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근목 깎아 제사 지낸다…유치원생도 견학, 갯마을 400년 사연

백종현 2022. 10. 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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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해신당공원. 신남항 뒤편 언덕에 남근을 활용한 갖가지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원덕읍 신남마을(갈남2리)에서 400년간 내려오는 전통이 어린 장소다. 백종현 기자

오늘 31일 자정. 음력으로는 10월 8일이 시작하는 시각, 강원도 삼척 원덕읍 갈남2리 신남마을에서는 기묘한 제례가 거행된다. 마을 주민이 부정 탈까 조심하며 손수 깎은 남근목을 정성껏 차린 음식과 함께 올리는 해신제(海神祭)다. 한복 곱게 차려입은 젊은 여성의 영정 앞에 남성 성기 모형을 봉헌하는 의식이 망측하고, 시대착오적으로도 보인다. 하나 이 의례는 마을에서 4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이다. 여기엔 꽤 오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연간 20만명 찾는 남근조각공원


거대한 남근 조형물과 연못, 꽃밭으로 꾸며진 돌계단. 삼척 해신당공원에서 가장 많은 기념사진이 찍히는 장소다. 백종현 기자
삼척 신남항 인근의 해안 언덕에는 흥미로운 관광지가 하나 있다. 3m 크기의 대형 남근목을 비롯해 기상천외한 모양의 남근 조각상 수백 점을 거느린 해신당공원이다. 어촌민속전시관도 갖추고 있지만, 사실 남근 조각공원으로 더 유명한 장소다. 삼척레일바이크, 환선굴과 함께 삼척에서 가장 많은 유료 방문객이 다녀갈 정도다. 연간 약 20만 명이 몰리는데, 코로나 여파가 여전한 올해도 10월 현재 8만7000여 명이 다녀갔다.

성(性)을 테마로 꾸민 이색 박물관이나 19금 관광지로 오해받기도 하나, 삼척에서는 우리네 민속신앙을 굳건히 지키는 성스러운 장소로 통한다. 삼척시 관광과 관계자는 “엄연히 미성년자도 관람할 수 있는 대중 문화시설”이라고 말한다(입장료 어른 3000원, 어린이 1500원). 해신당공원에서 만난 김해기(57) 문화관광해설사도 “민망하다며 발길을 돌리는 관광객보다 남근 조각과 기념사진 찍으며 즐거워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면서 “유치원이나 중고등학교에서 단체 견학도 종종 온다”고 귀띔했다. 남근 조형물과 연못, 꽃밭이 조화를 이룬 공원 중앙의 돌계단이 줄지어 사진을 찍고 가는 명당이다.

삼척 해신당공원에서 가면 갖가지 모양의 남근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남근 모양의 십이지상도 있고, 남근 조형물을 단 벤치도 있다. 백종현 기자

해신제가 벌어지는 당집(해신당)은 해신당공원의 절벽 끄트머리에 틀어 앉아 있다. 신남마을은 동해안에서 유일하게 남근 숭배 민속이 전래하고 있는 어촌이다. 2018년 평창올림픽 때 해신당공원을 찾은 한 해외 매체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가진 한국에 다산을 기원하는 공원이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지만, 출산율과 해신당공원은 관계가 없다.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은 이렇다. 옛날 옛적 신남마을에 결혼을 약속한 처녀(애랑)와 총각(덕배)이 살았더랬다. 한데 어느 날 애랑이 파도에 휩쓸려 죽자, 바다에서 더 이상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이후 마을 사람들이 처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남근목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고, 다시 고기가 잡히기 시작했다.

삼척 해신당공원 끄트머리 절벽에 자리한 해신당. 평소에는 관람객도 자유로이 구경할 수 있다. 백종현 기자

해신제 전통은 대략 400년의 세월을 헤아린단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갯마을 사람들에겐 바다와 물고기의 사정만큼 중요한 일도 없었을 테다.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의미로 매년 해신제를 지내는 이유다.

