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가족’ 정일우가 작정하고 변신했을 때 [일문일답]

김다은 2022. 10. 3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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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9아토엔터테인먼트, 제이원인터내셔널컴퍼니 제공

“망가지는 연기요? 걱정, 고민은 전혀 없었고 더 망가지고 싶었습니다.” 꽃미남 이미지로 대중에 친숙한 배우 정일우가 작정하고 180도 달라졌다.

정일우는 11월 2일 개봉을 앞둔 영화 ‘고속도로 가족’에서 고속도로 휴게소를 전전하며 노숙하는 가족의 가장 기우로 열연했다. 영화는 노숙가족 기우, 지숙(김슬기 분) 부부와 이들의 두 자녀가 가구점을 운영하는 영선(라미란 분), 도환(백현진 분) 가족을 만나며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는다. 정일우가 완성한 기우는 휴게소 방문객을 상대로 2만원을 동냥하며 가정을 이끄는 인물. 집, 돈도 없이 휴게소를 전전하며 살지만 낙천적이고 능글맞기까지 하다.

정일우는 7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자 15년 만의 한국 영화 복귀작으로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로 “오랜만의 스크린 나들이에 일반적인 캐릭터로는 돌아올 수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굳은 진심은 성공적인 파격 연기 변신을 이뤄냈다. 노숙인 연기를 위해 실제로도 머리, 수염을 두 달가량 건드리지도 않았다며 “굉장히 편했다. 눈 떠서 이 닦고 촬영장에 갔다. 휴게소에서 아무도 나를 못 알아봤다”고 웃음 지었다.

사진=9아토엔터테인먼트, 제이원인터내셔널컴퍼니 제공

-7년만 스크린 복귀작으로 ‘고속도로 가족’을 택한 이유는. “배우라면 누구나 욕심낼 만한 캐릭터였다. 이 정도 캐릭터는 앞으로도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이야기가 주는 힘도 있었고 나와 다른 축을 이루는 라미란 선배가 연기한 영선이 중심을 이뤄줬다. 보석 같은 작품이다.”

-한국영화로는 15년만인데. “일반적인 캐릭터로 복귀하고 싶지는 않았다. 드라마에서 하던 캐릭터를 영화에서 그대로 한다는 건 배우로서 아닌 것 같았다. 30대 중반이기에 앞으로 배우로서 더 롱런하고 발전하려면 계속 안주하지 않고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좋은 타이밍에 이런 캐릭터를 만났다.”

-시나리오 첫인상은 어땠나. “1시간 만에 대본을 다 읽고 출연을 바로 결정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정신과 의사도 만나고 아픔이 있는 사람들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정신적 아픔은 한 가지 형태로 발현되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드러난다는 걸 알았다.”

사진=9아토엔터테인먼트, 제이원인터내셔널컴퍼니 제공

-이 작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도 갔는데. “내 작품으로 가니까 굉장히 뿌듯했다. 2007년에 ‘내사랑’으로 가본 이후 15년 만이다. 감회가 새로웠고 배우로서 행복했다.”

-기우 캐릭터에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 “정신적 아픔은 하나의 병으로 정의할 수 없었다. 기우의 치유하기 어려운 아픔을 유일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이들은 가족이다. 가족과 떨어지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지고 아픔이 몰려온다. 그런 설정이 있어서 캐릭터가 납득이 됐다. 초반에는 기우의 조증을 더 보여주려 했다. 앞에서 행복해 보여야 나중에 아픔이 보였을 때 대비가 될 것 같았다. 감정의 밸런스에 가장 중점을 두고 연기했다.” -‘꽃미남 이미지’가 캐릭터에 방해될까 염려한 적은 없었나. “스스로 잘생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이미지가 고착된 건 맞다. 재벌집 아들, 꽃미남 역할을 많이 해서 그렇다. 특히 ‘지붕뚫고 하이킥’ 윤호가 컸다. 그 모든 작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모래성처럼 무너뜨리고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캐릭터로 다른 생각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사진=9아토엔터테인먼트, 제이원인터내셔널컴퍼니 제공

-망가지는 연기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더 망가지고 싶었다. 감독이 초반에는 2만원씩 동냥하는 모습이 있기에 조금 멀쩡히 나오면 좋겠다고 했다. 경찰서에 가고, 지숙에게 이별을 선고받는 장면 이후에는 확 간다.”

-‘고속도로 가족’을 통해 배우 정일우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는데. “작품마다 성장했다. 대중이 가지고 있는 정일우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다. 어떤 반응일까 궁금했다. 보는 이들이 이런 캐릭터에 도전한 용기에 내가 나오는지도 몰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스스로도 만족했고 발전했구나 알게 됐다.”

