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생 늘고 상무 사라진다…대기업 '별'의 세계 [뉴스원샷]

이상재 2022. 10. 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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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꽃집에 놓인 승진 축하 리본. 중앙포토


지난해엔 전무가 사라지더니 이제는 상무가 사라지고 있다-. 삼성을 비롯한 주요 5대 그룹이 아직 신규·승진 임원 인사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최근 2~3년 새 대기업 임원 인사의 특징은 이렇게 요약될 듯하다. 기존 상무(보)→전무→부사장 등으로 단계별로 밟아 올라가던 승진·보상 체계를 직무 중심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다. 유연한 조직문화를 확산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인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기업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임원으로 승진하는 확률은 줄잡아 100분의 1 미만이다. 그래서 ‘별을 단다’는 표현도 나왔다. 그런데 과거엔 임원 승진이 직장에서 ‘성공’을 상징했다면, 이제는 변화를 이끄는 키워드가 된 것이다.


삼성전자 부사장 60→330여 명, 왜


먼저 호칭 변화, 직위 파괴가 두드러진다. 지난 12일 한화그룹 일부 계열사가 정기 임원 인사를 발표했다. 그런데 ㈜한화와 한화솔루션, 한화건설 등에선 승진·보직자 명단이 기존 상무·전무 대신 ‘본부장’ ‘센터장’ ‘담당’ 같은 직책으로 표기됐다. 보직만 봐선 상무인지, 전무인지 구별을 할 수가 없다.

한화 측은 “이번에 처음으로 ‘포지션 중심의 인사 제도’를 시행했다”며 “포지션의 가치와 적합도에 따라 승진·이동·보상 수준을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책 호칭 변경을 통해 수평적 조직문화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CJ그룹은 지난해 말 아예 임원 직급을 ‘경영리더’ 하나로 통폐합했다. 기존엔 상무대우부터 상무→부사장대우→부사장→총괄부사장→사장까지 6단계였다. 경영리더는 체류 연한과 무관하게 부문장이나 최고경영자(CEO)에 오를 수 있다.

강호성 CJ주식회사 경영지원대표(왼쪽부터), 구창근 CJ ENM 엔터부문 신임 대표, 이선정 CJ올리브영 신임 대표. 사진 CJ그룹


이보다 앞서 SK그룹은 2019년부터 상무·전무·부사장 직위를 부사장으로 통합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주문하면서 새로운 인사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삼성도 지난해 말 전무·부사장을 부사장으로 통합했다. 미래 CEO 후보군을 넓히겠다는 의도에서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지난 상반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부사장은 모두 330여 명으로 집계됐다. 그동안 60명 안팎이던 것에서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부사장급에게 제공하는 제네시스 G90을 제때 확보하기 어려웠다는 말까지 나왔다. 반도체 품귀에 따른 차량 공급난이 겹치면서다.


1980년대생 임원 1년 새 63→105명


세대교체와 신상필벌이 두드러진 것도 특징이다. 무엇보다 1980년대생 밀레니얼(M) 세대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24일 인사에서 신규 선임된 CJ그룹의 임원 44명의 평균 나이는 45.5세였다. 이 가운데 1980년대생은 8명으로 알려졌다. CJ올리브영에는 1977년생인 이선정 영업본부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그룹 내 최연소 CEO이다. 한화솔루션 갤러리아백화점 부문에서는 1981년생 여성 간부가 별을 달았다.

지난해 삼성전자에서는 40대 부사장 8명, 30대 상무 4명이 나왔다. LG그룹의 경우 지난해 임원으로 승진한 132명 중 62%(82명)가 40대였다.

지난해 삼성전자 정기 인사에서 40대 부사장 8명이 선임됐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고봉준, 김찬우, 박찬우, 이영수, 박찬익, 신승철, 손영수, 홍유진 부사장.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임원 승진자 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헤드헌팅 업체인 유니코써치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국내 100대 기업 임원 중 1980년 이후 출생한 임원은 105명이었다. 지난해 63명에서 부쩍 늘었다. 80년대생 임원 수가 100명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임원 인사를 발표한 신세계그룹에서 송호섭 스타벅스코리아 대표가 물러났다. 고객 증정품인 ‘서머 캐리백’에서 유해 화학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됐고, 이에 따른 대처가 소홀했던 데 대한 문책성으로 풀이된다.


인사 시기 두 달가량 빨라지기도


그동안 12월 초·중순, 늦으면 이듬해 1월 초로 여겨지던 ‘인사철’도 완연히 달라졌다. 주요 대기업은 정기 인사 시기를 9~11월로 앞당기는 추세다. 연말연시의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경영진과 내년 사업계획을 구체화하겠다는 뜻이다.

한화는 지난 9월 말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주요 계열사 사장단 인사를 마무리했다.

CJ도 예년보다 두 달 빠른 지난 24일 임원 인사를 발표했다. 이후 사흘 뒤인 27일 주요 경영진이 한자리에 모여 ‘그룹 CEO 미팅’을 진행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2023∼2025년은 글로벌 메이저 플레이어로 가느냐, 국내 시장에 안주해 쇠퇴의 길을 가느냐의 중차대한 갈림길”이라며 “초격차 역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계획을 신속하게 수립해 내년에 즉시 실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장희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복합위기가 현실화하는 가운데 기업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며 “미래 준비가 기업의 화두라면 임원진에 대해서는 신성장 역량 강화와 전문성 확보, 이와 함께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상재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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