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 주최 모호하면 방치...'뉴욕의 할로윈'은 달랐다
서울 한복판서 최소 286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는 행사에 해외처럼 사전통제 방안을 담은 지침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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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 '사각'
3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정부는 2006년 ‘공연·행사장 안전매뉴얼’을 만들었다. 안전관리요원을 배치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2005년 경북 상주의 한 콘서트장 참사가 결정적 계기였다. 당시 리허설을 보려 몰린 관객으로 출입구 쪽이 아수라장이 되면서 11명이 숨지고 162명이 다쳤다.
이후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민간이 지역축제를 주최할 때도 안전관리계획을 세우도록 규정이 강화됐다. 이를 반영해 지난해 3월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이 나왔다. 매뉴얼은 순간 최대 관람객이 1000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거나 개최장소가 산이나 강·바다인 지역축제 등에 적용된다. 매뉴얼에 따라 안전관리계획을 심의하고 축제·행사 당일 1~2일 전 현장 지도·점검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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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모호하면 적용 안 돼
문제는 안전에 초점을 맞춘 매뉴얼도 축제·행사를 누가 여는지 ‘주최’가 모호하면, 수십만명이 모여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참사가 난 이태원 핼러윈 행사는 3년 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노 마스크’ 핼러윈을 맞아 젊은이가 대거 모일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19 확산 전 이곳에서 열린 핼러윈 행사에 17만명가량 모였다. 하지만 주최가 없이 자발적으로 모이다 보니 매뉴얼 사각지대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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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일렬로 줄 세우는 홍콩
반면 해외는 다르다. 홍콩은 핼러윈 행사 때 경찰 자체 매뉴얼을 적용한다. ‘란콰이펑(蘭桂坊) 광장 핼러윈 기간 인파 관리 및 교통 체계’다. 란콰이펑 매뉴얼에 따르면 경찰은 특정 장소에 인파가 운집할 것으로 예상할 땐 시민 동선·도로 통제가 가능하다. 시민을 쭉 줄 세워 이동시킨다. 스탠리 거리, 코크레인 거리 방향 등 구체적인 우회로까지 정해놨다. 식당을 예약해도 예외가 없다. 핼러윈 기간엔 도로 위 주차가 금지된다. 혼잡도가 올라가면 도로를 통제한다.
실제 홍콩 경찰은 30일과 31일 란콰이펑 골목에서 일방통행을 실시한다고 홍콩 인터넷매체 열혈시보가 보도했다. 경찰은 “나선형 계단이 많아 인파가 지나치게 많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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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는 차량 통제...日은 금주까지
미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뉴욕은 핼러윈 때 주요 100개 구간에 ‘차 없는 거리’를 운용한다. 보행자 통행로도 확보하고 자동차에 치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 핼러윈 당일엔 맨해튼과 브루클린 등의 일부 위험 지역을 폐쇄한다. 유명 숙박중개 기업인 에어비앤비는 숙소에서 핼러윈 파티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일본도 도쿄 번화가인 시부야(渋谷)서 열리는 핼러윈 행사에 철저히 대비한다. 경시청과 지자체는 심야 음주를 일시적으로 금지한다. 편의점·주점에도 주류 판매 금지를 요청할 정도다. 또 보행자 전용도로와 바리게이트를 만들어 일정 방향으로 통행을 유도하고 곳곳에 임시 감시탑을 설치한다. 감시탑에선 ‘DJ폴리스’로 불리는 경찰관이 시민에게 멈추지 않고 계속 이동할 것을 권고한다. 이렇게 하니 100만명이 몰려도 참사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함께 캐나다는 건국기념일인 7월 1일 행사 때 자동차와 입장객 수를 철저히 통제한다고 한다. 캐나다 건국기념일에 불꽃놀이와 차량 퍼레이드를 보러 많은 사람이 몰린다고 한다.
남기훈 창신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현재 (지역축제) 매뉴얼 상 사각지대가 있더라도 (다중이 모이는 행사를)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며 “모든 행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역별로 장소·상황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면 지자체가 경찰·소방과 협력해 안전관리계획을 세우고 인력을 배치해 인파를 분산하는 등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 교수는 또 “기존 매뉴얼을 사각지대로 확대해야 한다”며 “다만 사전에 지자체와 경찰·소방 등 관계기관 역할과 책임 소재 등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일 전 인제대 방재연구센터장도 “사회 재난은 자연 재난과 달리 통제가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사전 통제가 중요하다”며 “지자체가 더 적극적으로 관계기관은 물론 상인 등 주민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사전 통제에 나섰다면, 이번처럼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욱·안대훈·이수민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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