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빚은 핼러윈 데이…영어유치원 타고 MZ세대 명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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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족 축제에서 유래…美 대표 문화로
역사학자들은 기원전 500년 무렵 고대 켈트족이 새해(11월 1일)에 치르는 사윈(Samhain) 축제에서 핼러윈이 유래했다고 본다. 켈트족은 이날에 사후 세계와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악마나 망령이 세상에 나타날 수 있다고 여겼다. 이에 사람들은 사자의 혼을 달래기 위해 모닥불을 피우고 음식을 내놓는 한편 망령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변장을 했다고 한다.
이후 8세기 유럽에서 가톨릭 교회는 11월 1일을 '모든 성인 대축일(All Saint's Day)'로 지정했다. 그러면서 전날인 10월 31일 사윈 축제 전통을 이어갔고 '신성한(hallow)' '전날 밤(eve)'이라는 의미로 핼러윈으로 불리게 됐다.
중세 유럽에서 켈트족의 문화와 가톨릭 신앙이 혼합된 형태로 발전한 축제는 아일랜드 등 유럽의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여러 문화가 뒤섞인 채 오늘날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축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아이들이 가면을 쓰고 분장을 한 채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며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맛있는 걸 주지 않으면 골려 주겠다)”을 외치는 장면은 핼러윈을 대표하는 모습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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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유치원 붐에 국내 본격 확산…MZ세대 해방구로
국내에서 핼러윈이 본격적으로 퍼진 건 2000년대 초반 영어유치원 확산과 궤를 같이한다. 영어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미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가르치기 위한 방편으로 핼러윈을 활용하면서다. 당시 “가뜩이나 영어유치원 비용도 비싼데 핼러윈 분장과 소품까지 준비하려니 너무 부담스럽다”는 일부 부모들의 하소연도 있었다.
이후 핼러윈은 1020 세대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졌다.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번화가의 클럽을 중심으로 핼러윈 행사가 열리고 어학연수, ‘미드(미국 드라마)’ 등으로 미국 대중문화에 익숙해진 젊은 층이 핼러윈을 즐겼다. 외국인이 많고 클럽‧카페 문화가 확산한 이태원, 홍대는 핼러윈의 ‘성지’가 되며 매년 10월 말에는 핼러윈을 즐기려는 젊은이들로 불야성을 이뤘다.
여기에 유통가를 중심으로 핼러윈 마케팅이 불붙었고, 일부 연예인과 인플루언서(SNS 유명인사)들이 핼러윈 관련 콘텐트를 SNS에 올리는 등 관련 문화를 선도하며 젊은 층에 빼놓을 수 없는 기념일로 자리 잡은 것이다. SNS의 일반화와 함께 다양한 의상과 분장을 즐기며 뽐내는 이들도 늘었다.
특히 올해의 경우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유지되던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고 ‘노 마스크’로 행사를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젊은 층에겐 그간 억눌렀던 끼를 분출할 기회가 되기도 했다.
다만 기업의 상술, SNS의 결합으로 한국식 핼러윈이 지나치게 퇴폐적이고 자극적으로 변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영어유치원 등을 통해서 어릴 적부터 핼러윈을 접한 젊은 층 입장에서 핼러윈을 즐기는 건 자연스러운 데다 추석·설날과 같은 전통적인 명절보다 훨씬 더 재밌고 자유로운 날”이라며 “핼러윈에 익숙한 젊은 층과 이런 행사를 호재로 삼은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 및 SNS 일상화와 맞물려 핼러윈 축제가 과열화되고 더 자극적으로 변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설 교수는 “놀이 문화가 다양하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 19 완화와 맞물려 이번 핼러윈은 젊은이들 입장에서 탈출구로 여겨졌을 것”이라고도 짚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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