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시장 '폭풍의 핵' 레고랜드 가보니

김경민·최창원·문지민 2022. 10. 3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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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 급감 '애물단지'…'제2알펜시아' 되나

지난 10월 25일 오전. 강원도 춘천 도심에서 춘천대교를 건너 하중도 레고랜드 주차장에 도착하니 빈 주차 공간이 수두룩하다. 입구 근처에만 차량 몇 대가 주차됐을 뿐이다. 여유 있게 주차하고 매표소에 가니 안내 직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다. 입장권 구매 대기 줄이 길게 늘어진 수도권 주요 테마파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내부에는 입장객이 많을까 기대했지만, 입장 후에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가장 인기가 많다는 롤러코스터 ‘드래곤 코스터’를 비롯한 어떤 놀이기구도 대기 줄이 길지 않다. 구불구불한 대기 줄에서 수십 분씩 기다리지 않아도 금세 기구를 탈 수 있다.

경북 울진군에서 수학여행을 온 한 초등학생은 “수십 분 줄 서도 놀이공원은 북적북적한 분위기가 좋다. 그런데 레고랜드에 와보니 손님이 많지 않아 재미가 반감된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서울에서 온 40대 방문객은 “레고를 활용한 놀이기구는 다양하지만, 에버랜드처럼 동물 체험 시설도 없고 청소년이나 어른이 즐길 만한 액션 위주 놀이기구가 많지 않은 점도 아쉽다”고 전했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야심 차게 오픈한 레고랜드는 개장 직후 입장객이 일시적으로 몰렸다. 100% 사전예약제를 통해 하루 최대 입장객을 1만2000명으로 제한할 정도였다. 그러나 인기는 한 달이 채 가지 않았다. KT빅사이트가 통신 데이터를 기반으로 레고랜드 방문객 추이를 분석한 결과 5월 약 20만1000명에서 9월 13만9000명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관할 지자체도 비상이 걸렸다. 춘천시 관계자는 “레고랜드 개장 전에는 인파가 몰려 교통 혼잡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교통 대책 마련에 고심했지만 정작 개장 이후 방문객이 계속 줄어 아쉬움이 크다”고 설명했다.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도 사태로 자금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사진은 관광객들이 레고랜드에 입장하고 있는 모습. (윤관식 기자)

▶레고랜드 어쩌다 이 지경에

▷ABCP 부도…강원도 뒤늦게 상환 의지 밝혀

강원도 춘천 레고랜드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도로 자금 시장이 급격히 냉각되면서 금융권을 일순간에 혼돈에 몰아넣은 탓이다. 레고랜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레고랜드는 춘천 의암호 하중도 28만㎡ 부지에 들어선 테마마크로 기대를 모았다. 연간 200만명 관광객 유치, 5900억원 경제 효과 등 지역 경제 활성화 기대도 컸다.

하지만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인 2011년으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레고랜드 사업은 당시 최문순 강원도지사 주도 아래 강원도와 영국 멀린엔터테인먼트그룹이 투자합의각서를 체결하면서 시작됐다.

강원도는 2012년 레고랜드 개발 시행사로 엘엘개발을 설립하고 지분 44%를 출자했다. 엘엘개발은 특수목적법인(SPC) ‘KIS춘천개발유동화주식회사’를 통해 2050억원 규모의 ABCP를 발행, 공사 대금을 조달했다.

레고랜드는 2014년 첫 삽을 뜨자마자 사업 중단 위기를 맞았다. 조성 부지로 예정된 곳에서 고인돌 101기 등 대규모 청동기 유적이 발굴됐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유적지 보존을 위해 레고랜드 조성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문화재위원회가 유적 이전 보존을 전제로 개발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건설 계획 변경으로 공사가 지연되고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강원도는 2018년 사업시행 주체를 멀린엔터테인먼트그룹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엘엘개발은 강원중도개발공사(GJC)로 사명을 바꿨다.

GJC는 SPC ‘아이원제일차’를 통해 2050억원 규모 ABCP를 다시 발행했다. 기존 발행 주관사였던 한국투자증권은 BNK투자증권으로 바뀌었고 국내 증권사 10곳, 자산운용사 1곳에 팔린 상태다. ABCP는 부동산, 채권 등 자산을 담보하는 기업어음(CP)으로 단기간에 자금 조달이 가능하지만 만기가 짧은 게 특징이다.

