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하의 미래를 묻다] 미·중 패권 경쟁, 한국이 세계 원전시장 주도할 호기다

2022. 10. 3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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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전산업의 미래


권은하 미래전략컨설팅 수석연구원
“석탄은 땅에서 캐는 에너지지만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입니다. 한국처럼 부존자원이 적은 나라는 원자력을 적극 개발해야 합니다.” 1956년 7월 8일 이승만 대통령을 만난 미국 국제협력국(ECA)의 고문 워커 시슬러 박사의 말이다. 이 만남을 계기로 우리나라는 원자력 개발에 착수했다. 1978년 7월 20일 고리 1호기 원전 준공으로, 세계 22번째 원자력발전국이 되었다. 이후 30년이 흐른 2009년, 연구용 원자로의 요르단 수출과 국산 상용원전인 APR1400 4기의 아랍에미리트 수출에 성공하며 세계 원자력산업의 중심국가로 우뚝 서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2020년대에 들어오면서 당시 목표로 했던 원전 수출 대국이라는 원대한 꿈은 퇴색하고, 국내 원전산업은 생태계 붕괴라는 궁지에까지 몰리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신정부 들어와 원자력을 에너지 안보 및 탄소 중립 수단으로 적극 활용함과 동시에 수출을 통해 원전 최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국정과제로 채택하면서, 이제는 국내에서 단종되는 APR1400을 외국에 팔겠다고 쫓아다니는 촌극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간 붕괴 상황에 몰렸던 국내 원자력 생태계를 조속히 활성화하고 원자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원동력 삼아 원전 수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에는 우리 앞에 놓인 과제가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 러시아·중국, 세계 원전시장 장악
기술패권 경쟁하자 미국, 견제 나서
지난 5년 국내 원전산업 붕괴돼
국민 신뢰 속 원전 생태계 복원해야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2020년 7월 열린‘부산국제원자력 산업전’. 관람객들이 두산중공업 부스를 찾아 원자로 냉각계통 모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따른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우리나라를 포함, 많은 국가가 원자력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채택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1년 발표한 ‘넷제로 로드맵 2050’에서 청정 수소생산에 필요한 전력을 포함, 지구촌 전체의 전력수요가 2050년에 이르면 지금보다 2.5배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2022년 현재 413GW(APR1400으로 환산 시 295기)인 원자력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812GW(APR1400으로 환산 시 580기)로 약 2배 정도 확대해야 한다. 세계원자력협회(WNA)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9월 기준 전 세계에 건설 중인 원전은 60기(66.5GW), 계획이 확정된 원전은 96기(98.6GW)다.

한편, 세계 원전시장을 주도했던 미국과 프랑스가 건설공기 지연과 그에 따른 건설비 상승으로, 그리고 우리나라는 탈원전으로 주춤하는 사이 러시아와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2017년 이후 착공된 총 31기의 원전 중 4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러시아와 중국 노형이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원전시장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부상은 양 정부의 원전수출 확대정책에 기인한다.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국영회사 로사톰이 해외원전의 설계·건설·운영·해체뿐 아니라 핵연료 공급과 사용후핵연료 회수에 이르기까지 ‘전주기통합패키지’(All-Inclusive Package)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더구나 러시아는 통상 원전 건설비용의 80∼100%를 국부펀드와 국영은행을 통해 장기 저리 융자로 원전도입국에 지원한다. 최근에는 벨라루스와 방글라데시 원전을 건설하는데 각각 건설비 90%를 지원했으며, 이집트와 헝가리에도 각각 85%, 80%의 금융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터키에서는 러시아가 원전의 소유권을 보유하고 직접 돈을 투자해 건설한 후, 원전 운영과 전력 판매를 통해 투자비를 회수하고 이익을 창출하는 BOO(건설·소유·운영)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중국 역시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의 일환으로 원전수출을 적극 지원 중이다. 최근 파키스탄에 원전 2기를 수출해 올해 초 2호기가 가동에 들어갔으며, 루마니아와 아르헨티나, 그리고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도 수출을 추진 중이다. 특히, 중국은 프랑스와의 합작회사를 통해 영국의 원전 건설에 참여함으로써 유럽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건설 예정인 브래드웰 원전에 중국의 고유 모델인 ‘화롱원’을 수출하기 위해 이 노형에 대한 영국 규제기관의 설계인증도 취득한 바 있다.

