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안실 모자라 사망자 40여곳 분산…유족 “내 딸 어디있나”
이태원에 놀러 간다는 연락을 받은 뒤 딸과 소식이 끊긴 정모(63)씨는 30일 오전 9시 서울 순천향대병원을 찾았다. 새벽 내내 서울 시내 장례식장을 전전한 끝에 사망자가 가장 많이 이송됐다는 이 병원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정씨는 이 병원에서도 딸의 이름을 찾지 못했다. 정씨는 “여기에 시신이 많다고 해서 왔는데 우리 딸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고 울먹였다. 그는 이내 다른 병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태원 참사’로 유례없는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서 숨진 희생자들을 안치할 곳도 찾기 쉽지 않았다. 사망자들은 서울·경기 지역 병원 등 40여 곳에 나뉘어 안치됐다. 영안실이 모자라 희생자 유족들은 병원 이곳저곳을 수소문하며 발을 구르거나 빈소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순천향대병원엔 이른 아침부터 실종자를 찾는 전화가 빗발쳤다. 하지만 순천향대와 임시 안치소로 이송된 사망자들은 이날 오전 중 인근 병원과 장례식장으로 신속하게 분산 배치됐다. 시신 보존을 위한 조치에서다.
행정안전부와 각 병원에 따르면 이날 사망자들은 서울·경기 병원과 장례식장 등 총 42곳(2명은 병원 미확인)에 이송됐다. 사실상 가능한 의료기관이 총동원됐다. 삼성서울·서울성모·신촌 세브란스 등 대형병원뿐 아니라 중소 규모 병원에도 사망자를 안치해야 했다.
병원만으로 모자라 일반 장례식장까지 동원됐다. 사고가 발생한 서울에서 거리가 먼 평택제일장례식장에도 시신 7구가 안치됐다. 경기 일산·용인 등 장례식장에도 피해자 여러 명이 이송됐다.
사망자가 서울·경기 곳곳으로 분산되면서 유족들은 이른 시간부터 신원 확인을 위해 헤매는 경우가 많았다. 사망 통보를 받고도 시신의 소재를 찾지 못한 유가족들의 마음은 오전 내내 슬픔과 분노 사이에서 요동쳤다. 한 병원에서 만난 안모(55·여)씨는 “임시 안치소에서 딸의 남자친구가 숨진 딸의 신원을 확인했는데, 그 뒤로 시신이 어디로 옮겨졌는지 연락을 못 받아 밤새 서울 시내 장례식장을 돌고 있다”고 흐느꼈다.
오후 들어선 시신 안치실에서 직접 희생자 얼굴을 확인한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각 병원 장례식장엔 일부 사망자들의 빈소가 차려졌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가장 먼저 차려진 A씨 빈소 영정 앞엔 과자와 음료수가 여럿 놓였다. 먼 길을 떠난 A씨의 사진을 보자마자 친구들은 오열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A씨 빈소를 찾았다. 한 총리는 “유가족에 위로의 말씀을 드렸다. 없어야 하는 일이 일어나서 참담하고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희생자 일부는 유족 희망에 따라 당초 안치된 병원 대신 본가 근처 장례식장으로 옮기거나 이송할 준비를 마쳤다. 서울성모병원에선 오후 4시쯤 지방에서 서둘러 올라온 두 유족의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던 그들은 싸늘하게 돌아온 희생자를 연고지로 돌아갈 구급차에 태운 뒤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다른 병원에선 담당 공무원이 부검, 합동 장례식 등의 가능성 때문에 장례 절차를 일단 보류하자는 뜻을 희생자 유족에게 전해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유족들은 장례식장 예약도 못 한 채 “저 차가운 곳에 언제까지 놔둬야 하냐”면서 발을 굴렀다.
정종훈·심석용·이우림·정희윤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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