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NOW] 반도체 이어 바이오도… 세계는 연이은 '파운드리' 전쟁
반도체 업계에서 CMO 통칭하는 '파운드리'
바이오에서는 이를 넘어 완전한 초고속 미생물 공장
美 정부, 바이오 행정명령도 바이오 파운드리 타깃
민간에서도 '깅코 바이오웍스' 세계 최대 민간 파운드리 보유
우리는 이제 태동… 7500억 공공 파운드리 사업, 예타 좌절
[아시아경제 이춘희 기자] "우리나라 바이오 시장 점유율이 2% 정도밖에 안 되는데 향후 10년 이내에 약 두 자릿수로 높일 수 있도록 하겠다. 이를 위해 백신이나 신약을 신속히 설계하고 만들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국가 바이오 파운드리다."(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지난 27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는 '바이오 파운드리(Biofoundry)'라는 생소한 어휘가 언급됐습니다. 이날 이종호 과기부 장관은 "백신이나 신약을 신속히 설계하고 만들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며 "반도체 파운드리가 있는 것처럼 바이오 분야에도 국가 바이오 파운드리를 구축하겠다"고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업계에서는 위탁생산(CMO) 업체를 부르는 용어입니다. 세계 각국 정부와 산업계가 반도체 생산 역량 확보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면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용어가 됐습니다. 이 장관이 언급한 것처럼 바이오 파운드리는 기본적으로 반도체 파운드리와 유사한 개념이면서도 조금은 다른 양상을 띱니다.
바이오 파운드리는 쉽게 말하면 '미생물을 공장처럼 사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 파운드리의 원천은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입니다. 합성생물학은 생물학에 공학적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생명 정보, 유전자 등 생물학적 구성요소를 이용해 마치 조립하듯이 생명체를 설계할 수 있게 합니다.
바이오 파운드리는 합성생물학에 인공지능(AI), 로봇 등을 적용함으로써 바이오 연구·개발(R&D) 속도를 높이고 실험과 제조 공정을 고속화·자동화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입니다. 새로운 바이오 시스템 제작을 위한 설계(design)부터 이어지는 제작(Build)-시험(Test)-학습(Learn)의 전 과정을 자동화해 고속·고처리량으로 구동하는 시스템입니다.
통상의 반도체 생산이 설계(팹리스)-제조(파운드리)-테스트와 패키징(OSAT) 등으로 세분돼 이뤄지는 것과는 또 다르게 바이오 파운드리 한 곳에서 모든 과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구성됩니다. 이로써 바이오 R&D에 필요한 반복 노동 업무를 자동화하고 처리량은 극대화해 기존 기술보다 훨씬 큰 규모의 R&D를 현실화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해외는 이미 공공 바이오 파운드리 설립… 민간 파운드리까지도
이날 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바이오 파운드리를) 기업이 해야지, 정부에서 공무원이 운영해서 효과가 있겠어요?"라며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일단 국가에서 마중물로 준비하고 그다음에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바이오 파운드리 산업 선점을 위한 정부 차원에서의 노력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바이오 파운드리의 중요성을 이미 예전부터 강조해 오고 있습니다. 미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합성생물학 연구가 시작됐고, 2006년 국립과학재단(NSF), 2013년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합성생물학 및 바이오 파운드리 지원이 이미 본격화된 상태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서명한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National Biotechnology and Bio manufacturing Initiative)'의 타깃 역시 결과적으로는 바이오 파운드리 등 새로운 개념의 바이오 제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는 이미 산업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회사도 있습니다. 바로 깅코 바이오웍스(Ginko Bioworks) 입니다. 2008년 설립된 깅코는 이후 자이머젠(Zymergen)의 바이오 파운드리 기업을 인수하면서 이를 토대로 모더나와 함께 코로나19 백신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모더나의 신속한 백신 개발 성공에는 깅코의 파운드리가 일익을 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바이오 파운드리가 공공 바이오 파운드리인 데 비해 깅코는 자체적으로 세계 최대 수준의 민간 바이오 파운드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과 함께 국립보건원(NIH)에 설립한 고위험 바이오메디컬 연구개발기관인 의료고등연구계획국(ARPA-H)의 초대 소장으로 르네 베그진(Renee Wegrzyn) 깅코 부사장을 임명한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서구권에서는 영국, 덴마크, 캐나다가, 아시아에서는 중국, 일본 등이 바이오 파운드리 육성에 나서고 있습니다. 중국은 선전에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국가 바이오 파운드리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공 파운드리가 국내에서도 설립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먼 상태입니다. 7500억원 규모로 준비 중인 공공 바이오 파운드리가 최근 수요 분석 미흡과 자체 기술 역량 부족 등을 이유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무산 상태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업계에서는 커지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장관이 이날 윤 대통령에게 공공 바이오 파운드리를 "정부에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서 할 수 있다"고 설명한 만큼 정부가 다시금 강한 의지를 보인다면 한국형 공공 바이오 파운드리가 다시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국내에서는 CJ제일제당이 균주 개발 및 생산 공정 자동화를 위한 바이오 파운드리 시설을 도입하고 최근 사업화한 바 있습니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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