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후진타오와 장성택
9년 전 북한에서 발생한 장성택 사건 연상돼
고도로 계획된 상징적 숙청 해석에 무게 실려
시진핑(習近平)의 3연임을 확정한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가 끝난 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파장은 아직도 크다. 두 가지 측면에서다. 하나는 탈(脫)중국 또는 중국 버리기인 ‘차이나런’ 현상이다.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경제 감각도 없고 시장경제와는 거리가 먼 시진핑 파벌의 시자쥔(習家軍) 일색으로 구성되며 외자가 빠르게 중국탈출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번 당 대회 최고의 장면으로 꼽히는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의 폐막식 행사 도중 강제 퇴장 문제다.
현재 온 세계가 약 3분여 정도의 후진타오 퇴장 동영상을 돌리고 돌려보며 그 의미를 추적 중이지만 아직 속 시원한 답은 나오지 않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또 어떤 이유로 일어난 것인가. 우선 중국 관영 신화사가 영문 트위터로 밝힌 ‘후의 건강 문제’는 아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퇴장할 때 후의 걸음걸이는 80 고령에 비해서도 비교적 빠른 편이다. 몸이 아팠다면 먼저 주위에 도움을 청하는 후의 제스처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전혀 없다.
후진타오는 몸이 불편해 떠난 게 아닌 건 물론 자발적으로 퇴장한 것도 아니다. 그의 퇴장을 물리적으로 이끈 건 후진타오 수행원이 아니라 시진핑의 수행원이다. 그 젊은 경호원의 완력에 의해 강제로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지고 또 자리를 뜨도록 안내를 받으면서도 다시 자리에 앉으려 고집하는 후진타오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후가 아픈 것도 아니고, 자신의 뜻에 따른 것도 아니라면, 타의에 의한 강제 퇴장이라는 답이 나온다. 적어도 퇴장하도록 유도를 받았다. 그럼 왜 폐막식 행사 도중 후진타오 강제 퇴장이라는 일이 발생했나.
그것도 이제 막 내외신 기자의 행사장 입장이 허용돼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말이다. 시 주석이 세계적 망신을 자초하기 위해서인가. 아닐 것이다. 미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의 분석처럼 ‘고도로 계획된 상징적 숙청’이라는 해석이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인다. 몇 번이고 반복 연습했을 5년 만의 당 대회, 그리고 그것도 시진핑의 3연임을 결정짓는 어마 무시하게 중요한 당 대회에서 이런 일이 우발적으로 발생할 수는 없다. 하나의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연출된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영문 모르고 출연한 후진타오를 상대로 후의 옆에 앉은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악역을 맡은 듯 보인다. 영상을 보면 후진타오가 안경을 벗은 채 종이 문건을 보는 듯한데 돌연 리잔수가 손을 뻗어 후진타오 손에 있던 종이 문건을 가져간다. 근시인 후는 평상시 안경을 쓰고 있다가 문건의 글씨를 보려면 안경을 벗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앞의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리잔수의 돌발 행동이다. 전 국가주석의 손에 있던 문건을 가져간 뒤 빨간 파일로 문건을 덮는다.
그러면서 무언가 설명을 한다. 마치 지금 이 자리에선 이걸 봐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어이없다는 표정의 후진타오가 도로 문건을 가져가려 하고 리잔수는 이를 뺏기지 않으려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자 옆에서 이 모습을 신경 쓰며 지켜보고 있던 시진핑이 수행원을 불러 지시를 내린다. 문건을 보려면 밖에 나가서 봐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후진타오도 시진핑이 수행원에게 하는 말을 듣는 표정이다. 중화권에선 이를 두고 시진핑이 후진타오를 모욕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시진핑 자신이 직접 후진타오에게 말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아랫사람을 시켜 조치를 취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연장자이자 전임 국가주석에 대한 존중의 모습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후진타오는 상당히 문건을 보고 싶어하는 눈치다. 시진핑 앞에 있던 문건에까지 손을 뻗다가 시진핑과 경호원에 의해 제지당하는 모습이 나온다. 후는 또 경호원의 완력과 설득에 못 이겨 마지못해 일어서서도 경호원이 들고 있던 문건에 또다시 손을 댄다. 이 때문에 종이 문건에 도대체 어떤 내용이 쓰여 있었는지 큰 궁금증을 자아낸다.
한 장짜리 종이 문건임을 고려할 때 이튿날 발표될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의 명단이나 정치국 위원 24명의 명단을 적은 게 아닌가 추측된다. 200여 명이 넘는 중앙위원의 이름이 한 페이지에 다 들어가긴 어렵기 때문이다. 한데 왜 이를 후가 보지 못하게 막았나. 일각에선 당초 후에게 알렸던 것과는 다른 인선 내용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즉 후를 속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그렇다면 문건을 아예 후진타오 앞에 놓지 않았을 거란 이야기다.
