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언제까지 친일몰이만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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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 떠 있는 해상자위대는 놀러 나온 것이요?" 욱일기를 휘날리며 한국 영해에 근접한 일본 이지스함 전단이 우리 해군 함정을 향해 공격용 레이더를 조준하자, 격분한 한국 대통령이 일본 외무상에게 이렇게 호통을 친다.
동해에서 일본 군함과 함께 훈련한 것보다 한술 더 뜨는 상황이다.
영화 '한반도'에선 위기가 해결된 뒤 한국 대통령이 "일본과의 모든 조약과 계약을 재검토할 것이고, 일본은 상응하는 보상과 위로를 우리에게 줘야 한다"고 말하고 일본은 군말 없이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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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 떠 있는 해상자위대는 놀러 나온 것이요?” 욱일기를 휘날리며 한국 영해에 근접한 일본 이지스함 전단이 우리 해군 함정을 향해 공격용 레이더를 조준하자, 격분한 한국 대통령이 일본 외무상에게 이렇게 호통을 친다. 실제 상황은 아니고, 2006년에 개봉한 영화 ‘한반도’의 한 장면이다.
욱일기를 펄럭이며 동해 공해상에 나타난 해상자위대 함정. 이건 최근 실제 벌어진 일이다. 한·미·일 동해 연합훈련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펄펄 뛰었다. “한·미동맹으로 충분한데 왜 일본을 끌어들이나. 극단적 친일 국방이다!” 이재명 대표는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친일 국방’이란 표현을 썼다. 언제 일어날지 모를 일본의 한반도 재침략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선 국토방위에 일본과 협력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인가.
며칠 뒤에는 우리 해군이 일본 관함식에 참석해 욱일기를 단 함정에 경례를 하게 된다. 동해에서 일본 군함과 함께 훈련한 것보다 한술 더 뜨는 상황이다. 아니나 다를까, 민주당은 “도대체 왜 일본에 충성하지 못해 열을 올리나. 친일 DNA가 다시 살아난 것이냐”며 관함식 참석 취소를 촉구했다. 관함식이 열리면 친일 국방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욱일기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어서 한국인들이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 거기에 대고 우리 군대가 경례를 하는 게 당연히 좋을 리 없다. 하지만 방사형 문양만 봐도 욱일기라고 펄쩍 뛰는 식의 자동반사적 대응이 이젠 좀 지겹다는 생각도 든다.
전임 민주당 정권은 북한과 밀착하면서 일본과 심하게 갈등했다. 북핵 문제가 잘 풀릴 것만 같았고, 우리에게 일본의 중요도가 예전보다 떨어진 데다 다투는 사안도 많아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밀월은 오래가지 못했고, 북한은 다시 가장 크고 급박한 위협이 됐다.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나라는 사실상 한국과 일본뿐이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일본과 협력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한·일 둘 다 서로가 좋아서가 아니라 필요하니까, 미국이 요구하니까 손을 잡아야 하는 처지다. ‘미국 대 북·중·러’ 대결 구도에서 우리는 미국 쪽에 설 수밖에 없으니 한·미·일 군사협력은 안 내켜도 해야 한다. 이런 불가피하고 현실적인 선택을 두고 ‘친일 DNA’라고 욕하는 건 온당치 못하고 시대착오적이다.
영화 ‘한반도’에선 위기가 해결된 뒤 한국 대통령이 “일본과의 모든 조약과 계약을 재검토할 것이고, 일본은 상응하는 보상과 위로를 우리에게 줘야 한다”고 말하고 일본은 군말 없이 받아들인다. 이렇게 완벽한 승리를 거두게 된 과정은 황당하고 허무하니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다만 영화 속 대통령의 요구와 일본의 승복은 그 자체가 민주당식 ‘대일 판타지’나 다름없어서 옮겨 적어봤다. 말 그대로 판타지, 현실에서 이뤄지기 어려운 희망이다.
물론 현 정부가 망가진 한·일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들이는 노력에 비해 일본의 호응은 아직 미미하다. 마지못해 ‘만나는 줄게’라는 스탠스인 듯, 좀처럼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 이런 비대칭을 두고 ‘저자세·굴욕 외교’라고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판타지에 가까운 비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이에 못 미치면 배제하거나 비난하고 ‘친일몰이’를 하는 건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 ‘이번 선거는 한일전’…. 고루한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구호들이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니 답답증이 치민다.
천지우 정치부 차장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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