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불 지른 남자가 출소했다, 그리고 산불이 일어났다

김성호 2022. 10. 29.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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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408] 2022유럽영화제 <파이어 윌 컴>

[김성호 기자]

 
▲ 파이어 윌 컴 포스터
ⓒ 4 A 4 Productions
 
대부분의 영화는 둘 중 하나다. 한 인물이 떠나가거나, 한 인물이 나타나거나.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에 빛나는 올리버 라세의 <파이어 윌 컴>은 후자다. 아마도르(아마도르 아리아스 분)는 감옥에서 출소해 스페인 갈리시아 산간 마을, 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곳엔 노모(베네딕타 산체스 분)가 소 세 마리를 기르며 홀로 살고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아마도르의 죄명을 내보인다. 다름아닌 방화, 그것도 산에 불을 내어 꼬박 두 해를 복역했다. 그런데 한 산림관리인은 아마도르의 자료를 보고 "불쌍하다"고 내뱉는다. 대체 그가 어떤 일을 겪었기에 불쌍하다는 것일까.

영화는 아주 천천히 아마도르의 일상을 뒤따른다. 돌아온 그는 어머니의 곁에서 시간을 보낸다. 요리를 돕고 소를 먹이고 이따금씩 집 주변을 산책한다. 막힌 수도를 뚫어 마을로 맑은 물이 내려오도록 하고 가끔은 혼자서 술을 마신다. 마을에 새로 들어온 수의사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지만 마을사람들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못한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버려진 집을 고쳐 관광객을 유치하려 한다. 어머니는 집을 고치는 이에게 "혹시 아마도르도 같이 할 수 있느냐"고 묻지만 긍정적인 답은 얻지 못한다. 아마도르도 그런 일엔 별 생각이 없다. 마을에 외지인을 들여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 파이어 윌 컴 스틸컷
ⓒ 4 A 4 Productions
 
평화로운 일상, 닥쳐오는 화마

일상은 평화롭고 이렇다 할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거듭 비가 내리고 물이 흐르고 소가 아프다가 회복되고 그렇게 하루가 하루씩 흘러간다. 아마도르는 마을 사람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못한다. 가게를 찾아서도 홀로 술을 마실 뿐이다. 그런 그에게 수의사가 다가와 말을 걸자 그는 "마을 사람들이 내 얘기를 하지 않았나요"하고 되물을 뿐이다. 마을 사람들은 아마도르에 대해 뒷말을 하고 가끔은 못된 짓도 서슴지 않는다. 개중 몇몇은 그가 좋은 사람이라며 말리기도 하지만 누구도 적극적으로 손 내밀어 가까이 대하지는 않는다.

조용했던 영화는 일순간에 역전된다. 일어난 불이 갈리시아의 숲을 삼켜버린다. 출동하는 소방대원 몇몇이 불길을 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불이 민가로 다가오고 출동한 대원들은 주민을 대피시키려 한다. 얇은 호스를 쥐고서 제 집 지붕에 물을 끼얹는 할아버지를 설득하는 소방대원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영화는 화재의 원인을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출동하는 소방대 맞은 편으로 운전하여 사라지는 아마도르의 모습을 가만히 잡아낼 뿐이다. 아마도르가 화재에 책임이 있는 걸까, 그에게 다시 터져나오는 마을 사람들의 분노엔 어떤 근거가 있는 것일까. 영화는 다만 산불 가운데 살아나온 산짐승들과 불도저에 꺾여나가는 나무들을 잡아내듯 사람들의 풍경을 하나씩 지켜볼 뿐이다.

<파이어 윌 컴>은 제목처럼 마침내 다가오는 재앙과 그 앞에 선 인간의 이야기다. 다만 명확한 의지 아래 이것이 옳다거나 저것은 틀렸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가만히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그 속에서 자연과 인간 사이의 미묘한 상관관계가 조금씩 비춰나기도 하지만, 적잖은 관객은 그저 지루하다 하품할 수도 있을 것이다.
 
▲ 파이어 윌 컴 스틸컷
ⓒ 4 A 4 Productions
 
2019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들의 선택

올리버 라세는 이 영화로 2019년 제75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이 영화에서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보았다고 말했다. 자연을 해치고 이용하면서도 그 불길 앞에 그저 무력하기만 하는 인간의 존재를 보았다는 뜻일 테다. 그러나 적잖은 관객들은 주제를 풀어내는 라세의 영상화법 앞에 산불을 마주한 농민들처럼 무력함을 호소할 뿐이다. 그 길고 느린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지는 영상 앞에 관객들의 사고가 나아가지 못하는 탓일 것이다.

이 영화를 소개한 2022 유럽영화제 관계자는 내심 걱정이 된 탓인지 상영에 앞서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오프닝이 참 길다는 그의 말에 영화를 처음 보는 관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그 표정은 영화가 시작되고 몇 분이 흐른 뒤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칸영화제 심사위원들의 선택에도 아직 본 이가 얼마 되지 않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자리하고 있다.

영화의 도입부 부러지는 나무들과 결말부의 활활 타오르는 불꽃 사이엔 상당히 느리고 긴 영상이 있다. 그 영상이 남기는 지루함을 견뎌낼 수 있는 이 가운데 아주 소수만이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마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말하자면 이 시대의 시네필이 도전해 봄직한 영화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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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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