그보다는 시진핑의 지시에 의해 후진타오가 중도 퇴장하는 모습을 세계에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그런 계기를 만들기 위해 리잔수가 후와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연출하지 않았나 싶다. 자신이 왜 문건을 보지 못하고, 또 왜 자리를 떠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는 후진타오가 빨리 퇴장하지 않고 다시 자리에 앉으려 하는 등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자 리잔수는 손수건을 꺼내 식은땀을 닦는가 하면 직접 자신이 일어나서 후진타오의 퇴장을 이끌려다 옆에 있던 왕후닝(王滬寧)의 제지를 받기도 한다. 배역 소화가 쉽지는 않았던 것이다.
당시 폐막식 현장에 있던 소식통에 따르면 후진타오가 떠나며 시진핑을 향해 몇 마디 했는데 그 표정이 상당히 격앙돼 있었다고 한다. 또 그 옆에 있던 자신의 공청단(共靑團) 직계 후배인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어깨를 격려하듯 가볍게 두드렸는데 리커창은 이때 상당히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후진타오 퇴장 당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한 인사의 반응이 있다. 바로 이번 당 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진출이 확정된 것처럼 여겨지던 공청단의 희망 후춘화(胡春華) 상무 부총리의 태도다. 그는 주석단 맨 앞줄에 앉아 있었고 후진타오가 문으로 사라지기 전 끝에서 두 번째 자리에 모습을 보였는데 유일하게 팔짱을 낀 모습으로 몹시 굳은 얼굴이었다.
후진타오 퇴장은 결국 시진핑의 뜻에 따른 강제 퇴장으로 읽힌다. 그러면 이를 통해 시 주석이 보여주고자 한 건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로 보인다. 우선 당내 경고다. 이렇게 회의장에서 끌려나가는 모습을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나. 바로 그렇다. 2013년 12월 초 북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 석상에서 당시 북한 2인자로 통하던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군복 입은 보안요원에 의해 끌려나갔다. 이 사건은 우리는 물론 중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장성택이 북한 내 대표적 친중 인사였기 때문이다.
당내 간부가 운집한 대형 회의장에서 공개적으로 끌려나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리커창의 위축된 움직임을 이해할 만할 것 같다. 공청단의 대부 후진타오가 이처럼 당하는데 나 자신은 안전할까 걱정이 앞설 것이다. 시 주석이 당내 경고에 나선 건 그의 3연임, 그리고 최고 지도부를 자신의 사람으로 채우는 데 대해 당내 반발이 작지 않았던 걸 방증한다. 그런 까닭인지, 이번에 당의 헌법인 당장(黨章)을 수정하면서 시진핑의 당내 핵심지위 확립과 시진핑 사상의 지도적 지위 확립이라는 양개확립(兩個確立)이 당장에 삽입될 것으로 봤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후진타오 강제 퇴장 조치가 보여주는 두 번째 의미는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와의 결별을 세계에 고한 것이다. 후진타오가 어떻게 중국의 1인자가 될 수 있었나. 덩샤오핑이 “꽤 괜찮은 젊은이”라고 평한 한마디가 장쩌민(江澤民) 다음의 지도자로 후진타오를 낙점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중국 정가의 격대지정(隔代指定) 잠규칙을 낳은 배경이다. 그런 후진타오를 외신 기자가 운집한 석상에서 내쳤다는 건 시 주석 자신이 덩샤오핑 노선과 이별한다는 걸 세계에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덩의 시대를 특징짓는 게 무언가. 개혁개방이다.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자 자본주의의 시장경제를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시 주석의 집권 3기는 개혁개방과는 거리가 멀고 과거 사회주의의 내음이 물씬 나는 모습을 보일 전망이다. 시 주석이 세 번째로 보여주고자 한 건 무엇인가. 이는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인 신경진 기자의 날카로운 관찰이 아니었으면 알기 어려웠을 것 같다. 현장 취재에 나선 신 특파원의 보도에 따르면 후진타오가 자리를 떴는데도 행사 진행요원은 후진타오의 남겨진 찻잔에도 뜨거운 물을 따랐다고 한다.
장쩌민 세력이 시 주석과 거리가 멀어지던 2015년 중국 정가에서 유행한 말이 있다. 인주차량(人走茶凉)이다. 사람이 떠나니 차가 식는구나 하는 뜻이다. 한때 중국을 영도했던 이가 자리를 물려준 뒤 후배에 의해 배척받게 되자 탄식처럼 하던 말로 쓰였다. 한데 후진타오가 떠난 뒤에도 뜨거운 차를 따르게 한 건 어떤 의미인가. 북한에선 끌려나간 장성택이 북한 최고 지도자의 고모부 신분에도 불구하고 며칠 후 처형돼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당시 중국에선 “심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시진핑은 후진타오 빈자리의 찻잔에 뜨거운 물을 따르게 해 사람이 떠나도 차는 계속 따뜻하다는 ‘인주차열(人走茶熱)’을 연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일어났던 처형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란 시사와 같다. 대인(大人)의 아량을 보였다고나 할까. 후진타오 퇴장의 비밀은 시간이 흐르면 결국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은 의심할 것 없이 완벽한 시진핑의 시대라는 점이다. 중국이 절대 지도자의 시대를 맞았고, 그 절대자의 생각이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어온 지도자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우리는 깊이 새겨야 한다. 아울러 그런 중국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와 관련해 우리 국내에서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중국은 우리 운명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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