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혜' 거절하고 최전선으로…미군 전설 된 그는 엘비스였다 [뉴스원샷]

이철재 2022. 10. 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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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외교안보팀장의 픽 : BTS와 엘비스

1958년 미국 육군에 입대한 엘비스 프레슬리가 서독 프리트베르크 주둔지에서 M48 탱크 위에 올라타 있다. 위키피디아


그동안 전국민, 아니 전 세계적 관심을 받았던 K-팝 보이밴드 방탄소년단(BTS)의 군입대 여부가 결판을 지었다. 이들의 소속사인 하이브가 지난 17일 공시를 통해 BTS에서 맏이인 진(본명 김석진ㆍ30)이 입영 연기 취소를 신청하고 병무청의 절차에 따라 입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이브는 “다른 멤버들도 순차적으로 병역을 이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진은 지난 28일 글로벌 팬 커뮤니티 위버스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①2020년 2월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솔 : 7’ 활동 직후 멤버들이 순차적으로 입대할 계획이었다.
②그런데 2020년 8월 디지털 싱글 ‘다이너마이트’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 1위를 차지한 뒤 상황이 달라졌다.
③진은 계속 입대하려고 했지만, ‘다이너마이트’‘버터’‘퍼미션 투 댄스’의 잇따른 히트, 제64회 그래미 어워즈 초청,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홍보 활동 등 때문에 늦어졌다.

진은 “이것(위 사정들) 때문에 추위를 싫어하지만 겨울에 입대를 하게 됐다”며 “한국 내에서는 이 문제(병역)로 우리가 욕도 많이 먹었다. 억울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고 말했다.

APㆍAFPㆍ로이터 등 주요 통신사는 하이브의 공시를 속보로 전했다. BTS의 인기가 그만큼 국제적이란 의미다.

NBC의 간판 뉴스쇼인 투데이는 지난 22일 BTS의 입대 소식을 다루면서 “이 정도 존재감을 가진 대중 가수가 군대에 간 경우는 엘비스 프레슬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로큰롤로 젊은 층을 사로잡은 엘비스는 1956년 1월 27일 첫 싱글 ‘하트브레이크 호텔’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 무렵 또래의 미국 20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징병대상이 됐다. 당시 미국은 징병제 국가였고 73년이 돼서야 징병제를 폐지했다.

엘비스는 57년 1월 4일 징병 신체검사를 받는다. 그리고 22번째 생일이었던 1월 8일 1-A 등급(1급)이라는 통보를 받는다. 12월 16일 징집영장을 받았다.

사실 그는 입대를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매니저는 엘비스에게 병역을 마치면 더 큰 스타가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엘비스는 저속하게 몸을 흔들며 야한 가사를 읊으면서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고 기성세대로부터 미움을 샀던 터였다. 그래서 성실하게 군에서 생활하면 나쁜 이미지가 줄어들 것으로 엘비스의 매니저가 계산했다.

엘비스가 징집대상에 오르자 해군은 그가 그가 살았던 멤피스 출신과 친한 친구들을 모아 ‘엘비스 프레슬리 중대’를 만들고, 개인 숙소도 주겠다고 제안했다. 육군은 해외 순회공연을 주선하겠다고 했다. 미 국방부는 특별 복무(Special Services)를 신청하라고 권유했다. 특별 복무는 6주간 기본교육을 받고 복무기간 동안 군 위문 공연을 몇 차례 하는 조건으로 병역을 대신하는 제도였다.

그런데 엘비스는 이 모두를 뿌리쳤다. 그의 매니저는 “(특별 대우를 받아들였다면) 수백만 미국 젊은이들이 화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미 계약을 맺은 영화 촬영 때문에 입대일을 58년 1월 20일에서 3월 24일로 연기해달라고 요청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평범한 젊은이에 불과하다. 병역의 의무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 특별한 대우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58년 3월 24일 입대했다. 훈련소인 텍사스주 포트 후드에서 그는 주특기 번호 133.60을 받는다. 이는 전차를 운전하고, 장전하고, 사격하는 기갑병이었다.

훈련을 받던 중 그의 어머니가 별세했다. 그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집에 가고 싶다. 훈련이 싫다’고 적었다.

엘비스는 제3 기갑사단 제32연대 제1 중(中)전차대대로의 배치를 명받는다. 이 부대의 주둔지는 서독(지금의 독일) 프리트베르크였다. 서독은 5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과 함께 냉전의 최전선이었다. 소련과 동구권과의 전쟁 위험이 상존하던 곳이었다.

58년 10월 1일 수송선을 타고 그가 서독에 도착하자 부두엔 수많은 팬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보직은 처음엔 중대장 운전병이었는데 그가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래서 정보병이 됐다. 지프를 운전하며 정찰ㆍ수색을 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2005년 미국 문서보관소가 공개한 당시 미 육군 문서에 따르면 “엘비스를 우러르는 많은 청소년이 훗날 군 생활에서도 그의 본을 따를 것”이라 기록할 정도로 그는 성실하게 복무했다. 그리고 60년 3월 2일 엘비스는 서독을 떠나는 항공기에 몸을 실었고, 사흘 후 제대했다.

그는 제대 후 한 달이 조금 지난 4월 8일 4집인 ‘엘비스 이스 백(Elvis is Backㆍ엘비스가 돌아왔다)!’으로 다시 차트를 달궜다. 그리고 로큰롤의 황제에 등극했다.

진과 BTS 다른 멤버들이 건강히 제대하길 기원한다. 군에서 동년배와 함께 흘린 그들의 땀은 제대 후 엘비스처럼 더 큰 인기로 되돌려 받을 것이라 믿는다.

이철재 외교안보팀장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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