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사건·두 개의 시신, 감독의 뚝심 돋보인 장면
[조영준 기자]
▲ 영화 <자백> 메인포스터> |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그날의 사고는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시작되었다. 두 사람의 비밀이 감춰져 있는 사진을 받고 도착한 호텔에서 유민호(소지섭 분)는 의문의 습격을 받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함께 있던 김세희(나나 분)는 죽어 있고, 복도에는 벌써 경찰이 도착해 문을 두드린다. 호텔 건물의 5층 높이에 위치한 방, 드나들 수 있는 문 앞에는 경찰과 호텔 직원들, 그리고 모두 잠긴 창문. 갑작스럽게 벌어진 완벽한 밀실 살인 사건이다. 하루아침에 사건의 용의자로 누명을 쓰게 된 남자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재판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변호사 양신애(김윤진 분)를 찾는다. 눈이 내리는 깊은 산속, 유민호의 개인 산장에서 마주한 두 사람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서로의 자백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한 사람은 자신의 무죄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 앞에 서 있는 양 변호사를 선임하고자, 또 한 사람은 자신의 100% 승률에 흠집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의 완벽한 진술을 듣기 위해서.
영화 <자백>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유민호와 그의 진술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해 가는 변호사 양신애 사이에 던져지는 대화를 중심으로 한 범죄 스릴러 작품이다. 한 가지 눈길이 가는 것은 이 영화가 지난 2017년에 국내에서도 개봉한 바 있는 스페인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2016)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진행 과정에서의 반전과 결말의 은폐가 그 어떤 장르보다 중요한 스릴러 장르에서 기존의 작품을 차용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만큼 원작이 갖고 있는 여러 지점의 매력에 자신감이 있었다는 뜻으로 보이기도 한다.
▲ 영화 <자백> 스틸컷 |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
이 작품과 같은 장르의 영화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서스펜스를 획득하고 관객에게 전달하는데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관객을 극에 집중시키고 이야기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도록 붙잡기 위해서다.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면 영화의 결말에서 그 어떤 장치를 동원한다고 해도 이미 멀어진 관객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게 되어버린다. 원작이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다양한 지점에서 그 당위성을 획득하고 관객을 집중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장치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어쩌면 윤종석 감독이 영화의 초중반에 걸쳐 서사를 진행시키고 긴장감을 형성하는 방식을 그대로 가져온 것에는 그런 부분에 있어 어느 정도 원작의 힘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서스펜스를 획득하기 위해 활용하고 있는 것은 크게 3가지다. 극의 중심에 놓여있는 사건 자체가 주는 긴장감이 하나, 사건이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다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도록 연속적으로 배치된 극의 전복과 관련한 극적 장치가 또 하나, 마지막으로 현재의 타임라인 위에서 유민호와 양신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의 한정된 공간과 팽팽한 심리 싸움이 그에 해당된다. 처음 두 가지가 극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활용되며 기술적인 완성도를 자랑하는 지점이라면, 산장의 공간과 그 내부에서 펼쳐지는 두 인물의 대결 구도는 극의 내부가 갖고 있는 힘을 순수하게 보여주고 있다.
03.
이 작품은 다양하고 넓은 공간에서 극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현재의 타임라인이 진행되고 있는 공간은 유민호와 양신애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산장이 대부분이다. 나머지 공간은 두 사람이 기억하고 수정하는 사건의 진술을 재연하는 공간으로 과거의 시점이거나 가정의 공간인 셈. 여기에는 이 좁은 공간에서도 호흡을 잃지 않고 극을 이끌어 가는 두 배우, 소지섭과 김윤진의 에너지가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또 다른 밀폐된 공간인 산장의 내러티브가 제 몫을 다할 수 있는 이유는 과거의 사건이 가져다주는 두 가지 제약이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민호와 김세희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적 제약이 선행한다. 두 사람은 이미 불륜이라는 관계로 인해 서로 암묵적인 비밀을 안고 있지만, 함께 겪게 되는 사고로 인해 더 큰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합의만 한다면 두 사람만 알고 없었던 일로 넘길 수도 있는 불륜과 달리 이제는 결코 지울 수 없는 비밀이 생겨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은 이 사건을 없었던 일로 지우고자 노력하고, 이후 김세희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오롯이 유민호의 것이 된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진실에 대한 제약은 산장에서 유민호와 양신애가 서로의 발언에 대한 의문과 당위성에 대한 시작점이 된다.
"하지만 모든 게 위선이었죠. 속에서는 구역질이 났으니까."
▲ 영화 <자백> 스틸컷 |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
처음에 이야기한 대로 영화는 원작의 흐름을 잘 따르며 극을 전개하다 마지막 20여분을 남기고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한다. 원작에서는 극의 결말에서야 드러나는 마지막 트리거를 먼저 등장시키며 조금은 다른 결말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물론 이 마지막 전복이 등장하기 전에도 세 번 이상의 반전이 시도되고 있기에 원작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관객들에게는 상상하지 못했던 약간의 놀라움 정도로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전반부와 중반부를 지나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르던 작품이 결말의 어떤 지점에서만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드러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에 영화가 끝나고 난 후에 이 지점이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를 한번 확인해 보는 것도 이 작품 <자백>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범죄 스릴러 장르가 그렇듯 이쪽 장르의 작품들은 큰 여운을 남기거나 농도 짙은 감정을 전달하는 쪽이 아니라 높은 오락성으로 관객들이 극장 안에서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쪽으로 구조화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이 영화 <자백>은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와 관객이 극의 흐름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압도하며 나아가는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촘촘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플롯에 힘입어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의 경향성에 맞춰 굳이 러닝 타임을 늘이지 않고 나아가는 감독의 간결한 뚝심 역시 한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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