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에도 수만명 몰렸는데…당국, 인파 분산 시도 없었다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서울 이태원 참사는 예고된 재앙이었다. 참사가 발생한 곳은 해밀턴호텔 뒤편의 세계음식거리와 이태원역 1번 출구가 있는 대로를 잇는 좁은 골목길로 늘 붐빈다. 경찰에 따르면 녹사평역·이태원역의 하루 평균 승하차 인원은 2만5000~4만 명(2019~2021년 기준)이다. 주말에는 3만~5만4000명으로 늘어난다.
특히 핼러윈 데이가 낀 주말에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경찰에 따르면 2019년 핼러윈 주말 하루 평균 녹사평역·이태원역 하차 인원은 평균 8만4000여 명(금 7만2000여 명, 토 11만6000여 명, 일 6만3000여 명)에 달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 2021년 핼러윈 주말에도 하루 평균 5만7000여 명이었다.
올해는 3년 만의 ‘야외 노 마스크’ 축제라서 주말 하루 평균 10만 명 넘는 인원이 이태원을 찾았다. 관할 지자체(서울시·용산구)와 경찰 등도 대비책을 준비했지만 지자체는 ‘방역’, 경찰은 ‘치안’ 위주였다. 경찰은 28, 29일 경찰 인력 200여 명씩을 이태원 일대에 배치했다.
특히 참사 전날(28일)에도 대규모 인파가 몰려 곳곳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이날 이태원을 방문했던 김모(23)씨는 “사람이 너무 많아 떠밀려 다녔다”며 “친구들과 ‘넘어지면 그대로 깔릴 것 같으니 조심하자’고 얘기해서 그런지 참사 소식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동호(안전공학과) 인천대 교수는 “안전요원만 배치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며 “폐쇄회로 TV 등을 통해 확인한 뒤 인파를 분산시키는 방송을 하는 방법도 있다”고 아쉬워했다. 공하성(소방방재학과) 우석대 교수도 “일방통행을 유도했다면 참사 발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성(소방방재학과) 숭실사이버대 교수는 “주최자가 있는 행사의 경우 3000명 이상은 안전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특별한 주최 측이 없는 행사다 보니 필터링이 안 된 거 같다”고 지적했다.
행정안전부는 2006년 ‘공연·행사장 안전매뉴얼’을 만들었다. 안전요원 배치가 주요 내용이다. 2005년 경북 상주의 한 콘서트장에서 발생한 참사가 계기였다. 당시 관객이 몰리면서 11명이 숨지고 162명이 다쳤다. 이후 지자체나 민간이 지역 축제를 주최할 때도 안전관리계획을 세우도록 규정을 강화했다. 지난해 3월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도 나왔지만, 이번처럼 축제·행사의 주최자가 모호하면 수십만 명이 모여도 적용되지 않는다.
외국은 어떨까. 홍콩은 핼러윈 행사 때 경찰 자체 매뉴얼을 적용한다. ‘란콰이펑 광장 핼러윈 기간 인파 관리 및 교통 체계’인데, 인파가 운집할 것으로 예상할 땐 시민 동선·도로 통제가 가능하다. 시민을 줄 세워 이동시키고, 혼잡도가 올라가면 도로를 통제한다.
미국 뉴욕은 핼러윈 때 ‘차 없는 거리’로 운용한다. 보행자 통행로를 확보하고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일본도 핼러윈을 앞두고 도쿄 번화가 시부야에 경찰을 배치하고, 심야 음주를 일시적으로 금지한다.
최모란·김민욱·이수민 기자 choi.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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