-노숙자 분장 아이디어도 직접 냈나. “노숙자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도 보고 직접 용산역도 가보는 등 취재하며 분장팀에 아이디어를 냈다. 머리, 수염을 두 달가량 건드리지도 않았다. 굉장히 편했다. 눈 떠서 이 닦고 촬영장에 갔다. 휴게소에서 아무도 나를 못 알아봤다.”

사진=9아토엔터테인먼트, 제이원인터내셔널컴퍼니 제공

-관객에게 기우라는 인물을 어떻게 납득시키려고 했나. “일반적인 시선으로 볼 때는 납득이 안 되는 인물이긴 하다. 다만 그가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사회에서 버림받았기에 이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기에 기우 또한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 살아간다고 여겼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3번 정도 갔는데 그곳에 있는 노숙인들에게도 희망과 꿈은 있더라. 만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살리고 싶었다. 정말 행복해 보여야 관객들이 반감을 덜 가지지 않을까 싶었다. 또 대체복무를 요양원에서 했는데 90%가 치매 환자였다. 매일 이들을 돌보고 같이 게임도 하면서 관찰한 것이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됐다.”

-촬영 중 몸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그동안 고생하는 작품을 많이 했다. 안 힘들 게 촬영한 작품은 없었다. 육체적으로 에너지를 쏟는 건 힘들다고 여기지 않는다. 도대체 내 감정선이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을지 테스트하는 작품이었다. 표출할 수 있는 감정의 끝을 찾고 싶었다.”

-아역 배우들과의 호흡도 좋았는데. “실제로 결혼을 안 했고 가정도 없어서 아이들과 어떻게 친해져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촬영 두 달 전부터 작업실에서 같이 과자도 먹고 수다도 떨며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텐트를 만들어 놀기도 했다. 친구 같은 존재가 되게끔 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촬영 현장에서 그 친구들이 하는 걸 그대로 받아주기만 하면 좋은 앙상블이 나왔다.”

사진=9아토엔터테인먼트, 제이원인터내셔널컴퍼니 제공

-지숙이 제발 가달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기우의 복합적인 감정이 드러났는데. “가장 중요한 신 중 하나다. 그 장면에는 다양한 감정이 담겨있다. 설렘,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 충격, 분노, 좌절, 무너짐이 있다. 해당 신을 찍는 날 종일 힘들었다. 밥도 안 먹었다. 감정이 깨지면 연기하기 어려울 것 같다 느꼈다. 동선 리허설만 해보고 바로 촬영했다. 기억이 안 날 정도다.” -실제 이루고 싶은 가정에 관한 생각도 했을 것 같은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결혼을 하고 싶다. 아이들을 푸시하는 부모가 되고 싶지는 않다. 생각은 다들 다르겠지만 우리나라는 너무 어렸을 때부터 치열하게 산다.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자연,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게 하고 싶다.”

-먹는 연기도 인상적이었는데. “슬기가 하정우 선배를 보는 것 같다며 먹방 신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했다. 기우에게 여러 가지 키워드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허기짐이다. 행복할 때 먹는 모습과 혼자 떨어져 있을 때 공허함을 대신 채우기 위해 먹는 모습이 있다. 올라올 것처럼 허겁지겁 먹는다. 힘들 때 소주 마시는 느낌으로 표현했다. 떡볶이, 어묵을 정신없이 먹는 장면을 찍다가 목 뒤를 찔러 구멍이 났다. 병원에서 소독하고 와서 영화를 다시 찍기도 했다.”

사진=9아토엔터테인먼트, 제이원인터내셔널컴퍼니 제공

-엔딩은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마지막에 비 오는 장면은 그동안 가족들이 가지고 있던 아픔이 씻겨 나가는 것이자 기우의 눈물일 수도 있다.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세 번 봤는데 볼 때마다 우는 포인트가 달랐다.”

-큰 연기 변신이었기에 다음 캐릭터에 대한 부담감도 있을 것 같다. “이런 모습을 한 번 보여줬기에 다음부터는 다양한 캐릭터가 올 것이다. 찌질한 역할, 사이코패스, 악역도 해보고 싶다. 과감하게 다양한 도전을 하고 싶다. 연극, 드라마도 하고 싶고 계속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연기하고 싶다.”

-차기작은. “드라마 위주로 들어오고 있고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은 있다. ‘고속도로 가족’이 개봉하면 들어오는 배역이 조금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김다은 기자 dagol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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