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명 앗아갔다, 이태원 핼러윈 비극

김민중, 나운채, 김남영 2022. 10. 3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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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밤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해밀턴호텔 옆 좁은 내리막길에 핼러윈 파티를 즐기려는 인파가 몰려 있다. 이날 밤 10시15분쯤 일어난 참사로 30일 오후 9시 기준 154명이 사망하고, 132명이 다치는 등 286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나 겨우 살아 나왔어.”

지난 29일 밤 10시25분쯤 서울 지하철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길거리에서 한 여성이 주저앉으며 소리쳤다. 옆에 있던 그의 친구는 행인들을 향해 울먹이며 “119에 전화 좀 걸어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 대부분은 대형 사고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걸음을 내딛기 어려울 정도로 인파가 몰린 가운데 클럽 등 곳곳에서 음악 소리가 크게 울려 퍼져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한 행인은 “사람이 실려 가는데 좀비 분장을 하고 있으니까 처음엔 무슨 상황극을 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과 소방관들이 현장에 도착해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시민은 집단으로 노래하거나 춤을 추기도 했다. 결국 밤 11시쯤 겨우 현장이 통제되면서 참사 현장의 실태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제야 여기저기서 비명과 울음소리가 음악 소리를 뚫고 나왔다.

사고 다음 날인 30일 오전 인파가 모두 빠져나가고 덩그러니 참사 흔적만 남은 골목길의 모습. [뉴스1]

2014년 4월 16일 304명이 사망·실종된 ‘세월호 참사’ 이후 8년여 만에 다시 100명 넘는 사람이 집단으로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핼러윈 데이(10월 31일)를 이틀 앞두고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벌어진 압사 사고다. 국내에서 벌어진 압사사고 중에선 최대 규모다.

30일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비극은 전날(29일) 밤 10시15분쯤 일어났다. 이태원동 해밀턴호텔 서쪽 인근에 있는 5m 너비, 50m 길이의 내리막길에서였다.


“밀어 소리난 뒤 갑자기 양쪽서 압박 와…눈앞이 하얘졌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만원 전철 안에서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리기 시작했고, 갑자기 도미노처럼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쓰러졌다. 한 목격자는 “순식간에 인파가 무너졌다”며 “사람들이 대여섯 겹으로 쌓였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다가 다행히 살았다는 유튜버 선여정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당시 뒤에서 ‘야 밀어’라고 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앞뒤 무리가) 서로서로 힘을 가하며 밀었다”며 “앞뒤 양쪽에서 압박이 오며 눈앞이 하얘졌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떨어진 채 지켜보던 이선영(38)씨는 “20~30명 정도가 맨바닥에 드러누워 있었고, 경찰과 소방당국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나서서 심폐소생술을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고 밝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 압사 사고로 이날 오후 9시 현재까지 154명이 사망했고, 132명이 부상당했다. 사망자 중 여성은 98명으로 남성(56명)보다 배 가까이 많다.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고 버티는 힘이 약한 여성들이 더 큰 피해를 봤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외국인 사망자도 26명이나 된다. 이날 오전 6시까지만 해도 외국인 사망자는 2명으로 파악됐으나 신원 확인 과정에서 그 규모가 크게 늘었다. 신원 확인 전까지 중국인과 동남아인 등을 한국인으로 간주해 집계한 탓이다. 외국인 사망자의 국적은 이란·노르웨이·중국·우즈베키스탄 등 14개국이다.

부상자 가운데엔 36명이 중상, 96명이 경상을 입었다. 중상자 중에서 추가로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다. 소방당국은 “피해자 대부분은 10~20대”라고 설명했다. 소방당국은 사상자들을 서울과 경기도의 병원 40여 곳 등으로 나눠 옮겼다. 한남동 주민센터 3층에선 실종자 신고를 받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날 참사는 예고된 것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3년 만에 ‘노 마스크’로 핼러윈 데이 기념행사가 열린 탓에 과도한 인파가 몰린 것이다. 사고 전날에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목격담이 있다. 한 시민은 “하루 전인 28일 밤에도 골목길이 가득 찼다”며 “일부 여성이 인파에 떠밀려 넘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서울경찰청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사고 수습과 함께 대대적인 수사를 예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만일 주변 업소 등에서 사고의 원인을 제공했다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대검찰청에 사고대책본부를 구성했다. 검찰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뿐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에도 해당되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윤석열 대통령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서울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이날(30일)부터 다음 달 5일 자정까지 국가 애도 기간으로 정했다. 서울광장 등엔 합동분향소가 설치된다.

윤 대통령은 30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 1층 브리핑룸에서 발표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정부는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사고 수습과 후속 조치에 두겠다”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는 사망자 유족과 부상자에 대한 치유지원금 등 필요한 지원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중·나운채·김남영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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