이 어음이 바로 금융 시장 혼란의 진원지다. ABCP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강원도가 지급 보증을 섰다. 부도 날 걱정 없는 광역지자체가 보증을 선 만큼 시장에서 소화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실적이 전무한 GJC가 발행한 채권이었지만 신용평가사들로부터 당당히 A1등급을 부여받았다.

2011년 사업을 시작한 지 11년 만인 올 5월 5일 레고랜드는 수차례 개장 시기를 미루는 우여곡절 끝에 오픈했다. 하지만 개장 4개월여 만인 9월 또다시 사건이 터진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ABCP 만기일(9월 29일)을 하루 앞둔 9월 28일 돌연 GJC 회생 신청 계획을 발표한 것. 이에 따라 2050억원의 ABCP가 최종 부도 처리됐다.

당초 GJC는 레고랜드가 들어서는 춘천 하중도 부지 매각을 통해 차입금을 상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업 장기화로 금융비용이 커지자 부지 전체를 매각하더라도 412억원가량 적자가 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강원도는 ‘기업 회생’ 카드를 꺼내들었다.

국내 금융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커지자 강원도는 회생 신청과 별도로 예산 편성을 통해 ABCP 상환 재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강원도는 “GJC 변제 불능으로 인한 보증채무 2050억원은 예산을 편성해 올해 12월 15일까지 갚겠다”고 밝혔다.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음에도 우려의 목소리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분위기다. 강원도 재정 여건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지방재정 365’에 따르면 지난해 강원도 재정자립도는 24.81%다. 전북(23.08%)과 전남(22.21%)을 제외하면 17개 시도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전국 평균과 비교해도 10%포인트 이상 낮은 수준이다. 재정자립도 산출 항목은 2014년 개편됐는데 강원도 재정자립도는 단 한 차례도 30%를 넘어서지 못했다. 추경을 제외한 올해 강원도 본예산은 7조1161억원 수준으로 인건비, 복지비 등을 제외한 실제 가용재원은 훨씬 적다. 예산 편성으로 한꺼번에 2050억원을 마련하기가 만만치 않은 만큼 내년 사업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김진태 지사의 ‘전임 도정 지우기’가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 지사는 민선 8기 강원도지사에 당선된 후 전임 최문순 지사가 치적으로 내세웠던 레고랜드 사업과 알펜시아리조트 매각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겠다고 공언해왔다. 심각한 자금난을 겪었던 레고랜드 문제점을 지적하려 ‘회생 신청 카드’를 꺼내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앞으로다. 강원도가 채무를 모두 상환해 ‘급한 불’을 끄더라도 레고랜드 입장객이 당초 기대에 못 미쳐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고랜드 인기가 시든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롯데월드, 에버랜드 등 수도권 테마파크와 비교해 입지가 취약하다. 수도권에서 레고랜드를 방문하려면 적어도 왕복 4~5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는 방법도 복잡하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려면 가격, 이벤트 등 다양한 혜택이 필요하지만 이마저도 큰 메리트가 없다. 성인 기준 6만원인 레고랜드 입장권 가격은 롯데월드(6만2000원), 에버랜드(5만8000원)와 비슷한 데다 카드사 할인 혜택이 거의 없다. 웬만한 카드사, 통신사마다 50% 기본 할인이 적용되는 롯데월드, 에버랜드와 달리 레고랜드의 카드사 할인은 KB국민카드 기준 10~30% 수준에 그친다.

주차비도 적잖은 부담이다. 2시간 6000원, 3시간 9000원, 4시간 초과 1만2000원으로 책정돼 대부분 관람객은 1만2000원을 부담하는 실정이다. 최근 가족들과 레고랜드를 다녀온 이 모 씨는 “4인 가족 기준으로 레고랜드 입장료, 기름값, 주차비, 식사비를 포함하면 30만원을 훌쩍 넘는다. 레고를 좋아하는 자녀를 위해 한 번쯤은 희생할 수 있지만, 주말 경춘고속도로 교통 체증에 각종 비용 부담을 감안하면 재방문할 가족은 거의 없을 듯싶다”고 털어놓는다.

