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형 사고 아니다" 15년전 압사 겪은 전문가가 본 문제점

신성식, 심정보, 황수빈 2022. 10. 3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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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압사사고 논문 쓴 이경원 응급의학전문의 인터뷰

“압사 사고는 결코 후진국형 사고가 아닙니다. 사람이 많이 몰리고, 게다가 경사로라면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경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서울 이태원참사를 보고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다. 15년 전 유사한 사고를 경험한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2007년 ‘상주 시민운동장 압사사고의 임상적 고찰’ 논문을 대한응급의학회지에 게재했다. 이 논문은 2005년 10월 3일 경북 상주 시민운동장 가요프로그램 녹화 직전 한쪽 출입문으로 몰리면서 11명의 사망자, 148명 부상자가 발생한 사고에 관한 것이었다.

이태원참사가 발생한 거리의 사고 전 모습. 연합뉴스

이 교수는 29일 오후 8시부터 30일 오전 8시까지 경기소방본부 재난종합지휘센터에서 구급대원 의료지도 당직 근무 중에 이태원 사고를 접했다. 경기도 119 대원들에게 의학적 지시를 했다. 이 교수는 “경기도 응급구조팀에게 ‘현장에 나온 재난의료지원팀(DMAT) 의사들에게 심폐소생술(CPR) 유보 등의 판단을 구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Q : 상주 사고와 이번 사고의 유사점은.
A : "경사로에서 사고가 발생한 점이다. 상주 운동장의 '직 3문' 앞 경사각 15도의 약한 경사로에서 발생했다. 이번 사고 장소는 상주보다 경사가 더 심하고 인파 규모도 훨씬 크다."

Q : 왜 경사로가 문제가 되나.
A : "평지나 오르막보다 압사 사고가 나기 쉽다. 경사로에 엄청난 인파가 몰리고, 앞뒤 군중 간에 정보가 제대로 소통되지 않으면 압사가 발생할 수 있다."

Q : 압사는 후진국형 사고로 불리는데.
A : "인도네시아 축구장에서만 압사사고가 발생했을까. 그렇지 않다. 영국 축구장, 미국의 공연장, 이스라엘의 종교행사장 등에서도 발생했다. 이번처럼 경사진 좁은 공간에 인파가 몰리면 선진국·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사고는 순간이다. 이번 사고는 압사 사고의 전형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뿐 아니라 작은 도시에서도 생길 수 있다."

Q : 사전에 막을 수 없었을까.
A : "행사 주체가 있으면 행정당국·소방·경찰·의료계 등이 모여 소요시간, 장소의 특성, 좌석 확보, 출입문 다양화, 병목 현상 최소화 등의 대책을 미리 짤 수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행사 주체가 없으면 이런 걸 미리 하기 어렵다."

Q : 사후 대처가 늦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A : "사고 장소에 워낙 많은 인파가 몰려 사고 후에 재난의료지원팀(DMAT)이 접근하는 데 1시간가량 걸렸다고 한다. 인파를 통제하기 쉽지 않다. 이런 점도 압사사고의 전형적 모습이다."

Q : 노란 펜스 같은 걸 설치해 진입을 통제하거나 통행을 원활하게 해야 하지 않았나.
A : "사람이 적을 때는 그런 게 먹히지만, 사람이 너무 많을 때는 오히려 사고를 불어올 수도 있다."

Q : 응급의료 대응에는 문제가 없었나.
A : "재난의료지원팀(DMAT) 15개 팀이 현장에 나갔다. 현장에 응급진료소를 설치했고, 중증도에 따라 환자를 분류했다. 환자나 사망자를 많은 병원에 고르게 분산했다."

Q : 압사 사고 피해는 어떤 유형이 많은가.
A : "가슴이 압박돼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숨을 쉬려면 가슴이 오르내려야 하는데, 눌리면 숨을 못 쉬어 외상성 질식사가 발생한다. 일부는 비장이나 간 같은 내부 장기가 파열되기도 한다."

Q : 이번 사고에 왜 여성 사망자가 많을까.(※현재 확인된 사망자 중 여성 97명, 남성 54명)
A : "주로 소아·여성·노인이 피해를 본다. 이들은 먼저 깔리고, 남성보다 오래 버티기 힘들다. 젊은 남성은 상대적으로 버티는 힘이 있을 수 있다."

Q : 중증환자가 적지 않다.
A : "이들 중 일부는 숨을 못 쉬는 동안 뇌가 손상됐을 가능성이 있어 후유증이 남지 않을까 걱정이다."

Q : 많은 사람이 정신적 충격이 크다.
A : "경증환자, 현장 목격자, 유족 등이 불안 장애, 공황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에 시달릴 위험이 크다. 경찰·소방관도 마찬가지다. 상주 사고 후에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다. 이들의 정신적 충격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

이경원 용인세브란스 응급의학과 교수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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