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식사까지 6분…사람 위로 사람 깔려, 골든타임 놓친 듯"

황수연, 어환희, 심정보, 황수빈 2022. 10. 3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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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태원 참사 관련, 전문가들은 외상성 질식사로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을 거로 추정했다. 현장 지휘를 담당한 노영선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30일 통화에서 사망 원인에 대해 “현장 영상을 보면 사람이 사람 위로 깔린 게 보인다”라며 “흉부 압박 때문에 호흡 곤란이 오면서 질식사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했다.

노 교수는 이 외에 “압력이 강한 경우 하반신 쪽을 압박해 조직이 눌리고 이로 인한 압박 증후군으로 다발성 장기부전(여러 장기가 동시에 기능이 저하되는 것)이 올 수 있다”라고 했다.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즉사할 수도 있는데, 통상 기계에 눌려 사망하는 경우가 그렇다고 한다. 노 교수는 “이번 사고에선 그런 징후를 보인 환자는 별로 없었을 거로 예상된다”라면서도 “전부 다 호흡곤란에 의해 사망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했다.

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턴 호텔 인근 골목길에서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30일 새벽 해밀턴 호텔 앞 도로가 구급차들로 빼곡하다. 우상조 기자

현장에 투입된 한 의사로부터 사망자 다수에서 복부 팽창이 확인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와 관련, 노 교수는 “압박 증후군 때문일 수 있다”라고 추정했다. 그는 “다리가 압박되면 혈액 순환이 안 되고 근육이 괴사한다”라며 “이때 심장에서 짜는 혈액이 밑으로 못 가고 복부와 얼굴 쪽으로 가면서 그럴 수 있다”라고 했다.

30일 새벽 이태원 현장서 환자들을 진료한 이시진 고려대 안암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구조 호흡 시 산소가 폐로만 가는 게 아니라 위로도 가기 때문에 그로 인해 팽창될 수 있다”라며 “압사로 장이나 위가 터져 공기가 새거나 심폐소생술 시 압박 위치가 잘못되고 장기가 손상되면서 공기가 샐 수 있다”라고도 했다. 다만 이 교수는 “질식에서 복부가 팽창하는 건 통상적이진 않다”라며 “복부 팽창과 사망 원인을 연결하긴 힘들다”고도 전했다.

대규모 인파가 한데 몰리면, 그 힘은 강철을 구부릴 수 있을 만큼 강하다고 알려졌다. 65㎏인 성인 100명이 한꺼번에 밀 때 그 압력은 18톤(t)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AP 통신은 “호흡 등 기본적인 신체기능이 불가능해지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서서 죽기도 하고, 넘어진 사람은 위에서 압력이 가해져 호흡이 불가능해진다”고 했다.

사고 지점의 경사가 대규모 인명 피해의 원인이 됐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30일 페이스북에 “경사진 곳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넘어지면 사람들이 쏟아진다. 엉키고 넘어져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게 되면 도미노처럼 하중은 누적돼 쌓인다. 그 누적된 하중이 인체를 누르면 흉부를 압박한다”며 “흉부가 압도적인 압력으로 눌리면 숨을 쉬어도 흉강이 팽창하지 못한다. 압박에 의한 질식”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영국 잉글랜드 서퍽대 방문 교수이자 군중 안전 문제 전문가인 G. 키스 스틸 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에 “이런 사고는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꽉 들어찬 상태에서 미는 것 같은 움직임이 있어 군중이 넘어질 때 일어난다. 도미노 효과와 같다”며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군중 전체가 하나처럼 넘어지고,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스틸 교수는 또 “폐가 팽창할 공간이 필요한데 군중 속 위아래의 압력은 숨쉬기 어렵게 만든다”라며 “사망 원인인 것으로 추정되는 압박성 또는 제한성 질식사까지 걸리는 시간은 6분”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또 “군중 속에서 벗어나려 고군분투할 때 팔다리를 다치고 의식을 잃을 수 있다”라며 “압박이 뇌로 가는 혈류를 제한하고 의식을 잃기까지 30초가 걸린다”라고도 했다.

심장이 정지된 상태에서는 전신 장기뿐 아니라 뇌로의 혈류 공급이 중단되기 때문에 심정지 후 5분 안에 산소 공급 등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노영선 교수는 “흉부를 압박하면 멈춘 심장이 뛰기도 하지만 혈액이 돌면서 뇌를 비롯한 신체 장기에 산소를 공급한다”라며 “산소가 빨리 공급돼야 생존율이 올라가고 뇌신경학적으로도 회복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현장에선 이 과정이 지연됐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노영선 교수는 “심폐소생술을 하려면 구조해 평평한 곳에 눕히고 해야 하는데 사상자들이 쌓이면서 구조하는 과정까지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린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했다. 이시진 교수도 “5~6분 이내 심폐 소생이 제공돼야 비가역적 손상을 피할 수 있다”며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빠르게 구출해 빠르게 심폐소생술을 했다면 자발 순환 회복(심장이 다시 뛰어 혈액이 도는 상태) 가능성이 있는데, 꽉 끼어있고 눌려 있다 보니 구출 작업이 늦어지며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턴 호텔 인근 골목길에서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30일 새벽 해밀턴 호텔 옆 골목길에서 경찰과 소방당국이 현장 조사를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심폐소생술을 할 땐 가슴 중앙(흉골)에 손바닥 두 개를 겹쳐 올려 분당 100회 속도로 3~5㎝ 눌러야 하지만, 가슴 압박이 빠를 경우 혈액이 심장으로 돌아올 시간을 주지 않아 속도와 깊이를 유의해야 한다고 한다. 노 교수는 “심폐소생술은 기관 삽관과 흉부 압박, 약물 치료 또 경우에 따라 자동심장충격기까지 포함한다”라며 “약물 치료는 병원에서만 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보통 흉부를 압박하고 정맥을 확보한 뒤 기도 삽관까지 할 수 있고, 병원으로 환자를 빨리 이송해 약물 치료를 해야 한다”라고 했다.

노 교수는 예방법 관련, “대중 집회 등에선 이런 사고에 대비하는 계획을 짜게 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 인파가 몰리는 장소를 피하라는 것 외에 특별히 예방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라고 했다.

황수연·어환희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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