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전하는 ‘한 끼’ 밥… 성령이 끌고 가는 것 같아
2010년 어느 날이었다. 박인성(59) 목사는 서울 감리교신학대에 다니던 큰아들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버지, 점심을 사 먹을 돈이 없어서 도시락을 싸 오는 친구들이 많아요.”
끼니 걱정을 하는 청년이 많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아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그는 아내와 함께 도시락을 만들어 틈틈이 학생들에게 전달했고, 2014년 3월부터는 감신대에서 본격적으로 ‘무료 급식’ 행사를 열게 됐다. 매주 한 차례 학생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이 행사의 이름은 ‘도시락&토크’다.
서울 서대문구 온유교회를 섬기는 박 목사는 요즘도 매주 화요일이면 감신대에서 학생들에게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26일 서대문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박 목사는 “청년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도시락&토크’의 ‘역사’를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전까지 ‘도시락&토크’는 감신대 한 강의실에서 진행됐다. 강의실엔 박 목사 부부가 준비한 50인분 식사가 뷔페식으로 차려졌고, 학생들은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곤 했다. 한때는 감신대뿐만 아니라 연세대에서도 같은 행사를 열었었다. ‘도시락&토크’가 열리는 날엔 선배 목회자들이 현장을 방문해 후배들에게 진로나 신앙 상담을 해줄 때도 많았다.
하지만 팬데믹 탓에 3년 전부터는 이런 방식으로 행사를 진행하기가 힘들어졌다. 때마침 박 목사의 아내가 감신대 캠퍼스에 있는 편의점을 운영하게 됐고, 그즈음부터 박 목사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으로 ‘점심 신청’을 한 학생 50여명에게 화요일마다 편의점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다.
박 목사는 코로나 탓에 과거처럼 학생들에게 ‘집밥’을 선물할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행사를 열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지인들의 만류로 계속 사역을 이어가게 됐다”고 전했다.
박 목사가 섬기는 온유교회는 성도가 거의 없는 미자립교회다. ‘도시락&토크’를 시작할 때는 경기도 고양에 있는 샘솟는교회 담임자였는데, 이 교회 역시 성도가 10명도 안 되는 작은 교회였다. 이쯤 되면 그가 ‘도시락&토크’를 이어오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매주 50인분 식사를 준비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찮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는 후원자나 일부 교회가 건네주는 후원금으로 힘든 시간을 버텨야 했다.
“사역을 시작하고 3년쯤 지났을 때였어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했어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지금은 감신대를 떠난 이정배 교수님을 만났는데, 교수님께서 그러시더군요. 한 달쯤 하고 그만둘 것 같던 이 사역을 3년 넘게 해온 것을 보니 성령이 이 일을 끌고 나가는 것 같다고. 이런 말씀을 듣고 나니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지더군요.”
충북 충주 출신인 박 목사는 고교 시절부터 목회자를 꿈꿨고 1983년 감신대에 입학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경남 합천, 충남 당진과 공주 등지에서 목회를 했다. 그가 청년 사역에 관심을 가진 것은 ‘도시락&토크’를 시작하면서였다. 그렇다면 이 사역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한 학생이 저희가 준비한 음식을 먹으면서 그러더군요.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고, 엄마가 해준 음식과 똑같다고…. 그런 경험이 반복되니 청년들 모습이 계속 눈에 밟히더군요.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끼니는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며 진로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박 목사는 2016년부터 크리스천 청년들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셰어하우스 사역’도 벌이고 있다. 경제적 형편 탓에 열악한 곳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현재 그는 서대문구에 빌라 2곳을 임대해 이 공간을 저렴한 비용으로 청년들에게 내주고 있다. 사역을 좀 더 내실 있게 진행하기 위해 ‘도시락&토크’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비영리단체를 사단법인으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박 목사는 “바통을 이어받아 내가 시작한 사역을 체계적으로 이끌 후배가 나타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역은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라며 “감신대 앞에 공간을 마련해 선배들이 후배들을 상대로 진로나 인생 상담을 해주는 사역을 벌이고 싶다”고 덧붙였다.
박 목사에게 목회 철학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그는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성경 구절을 언급했다. 청년들을 섬기며 살아온 그의 인생이 얼마간 포개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신명기 10장 17~19절 말씀이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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