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인파 몰려 깔릴 뻔" 전날에도 이런 경고 올라왔었다
29일 발생한 최악의 압사 참사로 154명이 사망하고 132명(중상 36명, 경상 96명)이 다쳤다.(30일 오후 9시 기준). 국내 압사 사고 중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과도하게 몰린 인파’를 사고 원인으로 분석하면서도 “대규모 인파가 모일 것으로 예상한 행사인데도 안전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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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명소로 유명세…주말 하루 평균 10만 명 방문
참사가 발생한 장소는 이태원동 중심에 있는 해밀턴호텔 뒤편인 세계음식거리에서 이태원역 1번 출구가 있는 대로로 내려오는 좁은 골목길이다. 폭이 5m 내외로 성인 5~6명이 지나갈 수 있다. 번화가와 대로변을 잇는 내리막길 골목이라 세계음식거리와 이태원역을 오가는 사람들로 이 골목은 늘 붐빈다. 경찰에 따르면 이태원 지하철(녹사평역·이태원역)을 이용하는 하루 평균 승하차 인원은 2만 5000명~4만명 정도(2019~2021년 기준)다. 주말이면 3만명~5만 4000명 이상으로 늘어난다.
특히 핼러윈 데이가 낀 주말은 행사를 즐기려는 내·외국인이 몰리며 인산인해를 이룬다. 경찰에 따르면, 2019년 핼러윈 주말 하루 평균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과 이태원역에 내린 이용객은 약 8만 4000여명(금요일 7만 2000여명, 토요일 11만 6000여명, 일요일 6만 3000여명)에 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린 2021년 핼러윈 주말에도 하루 평균 5만 7000여명(금요일 4만 2000여명, 토요일 7만 5000여명, 일요일 5만 5000여명)이 방문했다. 통상 핼러윈 주말 이태원 파출소에 접수되는 사건·사고 신고 건수는 하루 110~120여건으로 10월 일 평균(40~60건)의 두 배 이상이다.
3년 만에 야외 '노 마스크' 행사라 사람 몰렸는데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3년 만에 열린 ‘야외 노마스크’ 핼러윈 행사라 주말 하루 평균 10만명 이상이 이태원을 찾았다. 관할 지자체와 경찰 등도 사전에 이런 구름 인파를 예상하고 대비책을 준비하긴 했지만 정작 인원이나 인파의 흐름을 통제하지 못했다. 서울시와 용산구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에, 경찰은 ‘치안’에 대책의 중심에 뒀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에 핼러윈 축제 참여 인파 관리를 담당하는 소관부서가 따로 있었던 건 아니다”라며“안전 관리는 경찰 담당”이라고 선을 그었다.
경찰은 지난 28일과 29일 각각 200여명의 경력을 이태원 일대에 배치했다. 그러나 대부분 교통 통제나 순찰, 마약류 단속 등에 투입된 인원이다. 익명을 요구한 30대 직장인은 “이태원 근처에 살아서 매년 핼러윈 축제를 구경하는데 과거엔 경찰관이 골목 등에 배치돼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분산시켰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코로나19로 축제를 찾는 사람이 줄자 안전 인력을 줄인 것 같은데,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만큼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참사 전날에도 대규모 인파가 몰리면서 곳곳에서 소동이 벌어졌지만, 인파의 흐름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28일 이태원을 다녀왔다는 김모(23·수원시)씨는 “금요일에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떠밀려 다녔다”며 “친구들과 ‘넘어지면 그대로 깔릴 것 같으니 조심하자’고 얘기해서 그런지 참사 소식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태원 골목마다 꽉 들어찬 인파 때문에 구조대는 현장 진입에 애를 먹었다.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 관계자는 “현장 진입 자체가 상당히 어려웠다”며 “겹쳐 쓰러진 인파의 무게 때문에 피해자들을 빼내는 것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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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일방통행만 유도했어도…”
이동호 인천대 교수(안전공학과)는 “안전요원만 배치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며 “안전 인력 배치가 힘들다면 골목에 설치된 폐쇄회로 TV(CCTV) 등을 통해 확인한 뒤 밀집된 인파를 분산시키는 방송을 하는 방법도 있다”며 아쉬워했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주최 측이 있는 행사는 3000명 이상은 안전 심의를 받아야 하지만 특별한 주최 측이 없는 행사다 보니 필터링이 안 된 거 같다”면서도 “매년 있는 행사인 점을 고려하면 안전대책을 미리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교수(소방방재학과)도 "안전요원이 배치돼 인파를 분배·조절하거나 일방통행을 유도했다면 참사 발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력이 현장에 제대로 배치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그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며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닌 것으로 파악되지만 (사고 당일) 서울 시내 여러 곳곳에 소요와 시위가 있어 경찰 병력이 분산됐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모란ㆍ허정원ㆍ이수민 기자 choi.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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