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이 말에 정신 번쩍…日 뒤집은 '딸기찹쌀떡' 원조 그 [백년가게]
■ 김현예의 백년가게
「 시간의 힘, 믿으십니까. 백년을 목표로 달려가는 가게, 혹은 이미 백년을 넘어서 수백 년의 역사를 쌓은 곳들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요. 일본 동네 곳곳에 숨어있는 ‘백년가게’를 찾아가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상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지난 28일 새벽 5시 40분. 여명이 깔리는 일본 도쿄(東京) 신주쿠(新宿) 아케보노바시(曙橋) 상점가에서 순백색 조리복을 입은 백발의 남자가 분주히 가게를 오갔다. 오스미 카즈하라(大角和平·71)다. 올해로 110년 된 일본 과자(和菓子)집 오스미 타마야(大角玉屋)의 3대째 사장이다. 그의 가게는 37년 전 일본에서 처음으로 딸기 찹쌀떡을 내놓은 원조다. 딸기 찹쌀떡 인기에 일본서 제일 땅값 비싸다는 긴자(銀座)와 도쿄역 등 3곳에 추가로 가게를 낼 정도가 됐다. 대성공을 이뤘지만 지금도 한결같이 해가 뜨기도 전에 가게에 나가 있다. 지난 4일 오스미 사장을 만났을 때, 정작 그는 “성공은 우연일 뿐”이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우연의 성공’이라는 딸기 찹쌀떡
그의 손에선 단15초면 딸기 찹쌀떡 하나가 순식간에 빚어진다. 달인급이다. 한입 베어 물면 쫀득한 찹쌀떡의 식감에 달콤한 팥소와 딸기향이 차례차례 입안에 번진다. 찹쌀떡에 박혀있는 통팥 알갱이까지 씹는 맛을 배로 불린다. 개당 324엔(약 3200원)이란 가격이 부담스럽지만 가을 기준 하루 1000개 정도만 만들어지는 터라 순식간에 팔려나간다. 오후 대여섯시가 되면 본점 매장에서도 살 수 없을 정도다.
화과자집 아들로 태어났으니 일본 과자에 물릴만도 한데, 그는 “과자가 정말 좋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코흘리개 시절엔 푸딩을 혼자 만들어보겠다고 한천(우뭇가사리 따위를 끓여서 식혀 만든 끈끈한 물)에 우유, 설탕을 섞어 굽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명 과자집에 들어갔다. ‘수련’을 위해서였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으니 새벽 3시에 가게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어깨너머로 배우는 수밖에 없었기에, 눈으로 본 걸 몸에 익히려면 그 방법밖엔 없었다”고 말했다.
‘안 팔리는 집’에서 태어난 인기 상품
약 5년의 수련을 마치고 부친 가게로 돌아왔지만, 그새 가게는 ‘안 팔리는 집’이 돼 있었다. 하루 매출 3000엔에 불과할 때도 있었다. ‘간판 상품’이라고 내놓을 만한 것도 없었다.
팔팔한 20대였던 그는 굴하지 않았다. 일단, 문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가게가 낡아서 보수가 시급했다. 조금이라도 돈을 벌면 벽지를 도배하고, 페인트를 새로 칠했다. 그러면서 싸게 파는 전략을 고수했다. “다른 집보다 값싸면 손님이 사 먹어보고, 맛을 알아주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손님이 없는 때는 새 제품 개발 공부를 했다.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화과자집 일이 끝나면 케이크집에 가서 일을 돕는 식으로 양과자 제조법을 익혔다. 그러던 1985년 초, 우연히 제철 딸기를 이용한 조각 케이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서양식 과자집 간판 상품이었는데, 단순하지만 맛있어 인기가 많았다.
딸기 케이크에 영감을 받은 그는 생딸기와 어울리는 일본 과자가 없을까 궁리에 들어갔다. 생딸기는 금세 상해버리는 단점이 있는데, 굳기 전에 바로 먹어야 하는 찹쌀떡이 떠올랐다. 다음은 팥. 향이 강한 딸기에 밀리지 않는 팥이 필요했다. 딸기는 달기만 해선 안 됐다. 새콤한 맛이 나면서 팥소와 잘 어울리는 것으로 골랐다. 얼마나 시제품을 만들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가 되자 직원들과 시식회를 했다. 그는 “처음엔 생딸기를 넣은 찹쌀떡이라니 이상하다는 반응이었지만, ‘먹어보니 맛있다’는 평에 힘을 얻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리고 얼마 뒤인 그해 2월 6일. 딱 10개를 만들어 매장에 내놨다. 30분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다음 날엔 20개, 그 뒤엔 60개로 늘렸는데, 매번 완판됐다. 당시로선 생과일을 넣은 ‘희한한 떡’이었다. 점차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결국엔 유행이 됐다. “처음부터 ‘이건 되겠다’ 싶은 건 아니었고요, 여러 가지 아이디어 중 하나로 우연히 된 것일 뿐이랍니다.”
골프나 낚시 취미 없고, TV도 안 보지만 행복해
지금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3시 30분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한 시간 뒤엔 가게에 도착해 찹쌀을 찌고 팥을 삶고, 찹쌀떡을 만든다. 저녁 7시께 가게를 정리하고, 저녁 먹고 앉으면 밤 9시, 그리고 그는 잠이 든다. TV를 켜기도 하지만 졸음에 드라마를 끝까지 본 적이 없다. 한 치 오차 없는 일상이 지겨울 법한데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즐겁기 때문이다.
“과자를 먹을 때 슬퍼서 우는 사람은 없잖아요. 과자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니까요. 그래서 만드는 사람도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드는 사람이 울면서 만들면 맛있는 상품이 안 나옵니다. 매일매일 만드는 사람도 행복해야 맛있는 과자가 만들어지거든요.”
“다음은 뭐에요?”…무서운 손님의 말
시대에 따라 사람들 입맛은 변하기 마련. 화과자점은 일본서도 줄어드는 추세다. 그가 어릴 때만 해도 한 동네에 대여섯 곳의 화과자점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의 가게가 유일하다. 빈자리를 쿠키나 케이크 같은 서양식 과자점이 차지했다. 이 때문에 “본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시대 변화에 따라가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흰 팥과 바나나를 넣은 ‘호랑이 씨의 바나나’처럼 “재료는 화과자지만 겉모양은 서양식으로 변형한 제품”을 그의 가게가 내놓는 이유기도 하다.
두시간에 걸친 이야기를 듣고 나오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시작할 때 가진 건 건강한 신체밖엔 없었으니 사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하루하루 쌓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성공이 뭐 특별한 게 있겠어요? 조금씩 조금씩 성실하게, 착실하게, 매일매일을 쌓아간다면 누구든 다 성공한다고 할 수 있어요. 이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과연 누구나 그럴까. 스스로 되묻게 됐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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