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영안실 없다…"아들 있나요" 장례식장마다 전화 돌렸다

정종훈, 심석용, 이우림, 정희윤 2022. 10. 30. 18:2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30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국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신원 확인을 위해 가족들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경기 고양시에 사는 A씨는 30일 서울 이태원에 갔다가 연락이 닿지 않는 아들을 찾기 위해 무작정 병원들에 전화를 돌렸다. 어렵게 평택의 한 장례식장에 아들 시신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황망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앰뷸런스가 오는대로 집 근처 병원으로 아들을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정오께 러시아 여성 B씨도 사촌 동생을 찾으려 지인들과 함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하지만 사촌 동생이 없다는 걸 알고서 힘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태원 참사'로 유례없는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서 숨진 피해자들을 안치할 곳도 찾기 쉽지 않았다. 참사 사망자들은 서울·경기 지역 병원 등 40여곳에 나뉘어 안치됐다. 영안실이 모자라 피해자 유족들은 병원 이곳저곳을 수소문하며 발을 구르거나 빈소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행정안전부와 경찰에 따르면 오후 9시 기준 사망자 154명이 서울·경기 병원과 장례식장 42곳(2명은 병원 미확인)에 이송됐다. 사실상 가능한 의료기관이 총동원됐다. 100명을 훌쩍 넘는 피해자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병원 몇 곳만으로 시신을 안치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삼성서울·서울성모·신촌 세브란스 등 대형병원뿐 아니라 중소 규모 병원들에도 사망자를 안치해야 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영안실 여유가 되는대로 피해자를 일단 다 받았다"고 말했다.

일부 병원은 영안실 빈자리가 없어 이송된 사망자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날 아침 사고 현장과 가까운 순천향대병원을 찾았던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여기에 시신이 많이 안치됐다고 듣고 왔는데 냉동 시설 제한 때문에 서울 시내 병원 곳곳으로 흩어졌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영안실에 여력이 있는 일산동국대병원에 제일 많은 사망자가 안치됐다. 처음엔 20명이 안치됐다가 근처 일산병원, 일산장례식장 등으로 이송되면서 소폭 줄었다.

또한 병원만으론 모자라 일반 장례식장까지 활용해야 했다. 사고가 발생한 서울에서 거리가 먼 평택제일장례식장에도 시신 7구가 안치됐다. 경기 일산·용인 등의 장례식장에도 피해자 여러 명이 이송됐다. 평택제일장례식장 관계자는 “사망자가 많은데 서울 장례식장서 모두 수용할 수 없어 여기까지 왔다. 신원 확인 시 연고지로 가거나 여기에서 장례를 치를 듯하다”고 말했다.

30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국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일산 동부경찰서 과학수사반 직원들이 임시 안치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사망자가 서울·경기 곳곳으로 넓게 분산되면서 유족들은 이른 시간부터 신원 확인을 위해 헤매는 경우가 많았다. 이날 오전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 안내데스크엔 사망자를 찾는 전화가 쉼 없이 걸려왔다. 직원들은 “해당 이름은 없다”라거나 “여기엔 (사망자) 6명밖에 없다”고 일일이 설명했다. 연락두절 된 딸을 찾으려 이 병원에 온 정모(63)씨는 “여기에 (피해자) 시신이 많다고 그래서 왔는데 없다. 우리 딸은 어디서 찾는 게 빠른거냐”고 반문했다. 그리고는 다른 곳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들어선 시신 안치실에서 직접 피해자 얼굴을 확인한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각 병원 장례식장엔 일부 사망자들의 빈소도 차려졌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가장 먼저 차려진 B씨 빈소 영정 앞엔 과자와 음료수가 여럿 놓였다. 먼 길을 떠난 B씨의 사진을 보자마자 친구들은 오열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B씨 빈소를 찾았다가 약 5분 뒤에 나왔다. 한 총리는 “유가족에 위로의 말씀을 드렸다. 없어야 하는 일이 일어나서 참담하고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피해자 일부는 유족 희망에 따라 당초 안치된 병원 대신 본가 근처 장례식장으로 옮겨지거나 이송할 준비를 마쳤다. 서울성모병원에선 오후 4시께 지방에서 서둘러 올라온 두 유족의 눈이 퉁퉁 불었다.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던 그들은 싸늘하게 돌아온 피해자를 연고지로 돌아갈 구급차에 태운 뒤 눈물을 닦았다. 삼성서울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C씨의 유족은 “오늘(30일)만 임시로 여기에 안치하고 장례는 다른 곳에서 치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병원마다 분위기는 달랐다. 이대목동병원에선 담당 공무원이 부검, 합동 장례식 등의 가능성 때문에 장례 절차를 일단 보류하자는 뜻을 피해자 유족에게 전해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유족들은 장례식장 예약도 못 한 채 “저 차가운 곳에 언제까지 놔둬야 하냐”면서 발을 구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사인이 분명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부검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유가족 의사에 최대한 협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종훈ㆍ심석용ㆍ이우림ㆍ정희윤 기자 sakeho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