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알아볼 수 없을 정도…" 간호사 꿈 앗아간 이태원 악몽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50대 임모씨는 몇 시간 전 세상을 뜬 딸의 마지막 모습을 되뇌고 되뇌었다. 딸 박모(27)씨는 지난 29일 밤 핼러윈 축제가 한창이던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의 거리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을 때 이미 온몸에 다발성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수도권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주변에 있던 그는 몰려드는 인파에 휩쓸려 참변을 당했다.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경을 헤맸다. 산소호흡기를 단 채 사투를 벌이던 박씨는 이날 오후 5시32분 중환자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박씨의 유족은 “(박씨가) 일찍부터 간호조무사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며 “가정을 위해선 궂은일을 마다치 않은 어머니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스무살 초반 직장을 구한 효녀였다”고 말했다. 올해 초 뒤늦게 전남 목포의 한 간호대학에 진학한 박씨는 간혹 어머니에게 “나 간호사되면 엄마 쉬어도 돼”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박씨는 지난 29일 동갑내기 대학 동기와 함께 서울에 왔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만큼 핼러윈 축제에 가보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 작은 설렘은 허락되지 않았다. 경찰은 지문 감식을 거쳐 박씨의 신원을 확인했고 30일 새벽녘 광주광역시에 사는 가족들에게 “위독하다”고 연락했다. 소식을 듣자마자 밤길을 달려온 어머니는 딸의 모습을 보자마자 오열했다.
이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와 만난 박씨의 이모 임모씨는 “조카는 엄마만 생각하는 효녀였다. 최근에 운전면허를 땄는데 엄마를 모시고 드라이브를 가겠다며 좋아했었다”라고 전했다. 임씨는 딸을 잃은 동생을 대신해 박씨의 유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현장에선 박씨의 손가방, 물병 등이 발견됐지만, 휴대전화는 없었다고 한다. 같이 축제에 왔던 친구의 생사도 아직 이들에게 전해지지 않고 있다.
박씨 유족은 관련 절차를 마무리하는 대로 광주광역시의 장례식장으로 박씨를 이송할 예정이다. 임씨는 “광주는 조카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라며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조카가 하늘에서라도 편안했으면 한다”라고 울먹였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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