레고랜드 호텔 가격도 논란이다. 지난 7월 개관한 레고랜드 호텔 숙박비용은 4인 가족 기준 1박 50만~70만원대다. 객실 내 외부 음식 반입도 불가하다. 4인 가족 기준 입장권 구매, 숙식 해결 시 1박에 100만원 안팎을 지출하는 셈이다. 한 테마파크 전문가는 “비싼 비용도 문제지만, 그 돈을 내고 하루 동안 볼거리가 충분할지도 문제다. 레고랜드 콘텐츠가 취약하다 보니 호텔 숙박까지 하면서 오랜 시간 레고랜드를 즐기려는 수요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레고랜드가 내년 초 임시 휴장하는 걸 두고서도 시끌시끌하다. 레고랜드는 동절기 시즌 연간 유지 관리를 위해 내년 1월부터 3월 23일까지 임시 휴장에 들어가기로 했다. 연간 이용권 소지자에게는 유효 기간을 90일 연장해준다지만 사전에 이를 인지하지 못한 고객 불만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빈자리가 더 많은 상태로 운행 중인 레고랜드의 한 놀이기구. (윤관식 기자)

▶레고랜드 이대로 괜찮나

▷디즈니랜드식 모델 도입 의견도

레고랜드 개발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불공정 계약’ 논란이다. 개발 초기부터 레고랜드 부지가 위치한 춘천시가 강원도의 레고랜드 사업 진행에 제동을 걸었다. 강원도와 영국 멀린엔터테인먼트그룹이 체결하는 본협약에 독소 조항이 있다는 이유였다. 100년간 시유지를 무상 임대하는 파격적인 조건이 도마 위에 올랐다.

2013년 당시 이광준 춘천시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사업 지연·중단 시 강원도가 다른 공동 투자자를 대신해 멀린사에 손해를 배상하는 건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100년간 토지 무상 임대·교량 등 기반 시설 공사비 부담에도 영업이익은 레고랜드가 가져가는 불평등한 협약”이라고 비판했다. 레고랜드 수익이 부진하면 강원도가 부담을 모두 떠안는 구조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강원도는 본협약을 강행했다. 강원도가 공개한 본협약 자료에 따르면 ▲레고랜드 부지 50년간 무상 임대(추후 50년 범위 내 재임대 협의) ▲개발 부지 출자·매각, 의무 불이행으로 멀린사 손해 발생 시 특수목적회사와 공동 배상 책임 등 춘천시가 지적한 사안들이 그대로 포함됐다.

레고랜드가 테마파크로서 사업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도 변수다.

레고랜드 인기가 떨어진 것은 국내 시장과 어울리지 않는 ‘테마파크’ 모델을 고집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국내 테마파크는 에버랜드, 롯데월드 같은 ‘놀이기구’ 중심 놀이공원이 대부분이다. 반면 레고랜드는 ‘레고’라는 블록 콘텐츠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일부 놀이기구가 있지만 대부분 ‘무동력’을 기반으로 미취학 아동을 겨냥했다. 레고에 관심 없는, 쾌감을 주는 놀이기구 위주 놀이공원에 익숙한 청소년이나 성인 입장에서는 아쉽게 느껴질 요소가 많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형태의 테마파크 도입 시도는 의미가 있지만 국내 소비자가 받아들이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김형수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가장 큰 과제는 레고랜드 같은 테마파크 형태가 국내 정서에 적용될 수 있는지다. 놀이공원 형태에 익숙한 소비자가 대부분인데 어떻게 테마파크의 즐거움을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고와 멀린사가 어떤 방식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채워나가느냐가 레고랜드 경쟁력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가야 할 길은 디즈니랜드다”라는 것이 김 교수 주장이다.

디즈니랜드는 195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설립된 세계 최초 테마파크로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전 세계 10여곳 디즈니랜드를 방문하는 인원은 하루 평균 30만명, 연간 1000만명에 달한다. 디즈니에서 제작된 영화 캐릭터를 활용해 다양한 체험 콘텐츠를 갖추고, 시니어 티켓 할인 혜택을 제공해 고객층을 가족 단위에서 중장년층까지 넓힌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한편에서는 레고랜드 사태를 계기로 지자체가 추진하는 대규모 개발 사업에 대한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레고랜드뿐 아니라 알펜시아리조트 역시 강원도가 주도한 개발 사업 실패 사례로 불린다.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는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사업에 1조6800억원을 투자했는데 분양 실패로 무려 1조원 손실이 났다. 결국 강원도는 투자비에 한참 못 미치는 7115억원을 받고 지난해 KH그룹에 알펜시아리조트를 매각했다.

“아무리 지방자치 시대지만 지자체장이 무리하게 추진한 사업 무산에 따른 후폭풍이 만만찮다. 지자체장 임기 내 치적을 쌓기 위해 재원 부족에도 개발 사업을 강행하면 감사원 등이 나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A대 경영학 교수의 총평이다.

[김경민·최창원·문지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1호 (2022.10.26~2022.11.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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