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벅 사이렌 오더∙나이키 AR…'디지털 전환' 뒤엔 CEO 있었다
#경기 파주 출판단지에 위치한 A출판사는 2017년 회사 창립 12년 만에 디지털 콘텐트를 전담 팀을 구성하는 등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종이책 판매량이 점점 줄어들자 회사는 전자도서(e북)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그 결과 2017년 3개에 불과했던 디지털 콘텐트는 올해 상반기까지 42개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매출도 2017년 대비 약 40% 성장했다.
#서울 금천구 소재 산업용 IoT(사물인터넷) 센서 제조기업 B사는 효율적인 제조 공정으로 전환하기 위해 2017년 외부 전문가를 고용,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스마트팩토리 구축 전 4~5%였던 불량률이 10%로 증가한 것이다. 제품 10개를 만들면 1개는 버려야 했다.
A사와 B사의 운명을 가른 건 무엇이었을까. 수많은 기업이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투자를 하고 있지만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디지털 전환의 핵심은 CEO의 결단과 추진력
디지털 전환 시계 빨라졌다
디지털 전환은 디지털을 기반으로 전략, 조직, 프로세스, 비즈니스 모델 등 기업 전반을 변화시키는 경영 전략이다.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솔루션,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기업의 경제적 효용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 키워드를 본격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14년 산업부가 발표한 '제조업 혁신 3.0 전략'에 따른 스마트 공장 보급과 확산이 시초다. 이어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된 '4차산업혁명'과 2021년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이 불을 지폈다. 코로나 19가 촉발한 갑작스러운 비대면 문화의 일상화로 인해 그동안 다소 더디게 진행되던 많은 비대면, 무인 서비스와 관련 기술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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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전환, CEO 의지가 가장 중요"
기업 생존과 직결한 전략이자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디지털 전환을 CEO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9.1%는 "현재 디지털 전환에 대한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디지털 전환에 대한 관심과 관여도가 높은 편이라고 밝힌 비율은 90.9%에 달했다.
CEO들은 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경영진이 이끌어야 한다고 인식했다.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6%는 디지털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CEO의 의지'라고 꼽았다. '직원의 인식'은 12.7%로 뒤를 이었다. '디지털 기술 도입'이나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후순위 문제라고 생각했다.
디지털 전환을 이끄는 주체에 대해서도 응답자 63.6%는 CEO가, 22.7%는 전담 조직 또는 인력이, 11.4%는 최고디지털전환책임자(CDO),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관련 경영진이라고 답했다. 회사의 디지털 전환을 가로막는 요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선 23.6%라는 적지 않은 응답자가 "CEO 및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의 관심 부족"을 지적했다.
디지털 전환에서 리더십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81.8%는 "회사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투자 요소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디지털 전환이 단순히 디지털 업무 도구를 도입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거나 새로운 시장까지 개척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밖에도 "전사적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43.6%)",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을 위해(21.8%)", "CEO가 각 부서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조율할 수 있어서(16.4%)" 등이 뒤를 이었다.
디지털 전환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기술로는 '인공지능(54.5%, 중복응답)'을 선택했다. 이어 '빅데이터(45.5%)', '클라우드·모바일(36.4%)'과 '사물인터넷(36.4%)', ERP·그룹웨어 등 '혁신 솔루션(18.2%)' 순으로 나타났다.
살아남은 기업 뒤엔 리더가 있었다
CEO의 리더십으로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기업은 많다. 글로벌 기업인 스타벅스와 나이키가 대표적인 예다. 오프라인 매장 중심이었던 스타벅스는 이제 스마트폰만 있으면 모든 제품을 살 수 있는 곳이 됐다. 전통적인 식음료 업체 스타벅스가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것은 하워드 슐츠 대표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했다. 하워드 슐츠는 2000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2008년 전면 복귀했다. 당시는 저가 커피 시장이 커지고 품질 저하 논란으로 매출이 급락했던 시점이었다.
그는 스타벅스의 모든 과정에 디지털 혁신을 적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IT 인재를 과감하게 영입했다. 선불 충전식 스타벅스 카드를 도입하고, 드라이브 스루 매장을 열었다. 모바일 주문 및 결제 시스템 '사이렌 오더'와 차량번호를 등록하면 자동으로 결제할 수 있는 '마이디티 패스(My DT Pass)'를 만들었다. 최근엔 드라이브 스루주문 시 구매 이력에 따라 메뉴를 추천하고, 인공지능을 통해 고객의 취향을 분석하는 등 고객의 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나이키는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도 눈부신 실적을 기록했다. 비결은 남보다 앞선 디지털 플랫폼으로의 전환이었다. 나이키가 2020년 IT 전문가인 존 도나호를 CEO로 영입했을 때만 해도 예상 밖의 일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전자상거래 플랫폼 이베이 CEO였고, 세계 최대 전자결제시스템 업체 페이팔 홀딩스 의사회 의장으로 활동한 도나호는 제조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도나호 CEO는 취임하자마자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 전체를 디지털 플랫폼 중심으로 바꿨다. 온라인 공간에서 소비자를 직접 공략하는 D2C(Direct to Consumer) 전략을 짜고 오프라인 매장을 뛰어넘는 혁신을 선보였다. 한정판 제품을 온라인 회원 전용으로 판매하거나, AR(증강현실)을 이용한 맞춤형 추천 서비스도 제공했다. 그 결과 지난해 디지털 매출은 전년 대비 41% 늘었고, 2019년 대비 147%나 증가했다. 존 도나호는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디지털을 통해 프리미엄급의 완벽한 경험을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우리의 능력을 확인했다"면서 "앞으로 더욱 강력한 디지털 전환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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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는 디지털 로드맵부터 그려야
그렇다면 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위해 CEO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응답자 70.9%는 CEO의 역할에 대해 "디지털 전환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꼽았다. "의사결정을 이끌고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하는 것(47.3%)"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 책임자급 임원인 C-레벨(C-level)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효과적인 디지털 전환 방식에 대해 "CEO,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디지털 전환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37%)"이란 답변이 "전담 부서·전문 인력 등 조직 내 디지털 전환 요구사항을 수렴하고 추진하는 것(33.3%)"을 앞섰다. 전문가에 맡기는 것보다 회사 경영진이 먼저 회사의 목표와 방향을 고려해 디지털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 둘을 적절히 섞는 방식이 좋다는 답변도 29.6%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조직을 가장 잘 아는 리더가 큰 그림을 그리고, 동력을 잃지 않도록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병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무언가를 바꾼다는 건 기존 권력 체계가 달라진다는 것으로 리더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면서 "로드맵을 실천할 때에도 각 조직이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코디네이션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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