가 소곤" 환청뒤 숨진 장교…보훈 소송 대법서 반전

오효정 2022. 10. 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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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뉴스1

부하 병사를 사고로 잃은 여파로 환청 등 후유증을 호소하다 숨진 군인은 보훈 보상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군인의 유족이 경기북부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해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지난 1999년 육군 소위로 임관한 A씨는 2001년 부하 병사가 숨지는 일을 겪었다. 같은 부대 소속의 병장이 쇠기둥 절단 작업을 하던 중 사고로 숨진 것이다. 당시 A씨는 상급자로서 부하를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충격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로부터 약 9년이 지난 2010년, A씨는 환청과 환영 등 증상으로 편집성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A씨는 “2001년부터 죽은 병사가 옆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2005년부터는 말소리가 들렸으며, 2009년부터는 매일 소리가 들려 대화를 했다” 증상을 설명했다고 한다. 약물치료로 증세가 잠시 호전됐지만, A씨는 2014년과 2015년에 다시 증상을 호소했고 공무상 병으로 인정돼 전역했다. A씨는 몇 년 뒤 숨졌다.

A씨의 유족은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가 “A씨는 국가유공자법상 공상군경이나 보훈보상자법상 재해보상 군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A씨 유족은 이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보훈처 측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1심 재판부는 “A씨의 병이 군복무로 인해 발병했거나, 자연적 경과 이상으로 악화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2001년 사고 이후 증상이 시작된 것은 맞지만, 진료를 받은 시기는 2010년인 점을 고려하면 과거 사고만이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A씨 측은 주말과 야간 등 과도한 초과 근무가 있었다는 점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객관적으로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의 업무량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지난 4월 2심 재판부 역시 유족의 항소를 기각하며 A씨가 꾸준히 약을 먹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증상이 일시적으로 호전되면 임의로 약물 복용을 중단하고 증상이 악화하면 다시 약물을 복용하는 것을 반복함으로써 증상이 악화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조현병을 진단받은 2010년까지 A씨는 매년 공무 관련 공적을 인정받아 표창장을 받았다”며 “만약 2000년부터 환청이 시작됐다면 표창장 수여 경력은 설명되지 않는다”라고도 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A씨의 병은 부하 병사의 사망사고에 대한 죄책감 등을 비롯한 직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질환적 소인이 악화해 발병했거나, 자연 경과 이상으로 악화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또 진료 과정에서 A씨가 상급자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나 근무지 변경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등 주로 군 복무와 관련된 직무상 스트레스를 이야기한 점도 주목했다. 부하 병사가 숨지는 사고를 겪은 뒤에도 A씨에게 업무상 부담과 긴장이 계속돼 더는 감내하기 어려운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위로 임관하기 전까지 정신질환 증세가 없었고, 가족력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A씨가 2010년까지 표창을 받은 것, 사망사고와 조현병 진단 사이 상당히 시간이 지난 것 등의 이유만으로는 직무와 발병을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또 “A씨가 약물치료를 임의로 중단해 증상이 악화했다고 볼 여지가 있지만, 이는 발병 이후 사정이라 증상 악화에 전적으로 기여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라고도 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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