통상 원전의 설계수명은 60년인데, 설계와 건설 기간을 고려하면 원전 건설은 70년 이상 소요되는 사업이다. 이는 원전 1기를 수출하면, 부품의 추가공급이나 정보교환 등을 위해 70년 이상 수출국과 수입국 사이의 긴밀한 협력 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원전 수입국은 공급국에 대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보증해야 하므로, 핵 비확산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세계 원전 수출시장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독주를 우려하는 이유이다.

천만다행한 일일까. 최근 미·중 기술 패권시대를 맞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일어나면서 이들 두 나라를 견제하기 위한 국제적 움직임이 한층 빨라지고 있다. 이런 국제정세 변화와 신정부의 원자력 활성화 정책이 조화롭게 추진된다면 2030년까지 10기의 원전을 수출하겠다는 우리나라의 목표는 조기에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선행요건이 있다. 첫 번째 요건은 국내 원자력 생태계의 복원이다. 원자력 생태계가 복원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원전산업이 활성화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원자력이 우리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받는 에너지원이 되어야 한다. 원자력이 환경친화적이고 경제적이면서도 안전한 에너지원이라는 확신을 국민이 피부로 느끼도록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원전의 안전한 운영은 물론, 원전 운영이나 해체 시 발생하는 방사성폐기물의 처리와 처분, 수명을 다한 원전의 해체가 해당 시설 주변 지역주민이나 국토 환경에 안전하다는 신뢰를 줄 수 있도록 명확한 기술 확보 계획을 제시하고 관련기술의 실증과 더불어 다양한 채널을 통해 국민과 소통하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한편, 수요가 제한적인 국내에 원전을 건설하는 것만으로는 세계를 선도해 나가기 어렵다. 원자력 생태계를 더욱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수출을 통해 시장의 규모를 키워야 하는데, 2030년까지 10기의 원전 수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쟁국을 능가하는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하고 효율적인 원전을 가장 빠르게, 그리고 가장 저렴하게 건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경쟁국과 비교해 우수한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자만하지 않고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더욱 안전하면서도 경제적인 원전을 선도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원전 수입국을 대상으로 핵연료 전주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러시아 수준의 ‘전주기통합패키지’를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에 대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원전 수입국을 위한 자금조달의 취약점 보완, 국제 핵 비확산 이슈에 대한 유연한 대처, 첨단기술 수출에 따른 지적재산권 문제 해결 등을 위해 우방국과의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지난주 폴란드의 첫 원전사업자로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폴란드는 6~9GW 규모의 가압경수로 6기를 건설하는 원전사업을 추진 중인데, 우리나라의 한수원과 미국·프랑스가 경쟁을 벌여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내 안보 불안이 고조하면서 폴란드가 전략적 파트너인 미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더구나 웨스팅하우스는 최근 한수원을 견제하기 위해 지적재산권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자금조달 문제 역시 우리나라 단독으로 러시아나 중국의 범국가적 지원을 넘어서기가 어려운 만큼, 미국 등 우방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서로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협력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정치·외교적 노력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는 우리나라의 원전수출을 담당하고 있는 한수원의 국제적 입지를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 원자력발전 용량 규모나 실적, 원전의 안전한 운영 등에서 한수원은 세계적으로 선두를 다투는 기업이다. 이러한 위상에 걸맞게 세계 원자력계를 이끌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국제사회에서 그 입지를 공고히 한다면, 우리나라가 세계 원전 수출시장을 주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일어나면서 2010년대 중반 이후 러시아와 중국이 주도하던 세계 원전 수출시장에 큰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런 기회를 발판삼아 한수원을 비롯한 원자력계와 정부가 힘을 합쳐 노력하고, 우리 국민이 이를 응원한다면 K-문화, K-반도체, K-방산처럼 K-원자력도 세계를 주도하는 날이 곧 올 것으로 확신한다.

■ ◆권은하

「 미국 UCLA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몬터레이국제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원자력연구원 연구원으로 지내며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에서 양자와 화학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8년 민간연구소 미래전략컨설팅을 설립, 수석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권은하 미래전략컨설팅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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