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조각 밟고도 할당량 채우려 참고 일하다 … 택배기사 다리 절단

상처 소독만 하고 지내다 당뇨 겹쳐 심한 골관절염으로 번져
하루 100개 넘는 택배 물량 할당받는 1인 영업소 형태로 일해

택배노조가 2월 2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2022 전국 택배노동자대회’를 열고 CJ대한통운의 사회적 합의 이행과 대화 수용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문호남 기자 munonam@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배달 도중 유리를 밟았지만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참고 일했던 택배기사가 다리를 절단하게 됐다.

29일 KBS 보도에 따르면 50대 택배기사 A씨는 지난 6월 배달 도중 유리를 밟아 발에 유리조각이 박혔다. 일일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바쁜 일정 탓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A씨는 소독만 하고 일을 계속했다. 그러나 2주가 지나고도 상처가 낫지 않아 어렵게 병원을 찾은 A씨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 상처와 당뇨가 겹쳐 심한 골관절염으로 번져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것. A씨는 결국 4차례에 걸쳐 정강이 아래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고 다리를 잃었다. A씨를 진료한 의사는 "좀 빨리 오지, 염증이 발가락 하나 있을 때 왔으면 안 퍼졌을 텐데"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A씨가 병원을 쉽게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가 일일 100개가 넘는 택배 물량을 할당받는 1인 영업소 형태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택배 본사의 화물 관리를 대리하는 지점과 위수탁 계약을 맺고 영업소 직원이자 사장으로 일하고 있어 일을 쉬려면 임시 기사에게 일을 맡겨야만 하는데 그 비용이 하루 수십 만원에 달한다. 배달 지연 등에 따른 책임도 오롯이 혼자 져야만 한다. A씨는 통증이 심해지자 지점에 도움을 요청해봤지만 용차(임시 기사)를 부르는 방법 외엔 별다른 수가 없었다.

1년 가까이 택배 일을 해온 A씨는 다리 절단으로 더는 택배 일을 할 수 없게 된 데다 합병증과 우울증 치료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택배기사들이 열악한 근로조건 속에서 일하며 과로사가 잇따르자 지난해 6월 택배기사의 과로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타결됐다. 합의의 주된 내용은 택배기사의 작업 시간을 주당 최대 60시간으로 제한하고 택배기사의 과로 원인으로 지목돼 온 택배 분류작업에 별도 분류 작업 인력을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 합의는 올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지난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택배기사 642명의 노동실태를 관찰하고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들은 한 주 평균 70시간 이상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지 1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택배기사의 과로는 여전하고 과로사 역시 계속 발생하고 있다. 지난 6월 한 택배기사는 오전 5시30분쯤 출근을 준비하다 자택에서 쓰러졌고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 산하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는 이를 '과로사'로 판단했다. 대책위는 "고인은 만 48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평소 지병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진 지 1년이 지났지만, 하루 12~13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고 주장했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