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그 법은 ‘카카오 먹통’ 막을 수 있었을까

2022. 10. 31.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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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숙 전 국회의원


금융기관들에 신용대출 금리를 알아보기만 해도 신용 점수가 깎이던 시절이 있었다. 신용 점수가 깎이면 대출 금리는 더 높아지니 금리를 비교해 볼 수도 은행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불과 10여년 전 일이다. 2008년 국회에서 개인의 선택권을 보호하는 신용정보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된 이유였다. 하지만 금융 당국과 신용평가사들은 여러 곳에 대출 금리를 조회하는 경우 불량 채무자가 될 위험성이 있으니 신용 점수를 깎는 게 당연하다며 법 개정에 반대했다. 대출금을 갚지 않은 것도 아닌데 신용도를 낮추는 건 부당하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3년 넘게 걸렸다.

문제는 신용정보만이 아니었다. 금융기관과 금융소비자 사이의 불공정한 관계를 바꾸기 위해 2011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안이 발의됐지만 그 법이 통과되는 데는 다시 10년이 필요했다. 이젠 누구나 마음 놓고 자신의 신용정보, 대출 금리를 조회할 수 있다. 예금 금리는 천천히, 대출 금리는 빨리 올려 예대마진으로 많은 수익을 내는 금융기관의 벽은 여전히 높지만.

비단 금융정보뿐일까. 인터넷에서 수많은 사용자의 정보가 데이터센터에 쌓인다. 인터넷기업은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낸다. 메신저나 플랫폼 서비스는 엄밀히 말하면 무료가 아니라 개인의 정보 수집을 전제로 제공되는 서비스인 셈이다. 정보 제공과 활용 절차도 더 투명해져야 하고, 제공된 정보의 안전한 관리책임 역시 데이터기업의 당연한 의무다. 2020년 데이터센터를 재난관리 대상으로 포함하는 내용의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된 이유였다.

그 법안은 같은 해 5월에 국회 상임위원회인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통과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막혀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폐기됐다. 그리고 얼마 전 ‘카카오 먹통’ 사태가 일어나자 새삼 그 법안이 소환됐고, 국회에서도 관련한 입법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사실 그 법안이 그나마 과방위 문턱을 넘은 것은 ‘때’가 됐기 때문이었다. 2018년 kt 아현동 화재사건이 그 계기였다. 화재 자체는 큰불이 아니었지만, 마포에서 서대문 일대의 인터넷 통신이 먹통이 되고, 식당 등 상점의 카드 결제도 중단됐다. 오랜 조사 뒤에도 정확한 발화 원인을 밝혀내진 못했다. 다만 20년 넘게 방치된 통신구 시설에서 작은 불씨가 화재로 번졌을 때 그 피해가 일파만파 커진 것은 이중화와 우회경로 확보 등 유사시 대비가 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란 사실은 분명했다. 과방위 소속 의원들은 이 사건을 통해 재난에 대한 대비와 점검의 중요성을 확인했고, 데이터센터도 재난관리 대상이 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

법사위에서 그 법이 통과되지 못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수많은 사용자가 곧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간과한 때문이 아닐까. 미국 경제학자 맨슈어 올슨이 ‘집단행동의 논리’에서 분석했듯 조직된 소수는 종종 조직되지 못한 다수의 이익을 침해하고 부담을 전가할 힘을 갖게 된다. 수천만명의 사용자가 있어도 조직돼 있지 못하면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협회 등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소수 이해관계자 조직의 목소리가 더 부각되는 이유다. 국회가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에 주목하면서 놓친 것은 기업에 정보를 제공하는 대다수 국민의 권리는 누가 대변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번 사태로 플랫폼과 네트워크, 데이터가 공공적 성격을 가진다는 논의가 시작됐다. 국회 논의가 데이터 제공자인 수천만 사용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에서, 택시 미용실 등 수많은 영업 활동자의 권리도 보호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길 기대해 본다.

그런데 2년 전 그 법안이 통과됐다면 과연 ‘카카오 먹통’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까. 유감스럽지만 그러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소방법과 정보통신망보호법, 방송통신발전기본법의 3중 규제를 받던 kt의 아현동 화재에서 확인된 것처럼 법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거나 관리감독이 제대로 안 된다면 말이다. 다만 법 개정이 이뤄져 자체 데이터센터가 없는 카카오도 새 법에 그 나름의 대비를 했다면 적어도 127시간30분이란 복구시간은 크게 단축됐을 것이다. 법은 최소 장치이고 표지판일 뿐 결국 사고에 대비하는 건 사람이다. 대비하지 않을 때 사고는 언제든 일어난다.

박선숙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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