신남마을 앞바다에 홀로 박힌 바위 이름이 ‘애바위’인데, 이곳이 전설 속 애랑이 처녀가 빠져 죽었다는 장소란다. 신남마을 김동혁(67) 이장은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대대로 전설이 내려온다”면서 “그 시절엔 고기가 안 잡히면 어부들이 애바위를 내다보며 바다를 향해 오줌 누곤 했다”고 회상했다.


남근목 올리는 날


지난해 11월 6일 삼척 해신당공원에서 치른 해신제 모습. 젊은 여성 영정 왼쪽으로 남근목이 줄줄이 매달려 있다. 삼척 해신제는 400년 넘게 내려오는 신남마을의 전통 의식이다. 사진 김동혁 이장
해신제는 한 해 두 번, 정월 대보름과 음력 10월 첫 ‘오일(午日)’에 올린다. 오일이 제삿날이 된 건 십이지 중에서 말(午)의 남근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올해는 11월 1일(음력 10월 8일, 戊午)이 바로 그 오일이다.

제례는 아무나 올리지 않는다. 평소 해신당은 누구에게나 열린 장소지만, 제삿날에는 선택받은 당주와 제관만 드나들 수 있다. 당주 역시 아무나 할 수 없다. 학식이 높은 마을 어르신(현재는 김우홍(83) 어르신이 담당하고 있다)이 길일(吉日)을 택할 때 쓰는 책력(冊曆)을 펴놓고, 생기복덕(生氣福德, 생기일과 복덕일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따져 부정한 기운이 없는 자를 당주로 정한다. 삼재가 끼거나 이혼한 사람 등은 당주를 맡을 수 없다.

당주가 되면 해신제를 앞두고 남근목을 만든다. 향나무를 낫으로 깎는 100% 수작업이다. 사진 김동혁 이장

본래 해신제는 당주 하나에 제관 5명을 두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요즘은 그마저도 쉽지 않아 서너 명이 당주와 제관을 겸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삼척시로부터 연간 500만원가량을 지원받아 제례를 치르고 있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주민도 줄고 있어 사정이 여의치가 않았다. 현재 신남마을 주민 수는 160명을 헤아린다. 올해는 세 명이 당주(남자 2, 여자 1)로 정해졌다.

당주는 제삿날에 앞서 2~3일간 술도 삼가고, 다른 제사도 올리지 않고, 상갓집도 가지 않는다. 부정이 타는 것이 막기 위해서다. 그렇게 몸을 단정히 한 뒤 여자 당주는 제사에 올릴 음식을 마련하고, 남자 당주는 제물로 바칠 남근목을 만든다. 남근목은 향나무를 낫으로 일일이 깎아서 만드는데, 대략 길이는 20㎝에 지름이 5㎝에 이른다.

지난해 해신제의 모습. 당주가 한지를 태우며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고 있다. 사진 김동혁 이장

오늘 밤 해신제는 어떻게 진행될까. 당주는 자정이 오기 전 모든 채비를 해 해신당으로 향한다. 우선 잡귀가 얼씬 못하도록 해신당과 신목인 향나무 주변에 금줄을 두른다. 제사상에는 열기‧문어‧명태 따위의 해물과 고기, 건어물, 과일 따위를 올린다. 남근목은 다섯 개 준비하는데, 처녀 영정 옆에 줄줄이 매단다. 그다음 향을 피우고, 잔을 채우고, 한지를 태우며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한다. “모두 만수무강하게 많이 도와주시고, 배가 풍파를 피해 고기 많이 잡도록 해주십시오.”

해신제를 지내고 난 뒤 날이 밝으면 마을회관에서는 조촐한 행사가 열린다. 지난 2년간은 코로나 여파로 음복(飮福)을 하지 못했지만, 올해는 마을회관에 다같이 모여 음식을 함께 나눠 먹을 예정이다. 김동혁 이장은 “마을 주민이 줄고, 세대도 바뀌었지만 마을 전통과 민속 문화 지킨다는 자부심이 크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삼척=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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