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완화? 연봉 1억만 좋은 일" 연봉 5천만원이 뿔난 까닭
연봉이 5000만원인 직장인 박모(35)씨는 지난 28일 은행에 주택담보대출 상담을 하러 갔다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전날 정부가 투기·투기과열지구 내 무주택자·1주택자(기존 주택 처분조건부)에겐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대출을 내년부터 허용한다는 소식에 반차까지 내고 은행을 찾았지만, 예상 대출한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다.
쌍둥이(3세) 아들을 둔 박씨 부부는 육아의 많은 부분을 처가에 의존하고 있다. 쌍둥이가 태어난 3년 전 처가가 있는 서울 흑석동 근처로 이사한 뒤 처가 근처에 집을 살 기회를 엿봤지만 그동안 비싼 집값에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박씨는 “치솟는 전셋값을 올려주지 못해 반전세를 사는 상황이라 이럴 바에는 대출이자를 내더라도 이사 걱정 없이 집을 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 따지는 DSR 규제에 고소득 대출한도 확 늘어
박씨가 눈여겨보고 있는 아파트의 현재 시세는 16억원이다. 그동안은 집값이 15억원이 넘어 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15억원이 넘는 집에 대한 대출이 허용되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50%가 적용돼 최대 8억원까지 빌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박씨의 실제 대출 한도는 3억1000만원에 그쳤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가 여전해서다.
만약 박씨의 연봉이 1억원이라면 대출 한도는 7억원으로 훌쩍 늘어난다. 박씨는 “민생을 위한 규제 완화라더니 고소득자를 위한 조치였다”며 “괜히 들떴다가 박탈감만 커지고 많이 벌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거래 절벽’에 빠진 주택시장 활성화를 위해 대출 규제를 완화했지만,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소득에 따라 상환 능력을 따지는 DSR(40%) 규제가 여전하다 보니 고소득자의 대출 한도만 늘고 정작 서민들에겐 별반 혜택이 없어서다.
지난 27일 정부는 '대출규제 단계적 정상화' 카드를 빼 들었다. 규제 지역 내 주택의 담보가치에 따라 내년부터 대출금을 조정하는 LTV를 주택 가격과 상관없이 50%까지 허용한다는 내용이 중심이다. 현재 서울 등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15억 초과 주택은 대출을 아예 받을 수 없다. 15억 이하 주택도 9억원까지는 LTV 40%, 9억원 초과는 20%로 묶여 있다.
15억원이 넘는 비싼 아파트의 대출 한도 완화는 고소득자에게 유리하다. 같은 가격의 아파트를 사도 DSR 규제 따라 소득이 높을 수록 대출 금액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15억원 이하 주택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연봉이 5000만원인 무주택 실수요자가 14억원인 아파트를 산다면 DSR 40%와 금액별 LTV 규제(9억원까지 40%, 9억원 초과 20%)가 적용돼 3억5500만원(40년 만기·원리금 균등 상환)을 빌릴 수 있다. 연봉이 1억원이라면 4억6000만원이다.
하지만 대출 규제가 풀리고 나면 연봉 5000만원인 실수요자의 대출 한도는 여전히 3억5500만원에 머문다. 달라진 게 없다. 반면 연봉이 1억원인 경우 대출 한도는 7억원으로 늘어난다.
대출 한도가 늘어나더라도 서민들에게 집 장만 부담은 여전하다. 대출금리가 치솟고 있어서다. 일부 은행의 담보대출 금리는 최고 연 8%까지 높아졌다.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지난 26일 기준)는 연 5.75~6.66%이다.
3억원만 대출(연 6%)을 받아도 월 이자만 150만원이다. 임채우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서울 평균 아파트값이 12억원이 넘는 상황에서 금액에 대한 대출 규제 완화 시그널은 긍정적이지만,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며 “거래 활성화를 위해서는 거래세를 손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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