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질린 군중, 한곳 몰렸다"…반복되는 악몽, 압사 사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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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최소 151명 압사…국내외 사례 주목
10월 말 핼러윈(마녀·유령 등 복장을 하는 영미권 전통 행사)을 앞두고 서울 이태원에서 최소 151명이 숨지는 대형 압사 참사가 나면서 국내외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최소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는 축제와 공연, 종교 행사 등에서 주로 사고가 났다. 사고를 예감한 군중이 공포를 느끼면서 피해가 커졌고, 당국이 안전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국내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는 2005년 10월 3일 경북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열린 MBC 가요콘서트가 대표적이다. 당시 리허설을 보기 위해 출입구에 5000여 명이 몰리면서 11명이 압사하고 110명이 다쳤다. 총 4개 출입구 중 직3문 출입구가 예정보다 일찍 열렸고, 사람들이 동시에 입장하면서 앞쪽에 있던 이들이 연쇄적으로 넘어졌다. 유명 연예인 출연으로 관객이 몰릴 것이 예상됐으나 입장 시간을 분배하는 등 안전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게 사고 원인으로 지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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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키즈 온 더 블럭’ 내한 공연…1명 사망, 60명 부상
앞서 전국적으로 파장이 컸던 압사 사고는 1992년 2월 18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미국 팝그룹 ‘뉴 키즈 온 더 블럭’의 첫 내한 공연이었다. 이때 1만여 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무대 앞쪽에 앉아 있던 관객이 깔려 한 명이 숨지고, 60명이 크게 다쳤다.
57년 전 전국체전에서도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1965년 제46회 전국체육대회 첫날인 10월 5일 새벽 5시40분쯤 광주광역시 광천동 종합경기장에 입장하려던 관중이 경기장 정문 앞에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13명이 숨지고, 150여 명이 다쳤다.
이날 종합경기장은 오전 6시부터 문을 열기로 예정됐는데 이른 새벽부터 관중이 몰려들자 주최 측이 오전 2시쯤 문을 열기 시작, 사고가 나기 직전까지 수용 인원 약 2만2000명(경찰 추산)을 입장시킨 다음 오전 5시쯤 문을 닫아버렸다. 오전 6시에 문을 열 줄 알고 뒤늦게 몰려온 10만여 관중은 경기장 주변을 가득 메웠고, 이 중 3만여 명이 굳게 잠긴 정문을 부수고 들어가려다 사고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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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교에서도 압사사고가
초등학교에서 압사 사고가 나기도 했다. 1980년 2월 11일 부산 용호초등학교에서 조회에 참석하기 위해 4층 교실에서 1·2·4학년 학생 1400여 명이 한꺼번에 운동장으로 나가려다 1층 계단에서 100여 명이 잇달아 쓰러져 5명이 압사하고, 2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가 난 계단은 너비 1.8m에 계단 15개, 경사 40도로 4명이 나란히 내려올 수 있는 규모였다. 그러나 강추위로 휴교한 뒤 개학한 이날 부산 지역 기온이 영하 2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춥자 학생들이 교실에 모여 있다 조회 벨 소리를 듣고 한꺼번에 계단으로 몰려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스포츠경기, 종교행사서 참사 잇따라
해외에선 이달 초 발생한 인도네시아 축구장 압사 사고가 대표적이다. 지난 1일 인도네시아 동자바주 말랑 리젠시 칸주루한 축구장에선 관객이 일순간에 출구로 몰리면서 뒤엉켜 132명이 숨졌다. 당시 홈팀이 패하자 흥분한 관중들이 경기장으로 뛰어들었고, 경찰이 최루탄을 쏘자 장내가 일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결국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전 세계 이슬람 신도 최대 종교 행사인 메카 성지 순례(하지)에서도 끔찍한 사고가 이어졌다. 2015년 9월 24일 사우디아라비아 대도시이자 이슬람 성지인 메카를 찾은 순례자들이 임시 야영장이 있는 미나시와 메카를 잇는 터널을 지나던 중 질식·압사해 최소 1426명이 숨졌다. 당시 사고는 길이 457m, 폭 18m 터널 안에 설치된 통풍 시설 고장으로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자 순례자들이 서로 먼저 터널을 빠져나가려다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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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물 축제 중 400명 압사…“다리 무너지는 줄”
캄보디아에서는 물 축제 중 발생한 압사 사고로 400명 가까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2010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코픽섬에서 3일간 진행된 물 축제 ‘본 옴 뚝(Bon Om Touk)’ 마지막 날인 11월 22일 보트 경기를 보려고 몰려든 수천 명이 경기 직후 섬과 육지를 잇는 좁은 다리 위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최소 349명, 최대 395명이 숨졌다. 당시 캄보디아 정부는 “변을 당한 관람객 상당수가 지방에서 물 축제를 보러 수도 프놈펜에 온 사람이었고, 다리가 흔들리자 무너지는 줄 알고 현장을 앞다퉈 빠져나가려 했다”고 설명했다.
인도에서는 종교 축제 중 압사 사고가 났다. 2013년 10월 13일 인도 중부 라탄가르 힌두사원으로 향하는 다리에서 사고가 발생해 최소 109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다쳤다. 이날 신도 2만5000여 명이 힌두교 축제가 열리는 힌두사원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던 중이었다. 이때 트랙터와 다리가 충돌하는 사고를 본 뒤 서로 먼저 다리를 빠져나가려다 사고가 발생했다. 일부 신도는 뒤따라오던 신도 발에 밟혀 숨졌고, 일부 신도는 다리가 놓인 신드강으로 뛰어들거나 떨어져 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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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종교 집회서 44명 사망…“시신 레고 블록처럼 쌓여”
지난해 4월 30일 이스라엘에서는 수만 명이 운집한 유대교 축제 중 압사 사고가 발생해 44명이 숨지고, 150여 명이 다쳤다. 이날 유대교 전통 축제인 ‘라그바오메르’를 즐기기 위해 당국이 허용한 1만 명의 최소 3배인 3만 명가량이 모였다. 당시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집단 면역에 근접한 이스라엘 당국이 통제 해제 후 처음으로 허가한 종교 집회였다.
경찰은 축제 참가자 일부가 이동하던 중 계단에서 수십 명이 차례로 넘어지면서 압사 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봤다.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참사 현장 생존자들은 “축제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숨을 거의 쉴 수 없었는데 뼈가 부러지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구조대들은 ‘레고 블록’처럼 쌓인 시신들을 수습했다”고 전했다.
한편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앞두고 최소 수만 명의 인파가 몰리면서 압사 사고가 났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30일 오전 9시 현재 이태원 사고 사망자는 151명, 부상자는 82명이다.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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