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어디서 찾나요"…신속한 시신 분산에 애끓는 유족들
30일 오전 9시, 이태원에 놀러 갔다 온다는 연락을 받은 뒤 소식이 끊긴 딸을 찾아나선 정모(63)씨는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새벽 내내 서울시내 장례식장을 전전한 끝에 한때 사망자가 가장 많이 이송됐다는 병원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장례식장 안내데스크에서 딸의 이름이 없다는 걸 확인한 정씨는 “우리 딸을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라며 울먹였다. 정씨는 이내 딸을 찾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전날 발생한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인 순천향대병원에는 이른 아침부터 실종자를 찾는 유가족의 문의와 방문이 줄을 이었다. 장례식장 안내데스크에는 딸과 아들, 친구를 찾는 희생자 유가족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사망통보를 받고도 시신의 소재를 찾지 못한 유가족들의 마음은 이날 아침 내내 슬픔과 분노 사이에서 요동쳤다. 순천향대와 임시 안치소에 몰려든 시신은 30일 오전 중 39곳의 병원과 장례식장으로 신속하게 분산 배치됐다. 79구의 시신이 이 병원을 거쳐서 이송됐으며 이날 오전 11시 기준으로 6구의 시신만이 순천향대병원에 남았다. 시신보존을 위한 조치라지만 그로 인해 사망을 확인하고 시신을 수습해야 하는 유족들의 곤란은 커졌다.
안연선(55·여)씨도 이날 오전 10시 20분쯤 병원에 도착했지만 딸 서모(20)씨를 찾을 수 없었다.안씨는 “딸이 어제 이태원에 놀러 간다고 연락이 와서 그래서 5만원을 보내줬다. 그게 마지막 연락이었다”라며 “임시 안치소에서 딸의 남자친구가 숨진 딸의 신원을 확인했는데, 그 뒤로 시신이 어디로 옮겨졌는지 연락을 못 받아 밤새 서울시내 장례식장을 일일이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안씨는 현장을 지키던 경찰관에게 “안치소에서 딸 얼굴 확인하려고 했는데, 못 보게 막았다. 처음부터 안내만 잘 했으면 우리 딸을 잃어버릴 일도 없다”고 항의했다.
여자 친구를 찾으러 온 20대 남성 A씨는 “밤사이 실종 신고를 두 번이나 했는데, 경찰이든 소방이든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서울 시내 병원을 다 돌았는데 여자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 외에도 이날 오전 사이 10명 넘는 이들이 병원을 찾아 가족과 지인의 이름을 물어보며 수소문하다 돌아갔다.
이날 오전 8시 40분쯤 경기 고양 동국대일산병원 장례식장에 이태원 참사 사망자 가족으로 추정되는 이들 4명이 들어왔다. 이들은 “몸에 표식이 있는데 찾아달라”며 애타는 목소리로 사망자를 찾아 헤맸지만 병원 관계자는 “아직 신원 확인 중이라 당장은 확인이 어렵다”고 답했다. 2시간 뒤에는 한 여성이 오열을 하며 남성의 부축을 받은 채 영결식장으로 들어갔고 5분 뒤에는 외국인 여성 2명이 장례식장 앞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이탈리아에서 두 달 전에 한국으로 왔다는 외국인 여성은 “(한국인) 남자친구가 있는데 경찰 연락을 받고 왔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오열했다.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은 외국인 유족과 지인들의 곤란은 더 컸다. 순천향대병원에 안치된 6명 중 B씨는 이란 국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병원을 찾은 A씨의 지인은 신원을 확인한 뒤 “밤사이 사고 소식을 듣고 실종 신고도 했는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해 병원에 다니다가 친구가 (순천향대병원에)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스리랑카 국적의 C씨는 병원을 찾아 “친구가 어젯밤 이태원에 다녀간 이후 전화가 안 된다”라며 “친구 이름은 니낫이다. 한국에 온 지 3년 됐다, 친구를 꼭 좀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주한 미국대사관과 주한 필리핀대사관에서도 파견 나온 직원들이 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각각 자국민의 시신이 안치됐는지를 확인하고 가기도 했다.
전날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한복판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로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151명이다. 사망자들은 총 39개 병원에 안치됐다. 서울 내 24개 병원에 75명이, 경기도 내 15개 병원에 76명이다. 동국대일산병원에는 총 14구의 시신이 안치됐다. 이날 오전 11시 38분 기준 일산 동부경찰서 관계자는 “현재 시신 14구의 1차 감식이 완료됐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 2차 감식에 들어갔다”며 “외국인과 미성년자가 있는 확인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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